아픈역사의 숨결 광성보 (廣城堡)
강화 5진 7보 53돈대와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다.
고려가 몽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도읍을 옮기면서 37년간 성을 쌓았는데,
효종 9년(1658)에 대대급 규모인 광성보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숙종 때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 소속 돈대가 만들어 고
영조 21년(1745)에는 성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고 누각을 세워 안해루라 하였다.
신미양요 때(1871년) 미국군대와 사투를 벌인 격전의 현장으로서
이 때 전사한 어재연 장군을 기리는 전적비와 350여명의 순국영령들을 기리기 위한 '신미순의총' 이 있다.
안해루(1745년 설치)는 바다를 지킨다는 뜻이 담긴 진지 관문이다.
쌍충비
1871년 신미양요 때 광성보 전투에서 순절한 중군 어재연(1823-1871)외 59명의 순절비이다
신미양요 순국 무명용사비
신미순의총.
신미양요 때 광성보 일대에서 미해군과 격전하다가 전사한 용사들의 묘가 있는 곳이다
당시 중군 어재윤 장군과 아우 재순 형제는 고향인 충북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안장하고.
남은 군졸 51인은 신원을 분별할 수 없어 7기의 분묘에 합장하여 그 순절을 기리고 있다
광성돈대 (廣城墩臺)
광성보에 소속된 3개 돈대중 하나로서
숙종5년(1679년) 승군 8,000명과 어영군 4,300명이 40일만에 완공하였다 한다.
신미양요 최대의 격전지이자 신미양요 때 파괴되었다 복구된 곳으로
사정거리 700m의 화포가 있다지만, 이 포는 날아는 가지만 터지지는 않아 위력이 약하다고 한다.
이런 대포로 미해군 함포와 상대를 했으니, .. 이미 승부가 난 전쟁이었을 것이다.
이곳은 1871년의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으며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열세한 무기로 용감히 싸우다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순국하였다.
광성돈대...오른쪽 부터 '대포 / 소포 / 불랑기
손돌목 돈대(孫乭睦 墩垈)
손돌돈대는 광성보내에서도 사진찍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저 아름다운 곡선미를 어디다가 비교해 볼까......
광성포대
손돌목돈대 주변 3곳에 설치된 포대로 1875년 운양호사건 때 파괴된 것을 2004년 복원된 곳이라고 한다.
용두돈대(龍頭墩臺)
5진 7보 53돈대 가장 아름답다는 용두돈대
원명은 사두돈, 뱀의 머리와 같다라고 하여 지어진 이름인데
고 박정희 대통령이 뱀의 머리 보다는 용의 머리가 낫다고 하여 바뀌었다고 한다
성곽의 아름다운 모습이 파도처럼 넘실대는 길을 따라 용두돈대의 끄트머리
손돌목이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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