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수의(壽衣)가보관된  토리노성당  

               



토리노 두오모(조반니 바티스타 성당)
     
이 건물은 1491년~1498년에 지었으며 1997년 화재로 일부 소실되었지만 복구되었다.
두오모라고 더 잘 알려진 이 대성당은 성의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예수의 시신을 감싼 것으로 전해진다.
가로 1m, 세로 4m의 아마포로 십자군 전쟁 때 터키에서 발견돼
1572년부터 이탈리아 토리노 성당에 보관돼 오고 있다.
1898년 처음으로 사진을 촬영하자 육안으로 보이지 않던 ‘예수의 형상’이 나타나 ‘기적’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신앙의 대상이 돼 왔으며 수차례의 화재로 소실될 뻔 했다.
1998년도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 실험 결과 12세기경의 천으로 알려지면서
 지금은 예전의 영광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1578년부터 이탈리아의 토리노 대성당에서 특별 보관하고 있는성의의 연대와 형상 흔적의 실체를
현대과학은 아직까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교황은 이날 "성의 공개는 인류의 가슴에 조용히 속삭이는 듯한 신비로운 형상(얼굴)을
 묵상하는 하느님 자비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의 시신을 감쌌다고 알려진 '토리노 수의'가 2002년 복원 작업 이후
처음으로 일반에게 공개됐습니다.

앞으로 6주 동안 수의를 전시할 이탈리아 토리노 성당에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포함해 200만 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1898년 토리노 성당에서 성수의를 일반에게 공개 할때에 만든 포스터.
예수의 얼굴 모습은 콧수염이 있는 것으로 그렸다.
얼굴 모습 아래에는 성수의를 접지 않고 펼친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같은 이미지가 두 개 프린트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토리노 성당은  
지난 1997년 화재 피해로 종탑은 여전히 복구 중이지만 다행히
성당 최고의 보물은 무사했습니다.
예수의 시신을 감쌌다고 알려진 '토리노 수의'는 오랜 세월의 풍파와 화마 속에서도 무사했습니다.
성당에 들어서면 짧은 영상물이 상영되고,잠시 후 어둠 속에서 부드러운 빛으로 감싸진 수의가 떠오릅니다.
16세기 수녀들이 조각난 것을 붙인 수의는 화재로 손상된 뒤 지난 8년간 복원 작업을 거쳤습니다
.
직접 와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예수님의 얼굴이 분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네거티브 이미지이지만 얼굴의 굴곡과 생김새가 선명합니다.
하지만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예수님의 얼굴이라고 믿는 반면,가짜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토리노 성당의 대주교는 관람객들에게 머리보다 마음으로 수의를 보라고 조언합니다.
진위에 상관없이 중요한 믿음의 수단이 된다는 것이 성당 측의 입장입니

토 리 노 


토리노는 1899년 이탈리아 최초의 자동차 회사 피아트가 세워진 ‘피아트의 도시’였고 
2006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자동차도시에서 관광도시로 거듭난 도시

 

  
토리노의 상징 몰레 안토넬리아나
토리노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에펠탑이 완공되기전만해도
 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현재는 영화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패트릭 성당(St. Patrick’s Cathedral)

아일랜드 더블린 성패트릭성당 아일랜드 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국가의 공식적인  종교 행사를 치르기도 한다

성패트릭 성인의 이름을  딴 성당 이곳은 아일랜드에 처음 그리스도교와  로마글자를  

전파한 인물로 수호성인 이기도 한 그의 이름으로그를  기리기위해 지어졌다

 

보통 3월 16일에서 18일 에 이날에는 온나라 전체가 모두 초록색으로 물든다고해요

셔츠,양말,넥타이꽃,리본 케익 모든것이 초록색으로 치장되는데

전세계적으로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모인곳 미국,캐나다 등등  

어디든 명절을 즐기는 이들로 온통 거리가 초록색으로 물든다고 하네요

아일랜드 는 초록옷을 입고 최고의 명절을 지내는 날이 있어요

 

아일랜드의  기독교를 처음으로 전파한 성 패트릭의  사망을 기리는 날인데

성직자로 추앙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영웅이기도한 그를 기리는 행사로는 

 삼위일체를 설명할때   초록의 클로버를 사용했다는 전통으로

클로버는 성 패트릭날의 전통 이다

성 패트릭

라틴어로는 ‘파트리키우스(Patricius)’, 영어로는 ‘패트릭(Patrick)’

 이탈리아어로는 ‘파트리치오(Patrizio)’,

 아일랜드어로는 ‘파드라그(Pádraig)’라고 한다.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서 ‘아일랜드의 사도 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일랜드의 수호성인 가운데 한 명이며, 기념일은 3월 17일이다.

