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에치미아진 대성당

에치미아진은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서 서쪽으로 약 20km 거리에 있는 인구 5만명의 작은 도시로서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뿌리이자 중심으로서 수많은 유적과 유물들을 간직하고 있는 보물과 같은 도시입니다

 

아르메니아가 기독교를 국교로 제정한301-303년에  성 그레고리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아르메니아 최초로 합법적 공인을 받은 성당입니다

 

에치미아진 대성당은 AD 301년에 성 그레고리와 트리다테스 3세에 의해 아르메니아가 기독교 국가가 된 후,

건축을 시작하여 그레고리가 세상을 떠난지 5년 후인 331년에 완공된 세계최초의 공식적인 교회건물입니다.

전해오는 이야기 5세기경 기록된 아르메니아 문서에 의하면,

에치미아진이라는 이름은 아르메니아어로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곳'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당시에 성 그레고리가 하늘에서 내려온 예수님이 황금망치로 땅을 내려치는 환상을 본 후에

그 자리에 교회를 세웠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명칭이지요. 


특히 기독교가 아르메니아의 국교가 된 4세기 초에 이곳에 아르메니아교회의 주교좌가 설치되었는데요,

이후 수도가 예레반으로 옮겨간 후 사산 왕조 시대인 5세기 중엽에 주교좌 역시 예레반으로 이전했지만,

1441년에 다시 총대주교 카라코스에 의해 총대주교 관구가 에치미아진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박물관 안에는 아르메니아 교회가 간직하고 있는 최고의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이것은 4복음서 필사본의 양장표지와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로마 병사의 사모창과

노아의 방주에서 떼어 왔다는 돌판 위의 십자가가 소장되어 있습니다

 

2001년에 아르메니아 건국 700주년을 기념하여 건립한 대성당 입구의 대형 조형물

십자가를 기준으로 좌측에 트리다테스 3세, 우측이 성 그레고리의 모습이 조각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총대주교 서품식행사가 있는 날입니다

 

대성당의 부속건물의 식당

대성당 출입문 좌우측에는 예수님의 생애를 담은 성화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의 한 손에는 망치, 한 손에는 십자가가 들려 있습니다.

오른쪽 아래에는 이를 지켜보는 성 그레고리가 있네요.

아래로 아라랏산이 있고, 최초로 건축된 성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당뒤 박물관 안에는 아르메니아 교회가 간직하고 있는 최고의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이것은 4복음서 필사본의 양장표지와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로마 병사의 사모창과

노아의 방주에서 떼어 왔다는 돌판 위의 십자가가 소장되어 있습니다

 

롱기누스의 창​

 이 박물관의 최고의 성물이자 보물인 게하르트, 즉 "롱기누스의 창"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로마병사 롱기누스는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이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는데,

찌르는 순간 그는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흘린 피로 자신의 눈을 씻자 곧 다시 보게 되었고, 그 후로 롱기누스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열렬한 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도 타대오가 아르메니아에 올 때 가져온 이 창을 약 5백년 동안 게하르트 수도원에 보관했다가

이 에치미아진으로 옮겨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십자가는 아라랏산 노아의 방주에서 떼어낸 돌판(나무의 화석) 위에 붙인 것이라는데요,

4세기 경에 아르메니아의 수도사 한 사람이 아라랏산에서 수도생활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때 한 천사가 나타나 말하기를 "잠에서 깨어나시오. 당신의 손 위에 나무 조각이 있을 것이요.

이것은 노아의 방주에서 떼어낸 것이오"라고 했습니다.

그 늙은 수도사가 잠에서 깨어나보니 정말로 자신의 손 바닥 위에 돌로 된 나무조각 화석이 놓여 있었다고 하네요.

수도사가 가져온 나무화석 위에 보석으로 장식된 황금 십자가를 붙여 놓은 것이 지금까지 전해져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성 흐립시메 교회

 

 36명의 수녀가 순교당한 성 가야네 성당

 

이 성당은 7세기 교회로 흐립시메와 함께 로마황제의 박해를 피해 피신 온 수녀 가야네는 630년 처형당했는데

처형된 이곳에 교회가 세워졌고 지하에 그녀의 무덤이 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아르메니아인의 영적인 산 아라랏산

유태인들을 제외하고 세계 역사 속에서 아르메니아인들만큼 고난의 역사를 가진 민족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라랏산은 아르메니아인들의 뿌리일 뿐 아니라

그긴 고난의 역사 가운데서 민족을 하나로 묶어준 구심점이기도 했습니다. 

