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얼 서린 한려수도의 꽃, '한산도

 

 

 

 

 

 

 

 

閑山島(한산도)  선착장

 

 경남 통영시 한산면에 있는 섬으로 총면적 14.785k㎡ 이다.
“통영항여객터미널”에서 한산도 제승당까지는  뉴파라다이스호 여객선으로 30분 소요되는데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12회 30분간간격으로 운행되는데

 

한산섬에서는 매시 30분에 출발한다.. 

 

 

 

 

 

 

 

 

 

 우물의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1593년 당시 충무공 이순신장군께서 한산도 통제영(統制營) 내 제승당(制勝堂)을 창건하고,

 

1,340일 동안 머물면서 군사들과 함께 사용했던 우물로서 바다에 가깝지만 짠맛이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다

 

 

大捷門(대첩문) 편액: 박정희대통령書

 

제승당 입구의 일주문 현판에는 대첩문(大捷門)이라 적혀 있고,

 

좌.우에는 두릅나무과 아열대성 식물인 팔손이나무(八角金盤)가 있다.

 

이 나무는 비진도에 자생하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와 심어 두었는데, 늘 푸른 활엽관목으로 잎이 8갈래라

 

‘팔손이나무’라 부르며 천연기념물 제63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충무문의 계단을 오르면 정면에 제승당이 자리하고 우측에는 ‘후손통제사행적비’

  2채의 비각이 있고

그 끝에는 수루(戍樓)가 있다.

 

수루는 일종의 망루로서 충무공이 왜적의 동태를 살피던 곳으로

 

왜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우국충정의 시를 읊기도 한 곳이다.

 

오른쪽의 고동산, 왼쪽의 미륵산 뒤쪽의 망산을 연결, 봉화 공동, 연등을

 

이용하여 적의 동태를 파악했던 곳이다.

 

특히 수루 안에는 싯구가 있어 그 정취를 느껴볼 수 있다.

 

수루에 올라 밖을 보니 ‘한산대첩 기념비’와 인근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로와 마주보는 곳에 충무공의 영정을 모시고 향사를 올리는 충무사(忠武祠)가 있는데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우측에는 한글비가 있어 이채롭다.

 

충무사를 둘러쌓고 아름다운 노송이 서있어 솔향기가 매일 향을 피우는 듯하며,

 

솟을삼문을 들어가면 좌측에 1739년 제 107대 통제사 조경(趙儆)이

 

제승당을 다시세운 것을 기념하는 ‘제승당유허비’가 서있다.

 

 

후손통제사비각

 

 

 

 

 

 충무공의 ‘진중시가’

 

 

 

수루의 난간에서  왼쪽에 보이는 ‘한산대첩기념비’,   바다가운데 보이는 섬 ‘해갑도’

 

 

 制勝堂(제승당) 

 

사적 제113호     경남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 875 
制勝堂(제승당)은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의 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제승당일원 현재의 모습은 충무공을 숭상하던 박정희 대통령이 1976년 성역화작업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제 140대(1786년)김영수라는 통제사가 71세 때 쓴 것이라 한다.

 

 

 

 

제승당 기둥주련 충무공의 한산도의 밤이라는 詩. 

 


                       水國秋光暮(수국추광모): 넓은 바다에 가을햇빛 저무는데
                       驚寒雁陳高(경한안진고);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떼 하늘 높이 날아가네
                       憂心輾轉夜(우심전전야); 근심스런 마음에 잠 못 드는 밤
                       殘月照弓刀(잔월조궁도): 새벽달은 무심코 칼과 활을 비추네.

 

 

홍살문

 

아래를 지나면서 몸과 마음을 경건히하고 통과하는 마음의 준비문 

 

 원래 릉이나 묘 앞에 세웠던 것이나 정2품 이상을 지낸 관리에게 내렸다는데,  

 

충신이나 효부 열녀 효자에게 나라 인증샷인  이런 홍살문을 내려 주면

 

세금까지 면제 받고 가문의 영광이었죠

 

 

 

忠武祠 內三門.   오른쪽문으로 들어가십시요

 

 

홍살문 안에 있는 충무사는 통영지방 유림들이 충무공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32년에 세운 사당이다.