 

영국 웨일즈의 한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16세에 아일랜드 해적들의 습격을 받고 끌려가 6년 동안 노예로 지냈다.

그는 아일랜드 언트림 슬레미시 산에서 양을 치면서 지냈는데, 포로로 잡혀있는 동안 그리스도교에 귀의하였다.

그 후, 어느 날 꿈속에서 천사가 나타나 집으로 가도록 도와주었는데,  320km 이상을 걸어가

아일랜드 해협을 배로 건너 고향 웨일즈로 갔다. 그는 영국으로 가려 했으나 도착한 곳은 프랑스였다.

그는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신부가 되었다.

패트릭은 1883년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성직자가 되어 자신이 노예로 있던 아일랜드로 돌아가,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면서 우물가에서 성수를 찍어 세례를 주었다.

그의 노력으로 섬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믿게 되었으며, 

그는 평생 그곳에서 성직자로 봉사하고 영웅으로 추앙되었다.

지금도 아일랜드에는 그의 이름을 딴 교회들이 60개가 넘는데,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더블린의 성 패트릭 성당이다.

지금도 더블린 시민의 90%가 가톨릭신자이다.

더블린 시내 중심지역에 위치한 성 패트릭 성당은 패트릭 성인이 AD 450년 아일랜드에 머물던 때에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행했던 우물가에 세운 교회이다.지금도 성 패트릭 공원에 있는 성당 옆에는 그 우물터였던 유적이 있다.

성 패트릭 성당은

초기 영국의 고딕 양식 건축물로서 아름다운 조각과 화려한 바닥 타일,화려하고 멋진 스태인드 글라스로

꾸며진 창문들로 장식되어 있다   .한국은 교회와 성당의 구분이 뚜렷하지만,

유럽은 규모와 크기에 따라 교회의 규모에 따라 chaple < church < cathedral < church cathedral로 나뉜다.

 

 

기네스가 의 벤지민 기네스경 동상

헨델의 메시아 초연 당시 파이프 오르간

1742년 헨델이 메시아를 조지 프레드릭 헨델 호텔에서 초연할 당시, 

사용한 파이프 오르간을 보관하고 있다



성당 내부에 있는 화해의 문

1492년 명문가문인 킬데어(Kildare)()와 오먼드(Ormond)()의 불화가 심해지자

오먼드가의 백작인 제임스 버틀러 경과 그의 가족들은 이 성당 안으로 피신을 했다.

성당 밖에서 포위하고 있던 킬데어의 백작 제럴드 피츠제럴드는 화해를 시도했지만,

오먼드가는 킬데어가의 진의를 믿지 못하여 성당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진의를 보이기 위하여 성당 문에 구멍을 내고 그 안으로 자신의 팔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버틀러경은 피츠제럴드의 손을 잡으며 두 집안이 화해를 하였다고 한다.

 

마리아 군단의 첫 모임은 1921년 9월 7일 프랜시스 거리의 마이라 하우스에서 열렸습니다.

이후 이 종교 단체는 170여 개국에 지부를 두고 성장해 왔습니다.

프랜시스 거리에 있는 이 유서 깊은 건물은 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로,

당시의 좁은 골목길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따라서 종교적인 의미 외에도 건물 자체도 매우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 레지오 마리애 창립지: 마이라 하우스 (Myra House)

레지오 마리애는 1921년 9월 7일, 아일랜드 더블린의 **프랜시스 거리(Francis Street)**에 위치한 **'마이라 하우스(Myra House)'**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 설립자: 하느님의 종 **프랭크 더프(Frank Duff)**와 미카엘 토허(Michael Toher) 신부, 그리고 약 15명의 평신도 여성들이 모여 첫 회합을 가졌습니다.
  • 역사적 배경: 당시 이 건물은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회(Society of St. Vincent de Paul)의 활동 거점이었습니다. 첫 모임의 명칭은 '자비의 모후단(Association of Our Lady of Mercy)'이었으며, 이후 '레지오 마리애'라는 명칭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 의의: 더블린의 가난한 지역에서 소수의 인원으로 시작된 이 모임은 현재 전 세계 170개국 이상에서 수백만 명의 단원이 활동하는 세계 최대의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단체로 성장했습니다.

장소의 특징

마이라 하우스는 오늘날에도 더블린의 역사적인 장소로 남아 있으며, 건물의 외벽에는 레지오 마리애의 탄생을 기념하는 현판이 설치되어 있어 전 세계 레지오 단원들의 주요 성지 순례지가 되고 있습니다.

