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

사원은 960년경에 베네딕토회 수도자들을 위한 공동체에서 시작하여,

1042년 참회왕 에드워드가 그 자리에 새 교회를 짓기 시작하였고,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고딕양식으로 지어졌다.

길이 1백56m 너비 61m 그리고 높이 31m로 규모에 있어서도 세계적이다.

특히 서쪽 정문 위의 2중탑은 볼수록 장중하기 비길 데 없다.

당연히 원래는 카톨릭 소속 성당이었으나, 헨리 8세의 종교개혁이후 성공회로 넘어 왔다.

 

영국왕의 대관식, 결혼식, 장례식 등 주요 행사가 열리는 곳이자

대부분의 영국왕들은 물론  워즈워스나 뉴턴 같은 유명인들이 묻혀있는 곳이기도 하며,

세인트폴성당과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유서 깊은 성당이며,

한마디로 영국의 전통과 문화가 고스란히 간직된 장소라고 할 수 있겠다.

수도원중의 수도원이라는 의미로 ‘The Abbey’로 불리기도 한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과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다른곳에 위치해 있어요

수도원 중의 수도원’ 이라는 의미로  ‘The Abbey '라고 불린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13세기에 헨리 3세가 헨리 오브 레인즈에게 설계를 맡겨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고딕양식으로 완성 되었으며' 

런던에 있는 유명한 고딕양식의 대성당으로 . 영국 왕과 위인들이 잠든곳 이에요

1066년 정복자 윌리엄을 비롯해 엘리자베스 2세에 이르기까지

역대 왕의 대관식이 있었으며 또한 이곳에서 묻혔다고 합니다

1997년에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장례식을 치렀다고 합니다

왕실과 주요 행사가 열리는 곳이며 윌리엄 왕세손과 캐서린 미들턴의 결혼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영국 최고의 고딕 양식 성당인 웨스트민스터 사원.
참고로 '웨스트민스터 성당(Westminster Cathedral)'과는 다른 건물이니 헷갈리면 안된다.
'웨스트민스터'라는 명칭이 붙는 건축물은 1)궁전, 2)사원, 3)성당 이렇게 크게 세가지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장소인 웨스트민스터 사원 안에는,
헨리 7세, 메리 그리고 엘리자베스 여왕 등 영국의 역대 왕들과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제프리 초서 등 영국을 대표하는 과학자, 사상가, 문학가, 정치가들이 잠들어 있다.
또한 이런 이름난 위인들 이외에도 무명용사의 묘가 성당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사원 
런던에 있는 유명한 고딕 양식의 대성당.

영국 왕가의 대관식 및 매장용의 성당. 주로 헨리 3세(HenryⅢ, 재위 1216~72)에 의하여

1245~69년에 건설되어 초기는 영국식이었으나 프랑스 적인 요소도 비교적 농후하게 가미되었다.

동단부에 정묘하고 화려한 부채꼴 볼트로 유명한 헨리 7세 예배당(1503~19)이 부가되었다.

서정면(西正面) 하부는 15세기 이후 창건되어 18세기 초기에 폭스모어에 의하여 개조되고

스모어가 1739년경 첨가하였다.

당내에는 역대 국왕과 왕비, 영국의 대표적인 정치가, 예술가, 과학자의 묘비가 있다.
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웨스트민스터사원  [Westminster Abbey]

 

영국 왕과 위인들이 묻혀 있는 역사적 장소 .왕실과 주요 행사가 열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영국 민주주의 상징인 국회의사당과 빅벤    Houses of Parliament (Big Ben)

왼쪽 뽀족한 시계탑이 빅벤. 빅벤옆 건물이 국회의사당(웨스트민스터 궁)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Westminster Cathedral)

네오비잔틴 양식의 로마 카톨릭 성당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가장 큰 가톨릭 교회이며

종교개혁 이후에 영국에 세워진 첫 번째 가톨릭 교회라고 합니다

1995년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방문해서  예배에 참석 하였다고 합니다

헨리 8세 이후 영국의 왕들 가운데 현역 군주로는 처음으로 가톨릭 의식에

공식 참가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화려하고 특색있는 외관과  전면에 90미터 높이의 커다란 시계탑이

솟아 있으며 성당 입구의 아치와  기둥의 조합도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마 가톨릭교회의 주교좌 성.