구약 창세기 8:4에 보면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아라랏산은 대홍수 재앙을 피한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을 태운 방주가 홍수가 그치고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기나긴 표류를 끝내고 멈춘 곳이지요.

 

아르메니아 대평원에 우뚝 솟은 아라랏산은 해발 5,137m의 대아라랏과 3,896m의 소아라랏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아라랏은 그 봉우리가 일년내내 만년설로 뒤덮여 있고,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그 주변은 광활한 초원지대가 형성되어 유목민들이 목축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중세시대까지 아르메니아인들의 땅이었던 아라랏산은 오스만투르크에게 정복당한 후 지배권이 터키로 넘어갔고,

19세기말 터키에 의해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인종청소가 시작되면서

아르메니아인들은 더 이상 아라랏산에 오를 수조차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코르비랍 수도원

 코르비랍 수도원은 "깊은 우물"이란 뜻을 가진 아르메니아가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된 사연을

간직한 곳으로서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르메니아에 최초로 기독교가 전파된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 사도 바로톨로메오와 유다(타대오)가

이곳에 와서 복음을 전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볼 때 AD 1세기였을 것입니다. 


아르메니아 왕국의 통치자 트리다테스 3세 시대에 왕의 신하였던 그레고리(A.D. 257-331)가

이곳 코르비랍 지하 감옥에 갇히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레고리의  아버지는 트리다테스 왕의 아버지를 죽인 후 쫓겨다니다가 카파도기아로 피신하게 됩니다.

그레고리는 그곳에서 성장하였고, 사제가 되어 자신의 고향 아르메니아로 돌아왔습니다.

아르메니아에서 기독교를 전파하던 그는 왕에 붙잡히게 되었고, 왕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죄와

이교를 전파한 죄를 묻고 아나히타 신에게 제물을 바치라고 명령합니다.

이 왕의 명령을 거부하자 왕은 그를 깊은 지하감옥인 코르비랍에 가두어 버린 것이지요.

그레고리를 감옥에 가두고, 동로마에서 아르메니아에 기독교를 전하러 온 33명의 수녀들을 가혹한 방법으로

살해하면서 기독교를 박해하던 왕은 어느날부터 심각한 정신적인 질환에 시달리게 됩니다.

날마다 고통스러워하던 왕은 어느날 자신이 십 수년 전에 감옥에 가두었던 그레고리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찾아가게 됩니다.  코르비랍은 한 번 들어가면 죽어서 나올 수밖에 없는 지하 감옥이었죠.

그런데 그곳에서 그레고리는 기적처럼 살아 있었고, 그레고리로부터 복음을 들은 왕은 회개하고

자신의 정신병을 고침받게 됩니다.

기독교인이 된 왕은 그레고리와 함께 기독교를 아르메니아의 국교로 선포하였고,

그레고리는 아르메니아 최초의 주교가 되었습니다. 

그 후 5세기에 그레고리가 14년 동안 갇혀있던 감옥 위에 교회와 수도원을 세웠고,

이 수도원이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완공된 것은 17세기라고 합니다.

코르비랍이 아르메니아인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두 가지겠지요.

첫째는 자신들의 마음의 고향이자 거룩한 산인 아라랏산을 가장 가까이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때문이요,

그리고 둘째는 아르메니아 기독교 신앙의 뿌리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십자가 외의 상징이나 그림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내부에 들어가보아도 성 모자의 그림 하나 외에는 다른 성화나 그림들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은  십자가 문양을 깊은 기도와 온갖 정성을 담아 조각하여 설치합니다.

오랜 전통인 이 십자비는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만의 독특한 유산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라랏산 일출촬영을  위한 새벽출사 .

아르메니아 선교를 위해 예수님의 두제자가 만났다는 장소

* 바돌로매와 타대오가 아르메니아 선교를 위해 만난 그 언덕에 큰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코르 비랍 수도원이 순례지로 주목받는 이유는 성 그레고리가 아르메니아의 왕 티리다테스 3세에

의해 13년 동안 이곳에 투옥되었고, 이후 <성 그레고리>는 왕의 종교적 멘토가 되었고,

그들이 나라에서 기독교 전도 활동을 이끌어 가갔으며,

301년에 아르메니아는  세계 최초로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17세기에 건설된 이 성모교회가 본당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성모교회

수도원의 전면부 . 조지와 수도원과 비슷한듯 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느낌이 나더군요.