 

  • 콘칠리움 레지오니스(Concilium Legionis Mariae):지오 마리애의 세계 최고 평의회 본부는 현재도 더블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North Brunswick Street).
  • 프랭크 더프의 집: 창립자인 프랭크 더프가 생전에 거주하던 집도 더블린에 보존되어 있어 함께 방문하곤 합니다.

크라이스트 처치 대성당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은 더블린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이며 거의 천 년 동안 순례지로 사랑받아 왔습니다

 아름다운 건축 양식과 정교한 바닥 타일, 그리고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규모를 자랑하는

12세기 지하 예배당으로 유명합니다.

초기 중세 바이킹 정착지였던 더블린의 중심부에 위치한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은

1030년 더블린 노르만족의 왕 시트리우크에 의해 건립되었습니다.

1152년 ​​아일랜드 교회에 편입되었고,

이후 더블린의 수호성인이자 유명한 대주교인 로렌스 오툴의 지도 아래 운영되었습니다.

크라이스트처치는 오랜 세월 동안 1487년 램버트 심넬의 에드워드 6세 대관식이라는 악명 높은 사건을 포함하여

수많은 중요한 사건들을 목격해 왔습니다.

펴 옴

세인트패트릭은 누구인가?

성 패트릭이 아일랜드에 선교할 당시 아일랜드에는 켈트족이 살고 있었다.

문명화된 로마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아일랜드에 사는 켈트족들은 야만인이나 다름없었으며,

로마 교황청은 켈트족의 선교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성 패트릭은 아일랜드 원주민에 대한 편견에 굴하지 않고 켈트족을 선교하기 시작했다. 

성경 속 인물에 대해 켈트족의 성향에 맞춰 아주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며 가톨릭을 널리 전파했다.

예를 들면, 하느님의 교의인 삼위일체(三位一體; 성부(聖父) · 성자(聖子) · 성령(聖靈)의 세 위격(位格)이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고, 하나의 실체인 하느님이라는 교의 를 설명할 때,

잎이 세 개인 ( 토끼풀)에 비유해 원주미의 이해를 도왔다. 

오늘날 아일랜드를 비롯해 아일랜드계 이주민이 많이 살고 있는 미국ㆍ오스트레일리아 등의 지역에서는

그가 죽은 3월 17일을 ‘성 패트릭의 날(St. Patrick's Day)’로 정해서 기리는 행사가 성대하게 벌어진다.

이 날에는 사람들이 초록색 옷을 입고 세 잎으로 된 토끼풀 모양을 가슴이나 모자 등을

붙이고 행사에 참석해 행진 등을 벌인다.

이것은 성 패트릭이 토끼풀의 세 잎을 보기로 들어서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했다는 일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이것을 샴록(Shamrock) 이라고 불러요.

성 패트릭은 기독교를 전파할 때 샴록으로 삼위일체를 설명했다고 해요.

아일랜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셀틱 십자가(Celtic Cross) 

걸리버 여행기로 유명한 조나단 스위프트도 성패트릭성당의 사제였다고 한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소설가이자 성당의 주임 사제였던 조나단 스위프트와 그

의 연인이었던 스텔라의 묘지와  켈트족의 묘지 등이 있다.

 

걸리버 여행기 1726년에 출판된 『걸리버 여행기』도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nbsp;인간과 인간사회에 대한 풍자,&nbsp;특히 영국의 아일랜드에 대한 착취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기네스 맥주 탄생지 더블린

더블린은 아일랜드 수도이자 최대 도시다.

게일어로 '단단히 다져진 땅'이란 뜻인 더블린은 988년 사람들의 정착이 시작돼 1998년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았다.

잉글랜드의 튜더 왕국이 들어선 17세기부터 빠르게 성장하며 한때 대영제국 도시들 가운데 둘째로 큰 도시가 됐다.

아일랜드가 1922년 영국에서 독립하면서 정식 수도가 됐다.

영문학사에 길이 남을 예이츠, 버나드 쇼, 사무엘 베케트 등 수많은 작가를 배출했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의 고향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네스 맥주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흑맥주 기네스가 태어난 곳으로도시의 펍 어디에서나 기네스를 즐길 수 있다.

또 유네스코가 선정한 문학의 도시로 새무얼 베케트, 제임스 조이스 등 대문호를 배출했다.

트리니티 구 도서관, 아일랜드 국립 도서관, 마시 도서관 등 역사 깊은 도서관이 많으니 들러 볼 것.

음악을 사랑하는 국민성 덕분에 어디에서나 들려오는 음악은 이 도시를 더욱 매력적이게 만들어준다.