1895년 착공하여 1910년 헌당한 비잔틴 양식의 건물로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 로마 가톨릭교회의 중심지이다.

인근의 성공회 교회인 웨스트민스터 사원과는 구분된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와 영국 성공회와 교황청의 관계는 개선되었고, 새로이 웨스트민스터 성당이 1903년에 건축되었다.

영국에서 종교개혁이후 최초의 카톨릭 교회로 여겨지는 웨스트민스터성당은 네오비잔틴양식으로 세워져 매우 화려하고 특색있는 외관을 하고 있으며 입구의 아치와 기둥의 조합도 화려하고 아름답다.

성당의 길이는 110m이며 폭은 47m이고, 외부 종탑의 높이는 87m에 이른다.

외부는 붉은 벽돌과 흰 대리석으로 꾸며졌으며, 내부의 기둥과 벽은 형형색색의 대리석과 모자이크로 장식됐다.

특히 제단 주변과 여러 경당은 화려한 모자이크로 꾸며져 아름다움을 더한다

.

 패트릭 성당(St. Patrick’s Cathedral)

아일랜드 더블린 성패트릭성당 아일랜드 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국가의 공식적인  종교 행사를 치르기도 한다

성패트릭 성인의 이름을  딴 성당 이곳은 아일랜드에 처음 그리스도교와  로마글자를  

전파한 인물로 수호성인 이기도 한 그의 이름으로그를  기리기위해 지어졌다

 

보통 3월 16일에서 18일 에 이날에는 온나라 전체가 모두 초록색으로 물든다고해요

셔츠,양말,넥타이꽃,리본 케익 모든것이 초록색으로 치장되는데

전세계적으로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모인곳 미국,캐나다 등등  

어디든 명절을 즐기는 이들로 온통 거리가 초록색으로 물든다고 하네요

아일랜드 는 초록옷을 입고 최고의 명절을 지내는 날이 있어요

 

아일랜드의  기독교를 처음으로 전파한 성 패트릭의  사망을 기리는 날인데

성직자로 추앙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영웅이기도한 그를 기리는 행사로는 

 삼위일체를 설명할때   초록의 클로버를 사용했다는 전통으로

클로버는 성 패트릭날의 전통 이다

성 패트릭

라틴어로는 ‘파트리키우스(Patricius)’, 영어로는 ‘패트릭(Patrick)’

 이탈리아어로는 ‘파트리치오(Patrizio)’,

 아일랜드어로는 ‘파드라그(Pádraig)’라고 한다.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서 ‘아일랜드의 사도 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일랜드의 수호성인 가운데 한 명이며, 기념일은 3월 17일이다.

 

영국 웨일즈의 한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16세에 아일랜드 해적들의 습격을 받고 끌려가 6년 동안 노예로 지냈다.

그는 아일랜드 언트림 슬레미시 산에서 양을 치면서 지냈는데, 포로로 잡혀있는 동안 그리스도교에 귀의하였다.

그 후, 어느 날 꿈속에서 천사가 나타나 집으로 가도록 도와주었는데,  320km 이상을 걸어가

아일랜드 해협을 배로 건너 고향 웨일즈로 갔다. 그는 영국으로 가려 했으나 도착한 곳은 프랑스였다.

그는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신부가 되었다.

패트릭은 1883년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성직자가 되어 자신이 노예로 있던 아일랜드로 돌아가,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면서 우물가에서 성수를 찍어 세례를 주었다.

그의 노력으로 섬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믿게 되었으며, 

그는 평생 그곳에서 성직자로 봉사하고 영웅으로 추앙되었다.

지금도 아일랜드에는 그의 이름을 딴 교회들이 60개가 넘는데,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더블린의 성 패트릭 성당이다.

지금도 더블린 시민의 90%가 가톨릭신자이다.