조지아의 수도원들은 첨탑이 원형인데 아르메니아 교회는  12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교회 내부,조지아정교회와는 달리 사제단과 회중석 사이의 가림막이 없습니다.

벽에 성화를 그리지 않고 전면부에 성모자와 아르메니아 교회 성인들 사진만 붙어 있습니다.

조지아정교회와 달리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십자가 외의 상징이나 그림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내부에 들어가보아도 성 모자의 그림 하나 외에는 다른 성화나 그림들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성 그레고리>가 던져졌던 코르 비랍(깊은 구덩이) 지하실로 통하는 문

성 그레고리가 갇혀있던 지하감옥으로 내려가는 사다리

지하 감옥에  조그만 기도소가 있습니다

 성 바돌로매와 성 타대오의 두성인 (사도 타대오가 아르메니아에 올 때 가져온  창)

적외선기법의사진 

예루살렘 성전이 바라보이는 감람산 아래 온통 무덤들로 가득한 것처럼

아르메니아 인들은 아라랏산이 바라다보이는 이곳에 공동묘지를 조성했습니다

 

노아의 방주에서 떼어온 돌판(나무의 화석) 관련 전설이 있네요.(에치미아진대성당 박물관에보관)​

4세기경, 아르메니아의 수도사가 아라랏 산에서 수도생활하다가 잠이 들었다.

천사가 와서 "잠에서 깨어나시오. 당신의 손 위에 나못조각이 있을 것이오 .

이것은 노아의 방주에서 떼어낸 것이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쇠한 수도사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손바닥 위에 나못조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수도사가 가져온 나뭇조각위에 보석으로 장식된 황금 십자가를 붙여놓았다.

 

튀르키예(터키)지역 아라랏산 노아의방주 유적

 

 

예수님의 성의(聖衣)가 묻혀있는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조지아의 성인 열전에 따르면 1세기에 이름이 엘리야인 유대계 조지아인이 므츠헤타를 떠나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예루살렘에 있었다고 한다.

엘리아는 골고타에 있는 로마의 군인에게서 예수의 옷을 사서 조지아로 가져왔다. 

고국으로 돌아온 엘리아는 그의 누이 시도니아를 만났는데, 그녀는 그 옷이 손에 닿자마자

그 성스러운 물건이 감정을 격하게 하여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그 옷은 그녀의 꽉쥔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그 옷과 함께 땅헤 묻혔다.

 

 시도니아가 예수의 옷과 함께 묻힌 묘소는 대성당에 보존되어 있다. 그 후에, 

그녀의 묘소에서 거대한 삼나무가 자라났다. 성녀 니노는 교회를 짓기위해 그 삼나무를 베라고 명령했고,

그 나무로 성당의 토대가 되는 일곱 기둥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일곱 기둥은 불가사의한 힘으로 일어나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성녀 니노가 밤새도록 기도를 한 다음에야 그 나무는 다시 나타났다.

그 신비한 일곱 기둥에서 사람들의 모든 질병을 치유해 주는 성스러운 액체가 넘쳐 나왔다고 전해진다. 

조지아어로 스베티는 "기둥"을 의미하며 츠코벨리는 "삶을 주는" 또는 "살아 있는"을 의미하므로,

그 성당의 이름이 되었다.

 

그 사건을 표현한 성화는 입구 오른편의 두 번째 기둥에서 볼 수 있다.

조지아 전역에서 널리 재연된 그 성화에서는 천당에서 천사가 된 시도니아가 기둥을 들어 올리고 있다.

성녀 니노가 전경에 있고, 미리안 왕과 그의 왕비 나나는 오른쪽과 왼쪽에 있다.

조지아는 317년에 기독교를 공식적인 국교로 채택했다

글 출처 : 위키백과

예수님이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박혔고 그십자가의 일부가 여기 보관되어 있어요

 



예수님이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박혔고 그십자가의 일부가 여기 보관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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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사스3국  성지순례 (조지아편)

조지아  역사

유럽과 중앙아시아의 경계인 코카사스 산악지대에 위치해 교통ㆍ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국가다.

이 같은 지리적 특성상 주변국들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을 받았고,

이에 따라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민족 구성을 가진 국가 중에 하나가 되었다.

 

과거 로마제국, 페르시아제국, 오스만 제국(터키) 등 여러 국가의 지배를 받았으며

페르시아와 터키 왕국의 분쟁으로 조지아는 반으로 분단됐다.