아일랜드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더블린을 고향이라고 부를 만큼 아일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유럽에서 가장 젊은 인구가 살고 있는 현대적인 도시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인 트리니티 칼리지가 있어 전 세계의 학생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더블린에는 중세 및 현대 건축의 조화로움과 역사적인 명소들, 세계적인 문학, 그리고 맛있는 맥주가 있다.

과거 세련된 바와 고급 레스토랑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도시의 분위기가 세련되게 변화했다.

특히 그래프턴 스트리트(Grafton Street)와 그 주변의 쇼핑 명소, 레스토랑, 엔터테인먼트 명소들은

언제나 수많은 관광객들이 붐비는 곳이며,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바와 펍에서 아이리쉬 맥주를 즐기거나,

다채로운 박물관과 갤러리에서 역사와 문화를 탐험하기 좋다.

 

도시는 풍부한 문화와 예술에 못지 않게 중세 성곽과 대성당, 제임스 조이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조지 버나드 쇼, 사무엘 베켓을 기리는 명판 등 풍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산물들은 1,000여 년 전에 더블린이 성경을 생산하는 승려들의 안식처였을 때

시작된 것으로, 800년에 만들어진 유명한 켈스의 책이 그 결과물 중 하나이다.

이 책은 현재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더블린 [Dublin, Du

 

더블린(Dublin)은 리피 강 어귀에 있는 아일랜드의 동쪽 해안에 자리 잡고 있다.

맥주, 문학, 음악을 한곳에서 즐길 수 있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Grafton street!!!

버스킹의 성지이자 쇼핑의 거리

명품샵도 많고 브랜드상점, 화장품, 백화점, 약국, 신발가게 등등 없는 게 없다.

 

아일랜드 더블린 시내 그래프턴 스트리트

더블린 시티 센터에 있는 그래프턴 스트리트는 조용하고 여유로움이 가득한 다른 곳과 달리

수많은 관광객들과 현지인들로 활기찬 거리이다.

거리에 펼쳐진 상점들과 카페들 사이로 바쁘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 틈을 거닐며

아일랜드 여행 중 오랜만에 대도시에 온듯한 기분이 들었다.

더블린의 '명동'이라 불리는, 그라프턴 스트리트

이 곳은 버스킹의 성지라 불릴 만큼 다양한 뮤지션들의 거리 음악, 예술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영화 <원스>의 첫 씬에서 주인공이 버스킹을 하던 곳으로, 

또한 각종 상점가, 쇼핑몰들이 위치해있는 중심지로도 볼 수 있다.

더블린은 영화 원스(Once)의 촬영지로도 유명한데 특히 그래프턴 거리가 주 촬영지였다.

 

 

몰린 말론 동상 (Molly Malone)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민요의 주인공이라는 몰리 말론

더블린 거리에서 낮에는 생선을 팔고 밤에는 매춘부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다

젊은 나이에 열병으로 사망한 여인이라고 한다.

식민지 시절 아일랜드인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중요한 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더블린 데이 투어를 할 때 만남의 장소로 사용되는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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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 바(The Temple Bar)
교사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템플(Sir William Temple)이 1599년 영국 왕의 아일랜드 대리인으로 더블린으로 이주했다. 그는 이 지역에 집과 정원을 지었으며, 그의 아들인 존 템플이 현재 템플 바 지구의 개발을 승인하여 현재에 이르렀다고 한다.
바(Bar)는 원래 걷는데 사용하는 모래톱(sandbank), 즉 제방을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가게는 특유의 붉은 색이 워낙 강렬해서 이 지역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다.
낮부터 벌써 시끌시끌하다. 유럽이 대부분 그렇지만 여기도 낮술하기 좋은 나라다.

아일랜드 여행의 꽃, 기네스 맥주를 맛볼 수 있는 템플 바

기네스의 본 고장 아일랜드 더블린 여행에 빠질 수 없는 필수 명소이다.

'템플 바'는 더블린에는 800여 개의 무수히 많은 펍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굳건히 유명세를 지키는 곳이다.

무대 위 가수들의 생생한 라이브 공연에 부드러운 기네스 맥주 한 잔 하기 좋은 곳이다.


아일랜드의 가수인 필 라이넛(Philip Parris Lynott)의 동상.

아일랜드 시민들의 자부심, 더블린 스파이어

원래 이 자리에는 넬슨 기념비가 서있으면서 시민들의 천대를 받고 있었는데

결국 부활절 봉기 50주년 기념 테러로 산산조각이 나게 되었다.

그 후 국제적인 공모를 통해 <스파이어>를 건설하였고

아일랜드인이 영국인의 국민소득을 추월한 시점의 상징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아일랜드 위스키, 제임슨 증류소 

17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아일랜드의 위스키 발상지로

자신만의 아일랜드 위스키를 블렌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곳

기네스(Guinness)! 아일랜드를 모르는 사람도 기네스라는 이름은 모두 알고 있을 것 같다.
이 나라를 대표하는 맥주이자 기네스 북으로도 잘 알려진 이름이다.