더블린 시내 중심지역에 위치한 성 패트릭 성당은 패트릭 성인이 AD 450년 아일랜드에 머물던 때에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행했던 우물가에 세운 교회이다.지금도 성 패트릭 공원에 있는 성당 옆에는 그 우물터였던 유적이 있다.

성 패트릭 성당은

초기 영국의 고딕 양식 건축물로서 아름다운 조각과 화려한 바닥 타일,화려하고 멋진 스태인드 글라스로

꾸며진 창문들로 장식되어 있다   .한국은 교회와 성당의 구분이 뚜렷하지만,

유럽은 규모와 크기에 따라 교회의 규모에 따라 chaple < church < cathedral < church cathedral로 나뉜다.

 

 

기네스가 의 벤지민 기네스경 동상

헨델의 메시아 초연 당시 파이프 오르간

1742년 헨델이 메시아를 조지 프레드릭 헨델 호텔에서 초연할 당시, 

사용한 파이프 오르간을 보관하고 있다

성당 내부에 있는 화해의 문

1492년 명문가문인 킬데어(Kildare)()와 오먼드(Ormond)()의 불화가 심해지자

오먼드가의 백작인 제임스 버틀러 경과 그의 가족들은 이 성당 안으로 피신을 했다.

성당 밖에서 포위하고 있던 킬데어의 백작 제럴드 피츠제럴드는 화해를 시도했지만,

오먼드가는 킬데어가의 진의를 믿지 못하여 성당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진의를 보이기 위하여 성당 문에 구멍을 내고 그 안으로 자신의 팔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버틀러경은 피츠제럴드의 손을 잡으며 두 집안이 화해를 하였다고 한다.

 

펴 옴

세인트패트릭은 누구인가?

성 패트릭이 아일랜드에 선교할 당시 아일랜드에는 켈트족이 살고 있었다.

문명화된 로마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아일랜드에 사는 켈트족들은 야만인이나 다름없었으며,

로마 교황청은 켈트족의 선교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성 패트릭은 아일랜드 원주민에 대한 편견에 굴하지 않고 켈트족을 선교하기 시작했다. 

성경 속 인물에 대해 켈트족의 성향에 맞춰 아주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며 가톨릭을 널리 전파했다.

예를 들면, 하느님의 교의인 삼위일체(三位一體; 성부(聖父) · 성자(聖子) · 성령(聖靈)의 세 위격(位格)이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고, 하나의 실체인 하느님이라는 교의 를 설명할 때,

잎이 세 개인 ( 토끼풀)에 비유해 원주미의 이해를 도왔다. 

오늘날 아일랜드를 비롯해 아일랜드계 이주민이 많이 살고 있는 미국ㆍ오스트레일리아 등의 지역에서는

그가 죽은 3월 17일을 ‘성 패트릭의 날(St. Patrick's Day)’로 정해서 기리는 행사가 성대하게 벌어진다.

이 날에는 사람들이 초록색 옷을 입고 세 잎으로 된 토끼풀 모양을 가슴이나 모자 등을

붙이고 행사에 참석해 행진 등을 벌인다.

이것은 성 패트릭이 토끼풀의 세 잎을 보기로 들어서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했다는 일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이것을 샴록(Shamrock) 이라고 불러요.

성 패트릭은 기독교를 전파할 때 샴록으로 삼위일체를 설명했다고 해요.

아일랜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셀틱 십자가(Celtic Cross) 

걸리버 여행기로 유명한 조나단 스위프트도 성패트릭성당의 사제였다고 한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소설가이자 성당의 주임 사제였던 조나단 스위프트와 그

의 연인이었던 스텔라의 묘지와  켈트족의 묘지 등이 있다.

걸리버 여행기 1726년에 출판된 『걸리버 여행기』도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nbsp;인간과 인간사회에 대한 풍자,&nbsp;특히 영국의 아일랜드에 대한 착취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솔즈베리 대성당의 정식 명칭으로, 솔즈베리의 동정 성모 마리아 주교좌 성당으로

영국 잉글랜드 윌트셔주 솔즈베리에 위치한 잉글랜드 성공회의 대성당이다. 