분열된 국토 중 일부는 페르시아 제국이 점령했고 러시아와 터키 제국이 각각 점령하였다.

그러나 1870년 러시아가 터키로부터 조지아의 통치권을 완전히 빼앗아 온 후,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는 독립하기 전까지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

이후 1918년 5월 26일 독립을 선언했지만 1920년 5월 볼셰비키 붉은 군대에 의해 점령,

1922년 12월 22일 정식으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에 편입되었다.

 

조지아는 독립을 위해 1989년 자치공화국 수립을 주장하며

본래 영토 수복을 요구하는 시위를 일으켜 소련연방에 대항하였고,

수많은 사상자가 나와 소련연방 안에 반대 세력이 증가하였다.

 

그 결과 1989년 11월에는 조지아 최고 법원은 조지아의 법이 소련연방법보다 우선한다고 선언하였고,

1990년 2월에는 ‘조지아는 소비에트 연방에 의해 강제 합병으로 점령당했던 나라였다.

1990년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신생국가 중 하나로,

유럽 대륙과 아시아 경계에 위치해 있다. .

 

 

 

조지아(Georgia)는 북쪽으로 러시아,남쪽으로 터키와 아르메니아.

남동쪽으로 아제르바이잔 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국토의 2/3가 산악지대이며, 면적은 6만 9700㎢ 로 한반도의 1/3에 이른다.

조지아는 ‘고단한 외세의 침입 속에서도 고유의 언어와 문자를 지키고 있는 나라,

세계 최초의 와인 원산지로 꼽히는 나라, 푸쉬킨이 사랑했던 나라,

아름다운 흑해와 코카서스 산맥을 지붕 삼아 건강과 자연을 지키고 사는 나라다.

 

조지아 북쪽은 러시아, 남쪽은 튀르키예와 아르메니아, 남동쪽은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1936년 소비에트 연방을 구성하던 공화국의 하나인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이루다가

 1991년 4월 9일 독립하였다.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 서기장으로 약 30년간 국가 원수였던 스탈린이 조지아 출신이다.

조지아의 이곳저곳

트리비시. 무츠헤타. 구다우리 .카즈베기 .우플리치케 .구타이시. 메스티아.코롤디호수 .시그나기

카헤티. 아나누리. 바르지아동굴.게르게티수도원 .우쉬구리. 보르조미. 아할치에 (라바티성채) 

 

수도트빌리시

사메바성당

트빌리시야경

 

 

쿠타이시 게라티수도원

무츠헤타 즈바리수도원

구다우리전망대

우플스치케고대동굴마을

 

우쉬구리 (슈카라라산4.710m)

스반족의 상징 스바네티(코시키)

메스티아

바르지아고대동굴수도원

마르티빌협곡

 

 

​북코카사스산맥

 

카즈베기  게르게티 삼위일체성당

  우리인간에게 불을전해준  신화속의  프로메테우스

다비드 가레자 동굴수도원

 

                                      조지아 커피와 미국의 조지아는 이나라(조지아)와 다릅니다

 

 
 
 

예수님의 수의(壽衣)가보관된  토리노성당  

               



토리노 두오모(조반니 바티스타 성당)
     
이 건물은 1491년~1498년에 지었으며 1997년 화재로 일부 소실되었지만 복구되었다.
두오모라고 더 잘 알려진 이 대성당은 성의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예수의 시신을 감싼 것으로 전해진다.
가로 1m, 세로 4m의 아마포로 십자군 전쟁 때 터키에서 발견돼
1572년부터 이탈리아 토리노 성당에 보관돼 오고 있다.
1898년 처음으로 사진을 촬영하자 육안으로 보이지 않던 ‘예수의 형상’이 나타나 ‘기적’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신앙의 대상이 돼 왔으며 수차례의 화재로 소실될 뻔 했다.
1998년도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 실험 결과 12세기경의 천으로 알려지면서
 지금은 예전의 영광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1578년부터 이탈리아의 토리노 대성당에서 특별 보관하고 있는이성의의 연대와 형상 흔적의 실체를
현대과학은 아직까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교황은 이날 "성의 공개는 인류의 가슴에 조용히 속삭이는 듯한 신비로운 형상(얼굴)을
 묵상하는 하느님 자비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의 시신을 감쌌다고 알려진 '토리노 수의'가 2002년 복원 작업 이후
처음으로 일반에게 공개됐습니다.