 

 

 

 

 

성모마리아의 빈무덤 

카톨릭 전승에 의하면  성모마리아도 승천하셨고  그무덤은 감람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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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현산 자갈길.

                                  발현산은 자갈길로 눈이 올때나 비가 올때는 특히할아버지,할머니들은 위험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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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산 길이 너무 위험하다 

 

 

                                                             발현산의 성모님상 옆에 있는 예수님상.

                 

      

                        성모님 발현 20주년이 되는 날 발현이 있은 그 장소에서
                         본당 앞마당에 있는 성모님과 같은 형상의 평화의 모후 성모상이 안치되었는데,
                         이는 디노 펠리치(Dino Felici)가 조각했다.
                         순례자들은 발현산에서 개인 기도와 묵주기도를 통해 성모님과 만나게 된다

 

 

.

                        2002년 청 십자가(the Blue Cross)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역시 까르멜로 뿌쫄로 교수의 작품인
                                            묵주기도 영광의 신비 청동 부조가 설치되었다

.

 

 

 

 

 

 

                            수녀원

 

 

 

                                      고 해 소

 

 

 

                                      십 자 가 산:  맨발로 기도하며 올라갑니다 (정상14처 까지 2시간 소요)

 

 

 

 

 

 

 

 

 

 

 

 

2011년 11월 작성

묵주기도봉헌과 촛불 행진

 

 미사와 로사리오기도가 끝이 나면 춧불을 들고 성모 발현 소성당에서 대성당 쪽까지 광장을

한 바퀴 도는 촛불행진이 이어진다

불 행렬은 참석자는 물론보는이들까지의 신앙심을 돈독하게하고 경외심을 불러 일으킨다.

 

성모 발현일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많은 사람들이 미사에 참석한다고 한다.

특히 성모 발현일 첫날과 끝날인 5월 13일과 10월 13일은 30만명을 수용하는 광장이

인파로 가득차고 파티마 시가지에는 100만명이 모여 든다고 한다.

그 뒤를 따르고 성체를 모신 사제들도 촛불을 들고 뒤따른다.

 

 

저녁미사 중인 경당의 모습

성모 발현 소성당(경당)은 북쪽면만 벽으로 되어있고 동서 양면은 유리로 남쪽면은

아예 빈 공간으로 개방된 구조로 되어 있다.

 

 

 저녁 9시 30분 묵주기도및 촛불행렬

 

묵주 기도가 시작되자 성모송의 선창은 마이크를 잡고 여러 나라 말로 돌아가면서 하고,

후창은 광장의 일반 신자들이 각자 자기 나라 말로 하였다.

 

로사리오기도 봉헌은   

세걔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만큼 미사는 포르투갈어 외의 자국언어로도 진행이 된다

우리도 한국말로 단상에서 기도를 봉헌하였다: 한국을 대표로 레오가...

(멀리서 촬영 하여서 화질이 선명치못함)

 

 

 

 세계 각처에서 온 관광객과 신도들이 엄숙하게 미사를 올리고 있다

 

 

밤 9시부터 저녁미사를 올리는 경당은 사람들로 꽉차있다.

 성당 앞 광장은 3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광장으로 바티칸 광장보다 넓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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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미사 후 파티마 대성당의 촛불행진

 제일 선두 중앙 형광등을 밝힌 십자가를 들고 앞장서면

신자들이 그 뒤를 따르고 성체를 모신 사제들도 촛불을 들고 뒤따른다.

 

 

 

 

 

 

 

 

 

 

 

 

경당 옆의 촛불 봉헌소

경당 옆에는 촛불을 봉헌하는 곳이 있다. 많은 촛불이 저마다의 염원을 안고 조용히 타오르고 있다.

봉헌소 앞에는 자율판매대가 있어 초를 구입하여 봉헌할 수 있도록 했다. 

 

아기 예수의 탄생

대성당의 남쪽 건물 옆으로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조형물이 조명빛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묘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2015년 작성한 글

  
 

파티마의 성모 발현의 기적

 

1917년 5월 13일은 토요일이었다. 그날 정오경, 한줄기 밝은 빛이 아이들을 비추었는데, 그들은 코바 다 이리아의 나무 위에서 찬란한 모습의 어떤 부인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이 첫 발현 때, 그 부인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그리고 전쟁의 종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이르시면서, 매달 13일에 다시 오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후, 발현은 6월 13일과 7월 13일에도 일어났다.네 번째 발현일인 8월 13일에는 어린이들이 지방 당국으로부터 방해를 받고 코바 다이리아로 가지 못했으나, 19일에는 그 부인을 만났다.