잉글랜드 성공회 솔즈베리 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

첨탑의 높이는 123m로 영국에 위치한 대성당 중 가장 높다.

1220년부터 1258년 사이에 건설되었다.

이곳에는 잉글랜드에 현존하는 4부의 마그나 카르타 원본 중 가장 상태가 양호한 1부와,

1386년에 제작되어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기계식 시계가 있다.

 

솔즈베리 대성당과 마그나 카르타 보관소( Magna Carta Chapter House) (구글 위성사진 캡처)

 대성당의 주 첨탑

 

 

대성당 뒤쪽의 뜰. 분할된 창문 문양으로 고딕의 특징이 드러난 이 중정을 따라 마그나 카르타 보관소로 간다.

솔즈베리 대성당의 주제단부에서 바라본 모습. 

성당 내부는 높고 웅장하며 강인한 고딕의 장식들이 통일감 있게 구성되어 있다.

좁고 긴 아치형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 3단으로 구성된 네이브 월(Nave Wall),

화려하게 장식된 예배당들과 성가대석, 파이프 오르간 등이 눈길을 끈다.

좁고 긴 아치형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

레이디 채플(Lady's Chaple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예베당 )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계식 시계라고 한다.

 

 마그나 카르타는 성당 안쪽의 뜰을 따라 나 있는 중정을 통해 갈 수 있는 별도의 장소,

The Great Chapter House에 보관되어 있다.

원본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고 열람만 가능하다.

2018년 10월, 40대 중반의 남성이 마그나 카르타가 보관된 유리 박스를 해머로 내리쳐 탈취하려 했던 사건이 있었다.

원본에 손상이 발생하지는 않아서 2019년 초부터 다시 전시가 시작되었다. 

솔즈베리 대성당에는 특이한 볼거리가 있는데 바로 <마그나 카르타>이다

마그나 카르타의 원본 4권중 1권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1215년 영국의 존 왕이 프랑스 내 영지 상실과 전쟁의 패배, 국가 재정 악화 등 잇따른 실정을

하게 되고 귀족에 대한 과세까지 하게 되었다

 

이에 불만이 쌓인 귀족들과 런던시가 존 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각서를 강요하였고 존  왕이  서명한 것이다

각서의 내용은

 1.   교회는 국왕에게 자유롭다

2.   왕의 명령만으로는 전쟁 협력금 등의 명목으로 징세할 수 없다

3.   런던과 다른 자유시들은 자체적으로 관세를 정한다 4. 왕은 정해진사안에서만 의회를 소집할 수 있다

5. 잉글랜드 자유민은 법이나 재판 없이 자유, 생명, 재산을 침해받지 않는다

 

내용 자체는 관례적으로 내려오던  관습법이었지만 최초로 문서화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고  중요하지도 않은 문서였다고 한다

 

당시는 교황권이 가장 강했던 시기였고 이 소식을 들은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말 한마디에 마그나 카르타는 무용지물이 되고 존 왕은 권한을 계속 유지했다고 한다

이것이  재조명된 것은 17세기 국왕과 의회가 대립하던 시기에 에드워드 코크 등의 재판장들이

이 대헌장을 연구하여 법치주의 개념을 확립했다고 한다

또  이 과정에서 원래 귀족의 특권을 주장하던 것이 평등사상과 법치주의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해석되었고 이들 사상을 정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현재  이  대헌장이 따로  헌법이  없는 영국에서 헌법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스톤헨지 (Stonehenge)

영국 여행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런던이고 런던하면 떠오르는 것은 빅 벤일 것이다.

두번째로 유명한 것을 고르라고 하면 누구나 주저없이 스톤헨지​를 고를 것이다

현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스톤헨지는 기원전 약 2000~ 1500년경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이 거석들의 목적 및 용도에 대해서,

그리고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예전부터 영국인들은 스톤헨지의 기원, 용도 및 목적에 대해서 궁금해하였다.