앞으로 6주 동안 수의를 전시할 이탈리아 토리노 성당에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포함해 200만 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1898년 토리노 성당에서 성수의를 일반에게 공개 할때에 만든 포스터.
예수의 얼굴 모습은 콧수염이 있는 것으로 그렸다.
얼굴 모습 아래에는 성수의를 접지 않고 펼친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같은 이미지가 두 개 프린트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토리노 성당은  
지난 1997년 화재 피해로 종탑은 여전히 복구 중이지만 다행히
성당 최고의 보물은 무사했습니다.
예수의 시신을 감쌌다고 알려진 '토리노 수의'는 오랜 세월의 풍파와 화마 속에서도 무사했습니다.
성당에 들어서면 짧은 영상물이 상영되고,잠시 후 어둠 속에서 부드러운 빛으로 감싸진 수의가 떠오릅니다.
16세기 수녀들이 조각난 것을 붙인 수의는 화재로 손상된 뒤 지난 8년간 복원 작업을 거쳤습니다
.
직접 와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예수님의 얼굴이 분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네거티브 이미지이지만 얼굴의 굴곡과 생김새가 선명합니다.
하지만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예수님의 얼굴이라고 믿는 반면,가짜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토리노 성당의 대주교는 관람객들에게 머리보다 마음으로 수의를 보라고 조언합니다.
진위에 상관없이 중요한 믿음의 수단이 된다는 것이 성당 측의 입장입니

토 리 노 


토리노는 1899년 이탈리아 최초의 자동차 회사 피아트가 세워진 ‘피아트의 도시’였고 
2006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자동차도시에서 관광도시로 거듭난 도시

 

  
토리노의 상징 몰레 안토넬리아나
토리노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에펠탑이 완공되기전만해도
 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현재는 영화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 패트릭 성당(St. Patrick’s Cathedral)

아일랜드 더블린 성패트릭성당 아일랜드 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국가의 공식적인  종교 행사를 치르기도 한다

성패트릭 성인의 이름을  딴 성당 이곳은 아일랜드에 처음 그리스도교와  로마글자를  

전파한 인물로 수호성인 이기도 한 그의 이름으로그를  기리기위해 지어졌다

 

보통 3월 16일에서 18일 에 이날에는 온나라 전체가 모두 초록색으로 물든다고해요

셔츠,양말,넥타이꽃,리본 케익 모든것이 초록색으로 치장되는데

전세계적으로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모인곳 미국,캐나다 등등  

어디든 명절을 즐기는 이들로 온통 거리가 초록색으로 물든다고 하네요

아일랜드 는 초록옷을 입고 최고의 명절을 지내는 날이 있어요

 

아일랜드의  기독교를 처음으로 전파한 성 패트릭의  사망을 기리는 날인데

성직자로 추앙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영웅이기도한 그를 기리는 행사로는 

 삼위일체를 설명할때   초록의 클로버를 사용했다는 전통으로

클로버는 성 패트릭날의 전통 이다

성 패트릭

라틴어로는 ‘파트리키우스(Patricius)’, 영어로는 ‘패트릭(Patrick)’

 이탈리아어로는 ‘파트리치오(Patrizio)’,

 아일랜드어로는 ‘파드라그(Pádraig)’라고 한다.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서 ‘아일랜드의 사도 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일랜드의 수호성인 가운데 한 명이며, 기념일은 3월 17일이다.

 

영국 웨일즈의 한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16세에 아일랜드 해적들의 습격을 받고 끌려가 6년 동안 노예로 지냈다.

그는 아일랜드 언트림 슬레미시 산에서 양을 치면서 지냈는데, 포로로 잡혀있는 동안 그리스도교에 귀의하였다.

그 후, 어느 날 꿈속에서 천사가 나타나 집으로 가도록 도와주었는데, 약 320km 이상을 걸어가

아일랜드 해협을 배로 건너 고향 웨일즈로 갔다. 그는 영국으로 가려 했으나 도착한 곳은 프랑스였다.

​그는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신부가 되었다.

패트릭은 1883년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성직자가 되어 자신이 노예로 있던 아일랜드로 돌아가,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면서 우물가에서 성수를 찍어 세례를 주었다.

그의 노력으로 섬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믿게 되었으며, 

그는 평생 그곳에서 성직자로 봉사하고 영웅으로 추앙되었다.

지금도 아일랜드에는 그의 이름을 딴 교회들이 60개가 넘는데,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더블린의 성 패트릭 성당이다.

