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 성당(St. Patrick’s Cathedral)

아일랜드 더블린 성패트릭성당 아일랜드 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국가의 공식적인  종교 행사를 치르기도 한다

성패트릭 성인의 이름을  딴 성당 이곳은 아일랜드에 처음 그리스도교와  로마글자를  

전파한 인물로 수호성인 이기도 한 그의 이름으로그를  기리기위해 지어졌다

 

보통 3월 16일에서 18일 에 이날에는 온나라 전체가 모두 초록색으로 물든다고해요

셔츠,양말,넥타이꽃,리본 케익 모든것이 초록색으로 치장되는데

전세계적으로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모인곳 미국,캐나다 등등  

어디든 명절을 즐기는 이들로 온통 거리가 초록색으로 물든다고 하네요

아일랜드 는 초록옷을 입고 최고의 명절을 지내는 날이 있어요

 

아일랜드의  기독교를 처음으로 전파한 성 패트릭의  사망을 기리는 날인데

성직자로 추앙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영웅이기도한 그를 기리는 행사로는 

 삼위일체를 설명할때   초록의 클로버를 사용했다는 전통으로

클로버는 성 패트릭날의 전통 이다

성 패트릭

라틴어로는 ‘파트리키우스(Patricius)’, 영어로는 ‘패트릭(Patrick)’

 이탈리아어로는 ‘파트리치오(Patrizio)’,

 아일랜드어로는 ‘파드라그(Pádraig)’라고 한다.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서 ‘아일랜드의 사도 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일랜드의 수호성인 가운데 한 명이며, 기념일은 3월 17일이다.

 

영국 웨일즈의 한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16세에 아일랜드 해적들의 습격을 받고 끌려가 6년 동안 노예로 지냈다.

그는 아일랜드 언트림 슬레미시 산에서 양을 치면서 지냈는데, 포로로 잡혀있는 동안 그리스도교에 귀의하였다.

그 후, 어느 날 꿈속에서 천사가 나타나 집으로 가도록 도와주었는데,  320km 이상을 걸어가

아일랜드 해협을 배로 건너 고향 웨일즈로 갔다. 그는 영국으로 가려 했으나 도착한 곳은 프랑스였다.

그는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신부가 되었다.

패트릭은 1883년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성직자가 되어 자신이 노예로 있던 아일랜드로 돌아가,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면서 우물가에서 성수를 찍어 세례를 주었다.

그의 노력으로 섬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믿게 되었으며, 

그는 평생 그곳에서 성직자로 봉사하고 영웅으로 추앙되었다.

지금도 아일랜드에는 그의 이름을 딴 교회들이 60개가 넘는데,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더블린의 성 패트릭 성당이다.

지금도 더블린 시민의 90%가 가톨릭신자이다.

더블린 시내 중심지역에 위치한 성 패트릭 성당은 패트릭 성인이 AD 450년 아일랜드에 머물던 때에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행했던 우물가에 세운 교회이다.지금도 성 패트릭 공원에 있는 성당 옆에는 그 우물터였던 유적이 있다.

성 패트릭 성당은

초기 영국의 고딕 양식 건축물로서 아름다운 조각과 화려한 바닥 타일,화려하고 멋진 스태인드 글라스로

꾸며진 창문들로 장식되어 있다   .한국은 교회와 성당의 구분이 뚜렷하지만,

유럽은 규모와 크기에 따라 교회의 규모에 따라 chaple < church < cathedral < church cathedral로 나뉜다.

 

 

기네스가 의 벤지민 기네스경 동상

헨델의 메시아 초연 당시 파이프 오르간

1742년 헨델이 메시아를 조지 프레드릭 헨델 호텔에서 초연할 당시, 

사용한 파이프 오르간을 보관하고 있다

성당 내부에 있는 화해의 문

1492년 명문가문인 킬데어(Kildare)()와 오먼드(Ormond)()의 불화가 심해지자

오먼드가의 백작인 제임스 버틀러 경과 그의 가족들은 이 성당 안으로 피신을 했다.

성당 밖에서 포위하고 있던 킬데어의 백작 제럴드 피츠제럴드는 화해를 시도했지만,

오먼드가는 킬데어가의 진의를 믿지 못하여 성당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진의를 보이기 위하여 성당 문에 구멍을 내고 그 안으로 자신의 팔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버틀러경은 피츠제럴드의 손을 잡으며 두 집안이 화해를 하였다고 한다.

 

펴 옴

세인트패트릭은 누구인가?

성 패트릭이 아일랜드에 선교할 당시 아일랜드에는 켈트족이 살고 있었다.

문명화된 로마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아일랜드에 사는 켈트족들은 야만인이나 다름없었으며,

로마 교황청은 켈트족의 선교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성 패트릭은 아일랜드 원주민에 대한 편견에 굴하지 않고 켈트족을 선교하기 시작했다. 

성경 속 인물에 대해 켈트족의 성향에 맞춰 아주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며 가톨릭을 널리 전파했다.

예를 들면, 하느님의 교의인 삼위일체(三位一體; 성부(聖父) · 성자(聖子) · 성령(聖靈)의 세 위격(位格)이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고, 하나의 실체인 하느님이라는 교의 를 설명할 때,

잎이 세 개인 ( 토끼풀)에 비유해 원주미의 이해를 도왔다. 

오늘날 아일랜드를 비롯해 아일랜드계 이주민이 많이 살고 있는 미국ㆍ오스트레일리아 등의 지역에서는

그가 죽은 3월 17일을 ‘성 패트릭의 날(St. Patrick's Day)’로 정해서 기리는 행사가 성대하게 벌어진다.

이 날에는 사람들이 초록색 옷을 입고 세 잎으로 된 토끼풀 모양을 가슴이나 모자 등을

붙이고 행사에 참석해 행진 등을 벌인다.

이것은 성 패트릭이 토끼풀의 세 잎을 보기로 들어서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했다는 일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이것을 샴록(Shamrock) 이라고 불러요.

성 패트릭은 기독교를 전파할 때 샴록으로 삼위일체를 설명했다고 해요.

아일랜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셀틱 십자가(Celtic Cross) 

걸리버 여행기로 유명한 조나단 스위프트도 성패트릭성당의 사제였다고 한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소설가이자 성당의 주임 사제였던 조나단 스위프트와 그

의 연인이었던 스텔라의 묘지와  켈트족의 묘지 등이 있다.

걸리버 여행기 1726년에 출판된 『걸리버 여행기』도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nbsp;인간과 인간사회에 대한 풍자,&nbsp;특히 영국의 아일랜드에 대한 착취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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