 

9월 13일, 부인은 전쟁이 끝나도록 로사리오를 바치라고 이르셨다.끝으로, 10월 13일, 그 "부인"은 당신을 "로사리오의 모후"라고 알려 주시고,기도하고 보속하라고 다시금 이르셨다.

 

그날, 놀라운 천상적인 현상이 일어났다. 태양이 빙빙 돌면서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쳐 박히는 듯한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어린이들은 첫 발현날인 5월 13일처럼 일찍이 그 곳을 향하였다.약 3만 명의 대군중들이 어린이 주변에 몰려 있다가 신비로운 이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어린이들이 코바 다 이리아에서 본 환시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1930년 10월 13일이다. 레이리아의 주교는 오랜동안 조사 검토한 뒤에 고바 다 이리아에서 로사리오 성모 공경을 허가했던 것이다.

 

발현 얼마 뒤에 두 어린이는 선종하였다.발현은 보았으나 말씀은 듣지 못했던 프란치스꼬는 1919년 4월 4일 선종했고, 동생 히야친따는 1920년 2월 20일에 하느님 품에 안겼으며, 유일한 생존자인 루치아는 수녀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온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을 때인 1917년, 포르투칼에서 루치아를 비롯한 3명의 어린이들에게 성모께서 6차례 발현하셨다.

 

찬란한 빛에 둘러싸여 나타난 성모 마리아, 죄인들 특히 공산주의자들의 회개를 위해 묵주의 기도를 많이 바쳐야 한다는 요지의 메시지를 남겼으며, 전쟁을 곧 끝내게 하겠다는 예언을 주셨다.(1년 뒤인 1918년에 예언대로 종전(終戰)이 됐다).

그런데 이 현장을 보여준 것으로 이는 곧 공표(公表)되엇으나,

 제2의 비밀은 25년 뒤인 1942년 발표됐다.실천되지 않으면, 러시아는 회개하지 않을 것이며, 교회를 박해하고,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언해 주신 것이다.

 

한편, 제3의 비밀은 성모의 요청으로 후대의 교황이 재량으로 공표하는 것으로 돼 있으나, 내용이 엄청나서인지 아직 비밀에 싸여 있다내용은 "인류의 죄악이 계속된다면, 더 가혹한 전쟁(2차대전을 의미함)이 터질 것"이라는 예언과 "내 요청(신자들이 기도와 보속을 해야 함)

 

아스텍의 신비를 간직한 도시, 멕시코시티

멕시코시티는 해발 2,300미터의 멕시코 고원에 있는 멕시코의 수도로

인구 2천만명이 거주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도시이다 

스페인의 침략으로 아스텍 왕국이 멸망하기 전에는 테노치티틀란이라고 불렸던 아스텍의 수도였고.
1519년, 스페인이 침략한 후 400년간 철저하게 아스텍 문명을 파괴했기 때문에

몇 안 남은 아스텍 문명의 유적은 멕시코시티의 중심 소칼로 광장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현재 대성당의 아래 묻혀 있는 아스텍 문화 유적도

대성당의 건축 공사를 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되었고 , 

아스텍 문명의 찬란한 유적은

유럽 박물관의 전시품이나 ,유럽 왕실의 한낱 장식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답니다

 

 

 

성모발현 멕시코과달루페 대성당

멕시코시티 북부에 있는 과달루페 대성당은

 멕시코의 수호신 과달루페 성모님을 기리는 성당이다

 교황청이 공식 인정한 포르투갈의 파티마, 프랑스의 루르드와 함께

 

카톨릭 3대 기적의 성당이고1533년 완공된 이성당에는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카톨릭 순례자가 많이 찾는 곳이다.

 

1531년 12월 9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멕시코 시티 근교에 있는 테페약 언덕 위에서

후안 디에고라는 인디오 농부에게 발현하시어 당신을 위해 거기에 성당을 지으라고 말씀하셨다.

주교가 표지를 제시하라고 요구했을 때

성모님은 후안에게 아직 꽃이 피지 않은 장미를 만토에 좀 꺾어 주교에게 갖다 주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틸마(멕시코인들의 겉옷)를 펼쳤을 때 거기에는 성모님상이   새겨져 있었고 눈부시게 빛났다.

성모상은 과달루페의 성당 내에 보관되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의 공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1904년 교황 피우스(비오) 10세는 이 교회에 바실리카라는 지위를 내렸다.