지금도 더블린 시민의 90%가 가톨릭신자이다.

더블린 시내 중심지역에 위치한 성 패트릭 성당은 패트릭 성인이 AD 450년 아일랜드에 머물던 때에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행했던 우물가에 세운 교회이다.지금도 성 패트릭 공원에 있는 성당 옆에는 그 우물터였던 유적이 있다.

성 패트릭 성당은

초기 영국의 고딕 양식 건축물로서 아름다운 조각과 화려한 바닥 타일,화려하고 멋진 스태인드 글라스로

꾸며진 창문들로 장식되어 있다   .한국은 교회와 성당의 구분이 뚜렷하지만,

유럽은 규모와 크기에 따라 교회의 규모에 따라 chaple < church < cathedral < church cathedral로 나뉜다.

 

 

기네스가 의 벤지민 기네스경 동상

헨델의 메시아 초연 당시 파이프 오르간

1742년 헨델이 메시아를 조지 프레드릭 헨델 호텔에서 초연할 당시, 

사용한 파이프 오르간을 보관하고 있다



성당 내부에 있는 화해의 문

1492년 명문가문인 킬데어(Kildare)가(家)와 오먼드(Ormond)가(家)의 불화가 심해지자

오먼드가의 백작인 제임스 버틀러 경과 그의 가족들은 이 성당 안으로 피신을 했다.

성당 밖에서 포위하고 있던 킬데어의 백작 제럴드 피츠제럴드는 화해를 시도했지만,

오먼드가는 킬데어가의 진의를 믿지 못하여 성당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진의를 보이기 위하여 성당 문에 구멍을 내고 그 안으로 자신의 팔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버틀러경은 피츠제럴드의 손을 잡으며 두 집안이 화해를 하였다고 한다.

 

마리아 군단의 첫 모임은 1921년 9월 7일 프랜시스 거리의 마이라 하우스에서 열렸습니다.

이후 이 종교 단체는 170여 개국에 지부를 두고 성장해 왔습니다.

프랜시스 거리에 있는 이 유서 깊은 건물은 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로,

당시의 좁은 골목길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따라서 종교적인 의미 외에도 건물 자체도 매우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 레지오 마리애 창립지: 마이라 하우스 (Myra House)

레지오 마리애는 1921년 9월 7일, 아일랜드 더블린의 **프랜시스 거리(Francis Street)**에 위치한 **'마이라 하우스(Myra House)'**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 설립자: 하느님의 종 **프랭크 더프(Frank Duff)**와 미카엘 토허(Michael Toher) 신부, 그리고 약 15명의 평신도 여성들이 모여 첫 회합을 가졌습니다.
  • 역사적 배경: 당시 이 건물은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회(Society of St. Vincent de Paul)의 활동 거점이었습니다. 첫 모임의 명칭은 '자비의 모후단(Association of Our Lady of Mercy)'이었으며, 이후 '레지오 마리애'라는 명칭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 의의: 더블린의 가난한 지역에서 소수의 인원으로 시작된 이 모임은 현재 전 세계 170개국 이상에서 수백만 명의 단원이 활동하는 세계 최대의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단체로 성장했습니다.

장소의 특징

마이라 하우스는 오늘날에도 더블린의 역사적인 장소로 남아 있으며, 건물의 외벽에는 레지오 마리애의 탄생을 기념하는 현판이 설치되어 있어 전 세계 레지오 단원들의 주요 성지 순례지가 되고 있습니다.

 

  • 콘칠리움 레지오니스(Concilium Legionis Mariae): 레지오 마리애의 세계 최고 평의회 본부는 현재도 더블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North Brunswick Street).
  • 프랭크 더프의 집: 창립자인 프랭크 더프가 생전에 거주하던 집도 더블린에 보존되어 있어 함께 방문하곤 합니다.

크라이스트 처치 대성당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은 더블린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이며 거의 천 년 동안 순례지로 사랑받아 왔습니다

 아름다운 건축 양식과 정교한 바닥 타일, 그리고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규모를 자랑하는

12세기 지하 예배당으로 유명합니다.

초기 중세 바이킹 정착지였던 더블린의 중심부에 위치한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은

1030년 더블린 노르만족의 왕 시트리우크에 의해 건립되었습니다.

1152년 ​​아일랜드 교회에 편입되었고,

이후 더블린의 수호성인이자 유명한 대주교인 로렌스 오툴의 지도 아래 운영되었습니다.