 

처음에 충무영당이라 했다가 1976년 규모를 크게 늘리면서 충무사란 현판을 걸었다.

 

 

忠武祠(충무사)  박정희대통령글씨

 

 

 1932년 충무공을 사모한다는 뜻으로 한산도 섬마을 주민들이 모은 '모충계(慕忠契)'에서

 

충무영당이라는 사당을 세웠으나

 

1976년 박대통령께서 忠武靈堂의 堂이 격이 낮다 하여

 

직접 친필로 충무사(忠武祠)라는 현판을 써서 내려 보냈다.

 

 

1975년(39년전)당시 진해있던  육군대학생들의 참배모습(충무영당)

 

 

충무공 影禎(영정)

 

충무사에 모셔진 영정은 종이품 통제사의 관복 차림이고 1978년에 사적을 정화할 때 정형모 화백이 그린 것이다.

 

매년 봄.가을에는 제사를 지내며 한산대첩 기념일인 8월 14일에는

 

해군작전 사령관과 해군사관생도들이 참배를 하고,

 

통영시는 한산대첩제를 성대히 거행하여 충무공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제승당유허비각

 

 

한글비-

1948년 광복기념으로 초.중.고등학생들의 성금을

모아 건립한 이순신장군의 해전승전에 대한 기록 비문

 

 

閑山亭(한산정)과  과녁판
 충무공이 부하들과 바다 건너 쪽에 과녁을 세워 두고 활쏘기 시합이나

 연습을 하였다는 곳이다.
 명중이 되면 붉은 깃발을 올려 들어 줬으며 빗나갔을 때는 징을 한 번 울렸다 한다. 
 

 과녁까지의 거리는 145m에 이르며 바다를 사이에 두고 연습함으로

 

 밀물과 썰물의 교차를 이용하여 수련하므로 거리감을 익혀 실전에 매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1594년 4월에는 이 곳에서 임시 무과를 시행하여 100여명의 장교( 무과 관리)를

선발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산정으로 내려가면 활을 쏘는 사대인 한산정에 서서 바다건너에 있는 과녁을 맞히게

설계되어 있어  충무공의 그 호쾌함이 느껴진다.

 

 

 

 

 

 

 

解鉀島(해갑도)

 

 충무공이 전쟁을 끝내고 거기에 올라가서 갑옷을 벗고 땀을 식혔다 해서 해갑도라고도하며
                       민속학적으로 蟹甲島(해갑도=게의 등 껍질처럼 생겼다 해서)라고도 한다.

 

 

한산만 석조 거북선 등대 

 

 

 한산만 거북등대

 

      제승당 앞 바다의 이 거북등대는 1963년 지역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서 세운 것으로

 

      한산대첩 해전지 바다에 거북선형태의 조각을 만들어 암초위에다 세운 것이다.

 

거북선 거북의 머리는 일본을 향하고있다

 

        또한 이곳을 지나는 선박들의 등대로 역할을 하고 있다.

 

 

 

 

 

 

 

 

 

 

40년전 (1975년) 장교들이 이런배를 타고 한산도로...

 

  

 

달아공원에서

 

 

 

 

 

 

 

 

 

 

 

 

 

달아공원 일몰

 

 

펴 옴

 

 

 

 

 

 

 

 

 

 세계 4대 해전(참고)

 

1)B.C. 480년 그리스의 데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제독의 살라미스(Salamis)해전,

2) 1588년 영국 하워드(Howard) 제독의 칼레(Calais) 해전,

3) 1592년 거북선을 앞세워 승리를 거둔 이순신(李舜臣) 제독의 한산대첩(閑山大捷),

4) 1805년 영국 넬슨(Nelson) 제독의 트라팔가(Trapalgar) 해전

 

한산대첩

 1592년 임진년 7월 8일. 한산도앞 바다에 드넓은 날개가 펼쳐졌다.

거대한 학의 날개, 조선 수군의 학익진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조선 수군의 완벽한 승리, 적선 73척 중 59척을 격침시키고

 9천여명의 왜군을 수장시킨 한산대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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