올드 바실리카는 1709년에 완공되었으나 지반 침하로 붕괴될 위험에 처하자,

1976년에 동시에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현대적인 뉴 바실리카(원형 성당)를 세웠다.

 

 

 

지반 침하로 일반인 출입이 폐쇄된 구(舊) 성당을 대신해 1976년 신축된 신(新) 과달루페 성당

포르투갈의 파티마 프랑스의 루르드와 함께 세계3대 성모발현지성당

 

과달루페에는 티페약 언덕 정상에 있는 6개의 성당이 있고 티페약 언덕에서 성모마리아 발현한 지점

정면에서 본 구 성당과 오른쪽의 카푸치나스 수녀원, 신 성당, 테페약 언덕 위의 바실리카,

수녀원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인디오 구 교회와 작은 샘 교회가 있다

 

 

1531년 왼쪽 사람은 당시 교구장 주교이고 오른쪽 서 있는 사람은 동네 청년 후안이다

성모님 발현 보고를 믿지 않던 주교는 후안에게 지금 12월인데 장미꽃을 가지고 오면 믿겠노라 하고 무시했다

그래서 후안이 다시 가니 성모님이 싱싱한 장미꽃을 주셨는데 이 꽃을 망또에 담아 주교님께 와서 펼치니

싱싱한 장미꽃이 한 보따리를 보고 주교가 놀라고 믿게 되었다는 장면

 

 

 

 

1만명이 수용할수 있고 5200명 좌석있고 350개 기둥 파일로 성당 내부에 기둥이 없는 것이 특징

 

 

 

 

 

천장에 달린 조명등은 장미꽃을 의미한다고...

 

성모님상은 성당 안 어디에서나 보이도록 설계 되어있고

요한 디에고 틸마에 새겨진 성모 성화는 1647년 까지는 순례자들이 만질 수 있었으나

지금은 방탄유리로 보호 되었고

1979년 미국의 과학자들이 나섰는데 놀랍게도 물감이 지구상에는 없는 성분이었으며 붓질한 흔적조차 없다 함

 

비오 10세는 과달루페의 성모님을 라틴 아메리카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고, 

비오 12세는 “멕시코의 여왕이시며 아메리카의 왕후”라고 불렀다.

470년 지난 초상이 전혀 빛바래지 않고

무빙워크를 설치하여 사진 찍다 보니 지나가 자세히는 볼 수가 없었지만 대단하다

 

 

성모 대축일 12월12일이면 매년 수백만이 이곳에 방문한다고 한다

 

언덕위에서 내려다 본 구 성당과 신 성당

 

 

 

왼쪽의 노란색 지붕의 성당이 1709년 지어진 원래의 과달루페 성당(올드 바실리카)이다.

지진 등의 이유로 지반이 침하되면서 건물이 기울어져 계속적인 보강 공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성당 앞 지반이 침하되는 현상

 

 

 

후안 디에고의 앞에 나타난 성모 마리아는 145Cm 검은 머리, 갈색 피부의 인디언 모습

머리에서 발까지 내려온 청초록색 망토입는 모습을 보고 주교는 경이로움에 놀라 즉시 성모 형상이 새겨진

틸마 앞에 무릍을 끓고 눈물을 흘리며, 성모 마리아의 요청을 믿지 않고

무시한 죄에 대해 용서의 기도를 바쳤다 한다

성모 마리아는 원주민 어머니와 스페인 아버지 사이에 택어난 멕시코의 홍혈인 메스티스들에게 희망의 상징

스페인 침략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인디언과 맥시코 사람들의 수호신으로 믿고

그때부터 개종하기 시작했다고한다

 

올드 바실리카 안에 있는 과달루페 성모님 상

황색 피부에 검은 머리를 가진 과달루페 성모의 발현은 가톨릭으로 개종을 요구 당했던

스페인 침략시기의 원주민들에게 전통 원주민들에게 전통여신의 부활로 여겨져

많은현재 멕시코인의 90%가 카톨릭이다

 

 

올드 바실리카에 성모님 원화가 보관되어 있을 때

1921년 천주교를 적대시하던 멕시코공산당대원들이 성모화를 없애기위해 폭탄을 터트렸는데

 성모님 원화액자는 손상이없었고 제대위의 쇠로된 십자가만 이렇게 휘었대요!!