크라이스트처치는 오랜 세월 동안 1487년 램버트 심넬의 에드워드 6세 대관식이라는 악명 높은 사건을 포함하여

수많은 중요한 사건들을 목격해 왔습니다.

펴 옴

세인트패트릭은 누구인가?

성 패트릭이 아일랜드에 선교할 당시 아일랜드에는 켈트족이 살고 있었다.

문명화된 로마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아일랜드에 사는 켈트족들은 야만인이나 다름없었으며,

로마 교황청은 켈트족의 선교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성 패트릭은 아일랜드 원주민에 대한 편견에 굴하지 않고 켈트족을 선교하기 시작했다. 

성경 속 인물에 대해 켈트족의 성향에 맞춰 아주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며 가톨릭을 널리 전파했다.

예를 들면, 하느님의 교의인 삼위일체(三位一體; 성부(聖父) · 성자(聖子) · 성령(聖靈)의 세 위격(位格)이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고, 하나의 실체인 하느님이라는 교의 를 설명할 때,

잎이 세 개인 ( 토끼풀)에 비유해 원주미의 이해를 도왔다. 

오늘날 아일랜드를 비롯해 아일랜드계 이주민이 많이 살고 있는 미국ㆍ오스트레일리아 등의 지역에서는

그가 죽은 3월 17일을 ‘성 패트릭의 날(St. Patrick's Day)’로 정해서 기리는 행사가 성대하게 벌어진다.

이 날에는 사람들이 초록색 옷을 입고 세 잎으로 된 토끼풀 모양을 가슴이나 모자 등을

붙이고 행사에 참석해 행진 등을 벌인다.

이것은 성 패트릭이 토끼풀의 세 잎을 보기로 들어서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했다는 일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이것을 샴록(Shamrock) 이라고 불러요.

성 패트릭은 기독교를 전파할 때 샴록으로 삼위일체를 설명했다고 해요.

아일랜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셀틱 십자가(Celtic Cross) 

걸리버 여행기로 유명한 조나단 스위프트도 성패트릭성당의 사제였다고 한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소설가이자 성당의 주임 사제였던 조나단 스위프트와 그

의 연인이었던 스텔라의 묘지와  켈트족의 묘지 등이 있다.

 

걸리버 여행기 1726년에 출판된 『걸리버 여행기』도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nbsp;인간과 인간사회에 대한 풍자,&nbsp;특히 영국의 아일랜드에 대한 착취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기네스 맥주 탄생지 더블린

더블린은 아일랜드 수도이자 최대 도시다.

게일어로 '단단히 다져진 땅'이란 뜻인 더블린은 988년 사람들의 정착이 시작돼 1998년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았다.

잉글랜드의 튜더 왕국이 들어선 17세기부터 빠르게 성장하며 한때 대영제국 도시들 가운데 둘째로 큰 도시가 됐다.

아일랜드가 1922년 영국에서 독립하면서 정식 수도가 됐다.

영문학사에 길이 남을 예이츠, 버나드 쇼, 사무엘 베케트 등 수많은 작가를 배출했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의 고향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네스 맥주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흑맥주 기네스가 태어난 곳으로도시의 펍 어디에서나 기네스를 즐길 수 있다.

또 유네스코가 선정한 문학의 도시로 새무얼 베케트, 제임스 조이스 등 대문호를 배출했다.

트리니티 구 도서관, 아일랜드 국립 도서관, 마시 도서관 등 역사 깊은 도서관이 많으니 들러 볼 것.

음악을 사랑하는 국민성 덕분에 어디에서나 들려오는 음악은 이 도시를 더욱 매력적이게 만들어준다.

아일랜드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더블린을 고향이라고 부를 만큼 아일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유럽에서 가장 젊은 인구가 살고 있는 현대적인 도시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인 트리니티 칼리지가 있어 전 세계의 학생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더블린에는 중세 및 현대 건축의 조화로움과 역사적인 명소들, 세계적인 문학, 그리고 맛있는 맥주가 있다.

과거 세련된 바와 고급 레스토랑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도시의 분위기가 세련되게 변화했다.

특히 그래프턴 스트리트(Grafton Street)와 그 주변의 쇼핑 명소, 레스토랑, 엔터테인먼트 명소들은

언제나 수많은 관광객들이 붐비는 곳이며,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바와 펍에서 아이리쉬 맥주를 즐기거나,

다채로운 박물관과 갤러리에서 역사와 문화를 탐험하기 좋다.

 

도시는 풍부한 문화와 예술에 못지 않게 중세 성곽과 대성당, 제임스 조이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조지 버나드 쇼, 사무엘 베켓을 기리는 명판 등 풍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산물들은 1,000여 년 전에 더블린이 성경을 생산하는 승려들의 안식처였을 때

시작된 것으로, 800년에 만들어진 유명한 켈스의 책이 그 결과물 중 하나이다.

이 책은 현재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더블린 [Dublin, Du

 

더블린(Dublin)은 리피 강 어귀에 있는 아일랜드의 동쪽 해안에 자리 잡고 있다.

맥주, 문학, 음악을 한곳에서 즐길 수 있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Grafton street!!!

버스킹의 성지이자 쇼핑의 거리

명품샵도 많고 브랜드상점, 화장품, 백화점, 약국, 신발가게 등등 없는 게 없다.

 

아일랜드 더블린 시내 그래프턴 스트리트

더블린 시티 센터에 있는 그래프턴 스트리트는 조용하고 여유로움이 가득한 다른 곳과 달리

수많은 관광객들과 현지인들로 활기찬 거리이다.

거리에 펼쳐진 상점들과 카페들 사이로 바쁘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 틈을 거닐며

아일랜드 여행 중 오랜만에 대도시에 온듯한 기분이 들었다.

더블린의 '명동'이라 불리는, 그라프턴 스트리트

이 곳은 버스킹의 성지라 불릴 만큼 다양한 뮤지션들의 거리 음악, 예술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영화 <원스>의 첫 씬에서 주인공이 버스킹을 하던 곳으로, 

또한 각종 상점가, 쇼핑몰들이 위치해있는 중심지로도 볼 수 있다.

더블린은 영화 원스(Once)의 촬영지로도 유명한데 특히 그래프턴 거리가 주 촬영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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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린 말론 동상 (Molly Malone)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민요의 주인공이라는 몰리 말론

더블린 거리에서 낮에는 생선을 팔고 밤에는 매춘부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다

젊은 나이에 열병으로 사망한 여인이라고 한다.

식민지 시절 아일랜드인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중요한 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더블린 데이 투어를 할 때 만남의 장소로 사용되는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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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 바(The Temple Bar)
교사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템플(Sir William Temple)이 1599년 영국 왕의 아일랜드 대리인으로 더블린으로 이주했다. 그는 이 지역에 집과 정원을 지었으며, 그의 아들인 존 템플이 현재 템플 바 지구의 개발을 승인하여 현재에 이르렀다고 한다.
바(Bar)는 원래 걷는데 사용하는 모래톱(sandbank), 즉 제방을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가게는 특유의 붉은 색이 워낙 강렬해서 이 지역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다.
낮부터 벌써 시끌시끌하다. 유럽이 대부분 그렇지만 여기도 낮술하기 좋은 나라다.

아일랜드 여행의 꽃, 기네스 맥주를 맛볼 수 있는 템플 바

기네스의 본 고장 아일랜드 더블린 여행에 빠질 수 없는 필수 명소이다.

'템플 바'는 더블린에는 800여 개의 무수히 많은 펍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굳건히 유명세를 지키는 곳이다.

무대 위 가수들의 생생한 라이브 공연에 부드러운 기네스 맥주 한 잔 하기 좋은 곳이다.


아일랜드의 가수인 필 라이넛(Philip Parris Lynott)의 동상.

아일랜드 시민들의 자부심, 더블린 스파이어

원래 이 자리에는 넬슨 기념비가 서있으면서 시민들의 천대를 받고 있었는데

결국 부활절 봉기 50주년 기념 테러로 산산조각이 나게 되었다.

그 후 국제적인 공모를 통해 <스파이어>를 건설하였고

아일랜드인이 영국인의 국민소득을 추월한 시점의 상징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아일랜드 위스키, 제임슨 증류소 

17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아일랜드의 위스키 발상지로

자신만의 아일랜드 위스키를 블렌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곳

기네스(Guinness)! 아일랜드를 모르는 사람도 기네스라는 이름은 모두 알고 있을 것 같다.
이 나라를 대표하는 맥주이자 기네스 북으로도 잘 알려진 이름이다.

 

 

 

 

 

성모마리아의 빈무덤 

카톨릭 전승에 의하면  성모마리아도 승천하셨고  그무덤은 감람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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