 

카푸치나스 수녀원

카푸치나스 수녀원의 내부

과달루페 수도원은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중요한 수도원의 하나가 되었다

 

광장 끝에는 잉카문명과 스페인 양식이 혼합된 시계탑

원주민이 새운 최초의 샘물교회 성당

 

 

 

 

성모님이 발현하셨던 언덕에 지어진 성미카엘성당

 

 

 

 

 

 

 

돌아가는 후안 디에고를 기다리시던 성모님

후안 디에고가 성모님을 만나고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원주민들이 성모님께
공경을 드리게 되는 것을 표현한 조각상들

테페야 언덕 중간에 있는 돛 모양의 탑

항해하던 선원들이 풍랑을 만나 성모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무사히 귀항 후  

배의 돛을 이 곳  테페야 언덕 위로 옮겨 세워 놓은 것이란다.

처음 세워 놓은 돛이 낡아 다시 시멘트로 세워놓은 것이란다

 

 

 

2019년 11월 작성

 

 벨기에 - '바뇌' 성모 성지

 

 벨기에 동부 '리에쥬(Liege)'에서 멀지 않은 독일 국경 인근에 위치한 "성모 발현지"인               

치유와 회개의기적을 일으킨다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라고 일컬어 지는 '바뇌

 "원죄 없는잉태의 성모"라고 불리우는 프랑스의 '루르드(Lourdes)'와             

 "로사리오의 모후"라고 불리우는 포르투칼의'파티마(Fatima)'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알려진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곳 중 하나이다.

 

'베코(Beco) 베지몽'의 장녀인 '마리에뜨(Mariette)'가 12살인 1933.01.15일 저녁에

동생을 돌보고  있는데 집뜰 앞   전나무 숲에서 홀연히 광채를 발하며 

서 있는 여인을 보게 되어 밖으로 나가려 하자 

귀신이 나타난 것으로 착각한 어머니가 못나가게 문을 잠가 버렸고 

그 사이 그 부인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그 이후 저녁때면 같은 장소에서 8번이나 성모님께서 '마리에뜨'에게 발현 하시면서

 말씀을 남기셨다고 한다

 

 

                   1933.01.18 : "나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이다."

                   1933.01.19 : "손을 이 물에 담그렴, 이 샘물은 모든 나라들과 병든 이들을 위하여 

                                      마련된 것이란다"

                   1933.01.20 : "나는 작은 성당 하나를 원한단다."

                   1933.02.11 : "나는 고통 받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왔다."

                   1933.02.15 : "나를 믿어라 나도 너희를 믿겠다."

                   1933.02.20 : "사랑스런 딸아, 기도 많이 하여라."

                   1933.03.02 : "나는 구세주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이다."

 

    '바뇌' 성모 성지는 1942년5월에 '리에쥬(Liege)' 교구 주교에 의해 공식 승인 받았고

    1947년에 교황청의 비준을 받았다고 한다.

   '파티마'나 '루르드'의 성모 발현을 본 어린이들은 모두 수도자가 되었으나 

    '바뇌'의 '마리에뜨'는 결혼하여 가정주부로 평범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바뇌' 성모 성지 입구      '

바뇌' 성모 성지 안내도

  

 

     왼쪽 건물이 성모님이 발현한 곳에 1933년 8월에 세운 '발현 소성당'이고

      오른쪽 건물은 '베코 마리에뜨'의 생가이다.

 

 

     '발현 소성당'에는 제대는 없고 '마리에뜨'앞에 발현하신 성모님 그림이 있다.

     그 오른쪽 '마리에뜨'가 무릎을 꿇은채 성모님을 바라보며 기도를 드리고 있다.

 

     '발현 소성당' 의 아치형 천정과 벽에는

     기적의 치유를 받은 이들의 이름들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기울인 채 온 몸에 광채를 띠며

      '마리에뜨'앞에 나타나신 '성모 마리아'

 

 

     '광장 성당' 입구에 서 있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 성상"

 

 

 

     '광장 성당'

 

 

     '광장 성당' 제대 위에 "하느님의 어머니, 구세주의 어머니(Mere du Sauveur Mere de Dien)"

 

     "나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이다"

 

     '광장 성당' 오른쪽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있는 신자들

 

     '성 미카엘' 소성당

 

     '성 미카엘' 소성당에서 기도 드리며 묵상하고 있는 두 신자.

 

     독일 연방 공화국의 초대 수상이었던 '콘라드 아데나우어(KONRAD ADENAUER)'의 기념 종탑

 

 

     초봉헌소

 

 

       발현하신 성모님께서 '마리에뜨'를 이 '기적의 샘'으로 데려가 손을 샘물에 담게하시고

       "이 샘물은 모든나라와 병든 이들을 위하여 마련 된 것이다"라고

 말씀 하신 치유와 기적의 샘이다.

이후 이곳의 참배객들이 샘에 손을 담고 샘물을 마신 후 수 많은 환자들이

       기적의 치유를 받았다고 전해 진다.

 

 

 

 

 

    

 

      1996년 4월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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