일각에서는 종교적인 제단의 역할을 하였다고 주장하며, 다른 가설로는 '죽은 자를 위한 성역'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주로 종교적 공간으로 추정해서인지,

건설시 위대한 선지자를 제공하는, 종교와 관련된 불가사의로 구현되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태양력 계산을 위해 사용된 도구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그리고이 돌 무더기를 스톤헨지라고 하는데 누가? 왜?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는가?

 

스톤헨지는  고대 앵글로색슨어로'공중에 매달린 바윗돌'이라는 의미다
돌을 의미하는 '스탄(stan)'과 돌쩌귀를 의미하는 '헹그(hencg)'라는
고대 영어 단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옷을 걸치는 것조차 잘 몰랐던 야만인인 고대 브리튼 사람들이
건설했다고 보기에는 스톤헨지의 건축양식이 너무나도 훌륭했기때문이라고 한다

그 후 스톤헨지를 드루이드 승려들이건설한 성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드루이드 승려들은 기독교가 전파되기 이전인 기원전 14~13세기에
나타나 고대 프랑스, 영국, 독일 등지에널리 퍼져 있던 켈트인의 종교를
관장하던 신관들이었다고 한다

약 BC3000년 경부터 몇차례에 걸쳐 세워진 스톤헨지는 선사시대의 유물로서 BC 1250년 경에 완공되었다.

거대한 돌을 깍고 이 곳까지 운반하여 세운 규모를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수세기에 걸쳐 만든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 곳에서 발굴된 유물은 솔즈베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스톤헨지에 대해서는크게 3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첫째, 고대 외계인이 만든지구 기지라는 설이다
또 다른 형태의 미스터리 서클은 아닐까하는 추측도 있다

둘째, 마법사들이 마법으아일랜드에서 돌을 옮겨와 만들었다는 설이다
사람의 힘으로 옮기기에는 돌의 양과 무게가 엄청났기 때문에
평범함을 뛰어넘는 힘에 기대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보아이런 주장이 생겨났을 것이다
셋째,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설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어떻게,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는가?

원의 북동쪽 방향에는 힐스톤 (Heelstone)이라는 돌이 놓여 있는데,

스톤헨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방향표시석 힐스톤은동쪽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하지에 해가 뜨는 방향을 정확히 나타내고 있다

 

무게30톤의 힐스톤

스톤헨지는 셰일 서클이라고 불리는 바깥쪽 원과, 블루스톤 서클이라고 불리는 안쪽 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깥쪽의 원은 30m 크기의 열석이 30개가 있었으며 그 위에는 순석이 있었지만 현재 17개만 남아있다.

안쪽 원은 23m의 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돌들은 모두 최소 25km 이상의 거리에서 운반한 것으로 추정 된다.

높이 4미터, 무게 25~30톤의 거대한 돌을 원형으로
늘어 놓은 형태는 선사시대의 입석 유적들중 아주 특이하다고 생각되었다

돌기둥들은 그리스 신전의 기둥들처럼 가운데 부분이 볼록하게 되어 있었는데
원근법의 영향을 감안하여 밑에서 올려다볼 때
기둥이 직선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였다고 설명을 들었다

17세기 초 제임스 1세는 스톤헨지를 보고 흥미를 느껴
건축가 조운즈에게 조사하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조운즈는 스톤헨지에서 로마식과 이탈리아식의 기둥배치 방식을
확인하고 고대로마인들이 건설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스톤헨지는 엄밀한 의미에서 고인돌과 같은 거석유물로 분류하지만
그리스 신전과 같이 중앙 집중적인 배치방식으로
공간을 한정했다는 점에서 건축물로 간주할 수 있다고 했다

고대로마의 유적지 로만바쓰

 
바스(Bath)는 이름 그대로 천연온천으로 유명한  영국의 대표 휴양지이다.
1세기에 영국을 점령한 로마인들은  이곳에 로마식 온천탕과 사원을 세웠고
지금도 로마의 목욕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유적지로서 
로마 시대 유적과 18세기 신고전주의 양식 풍의 독특한 건축물들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로마인들이 떠난 후, 쇠락했다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영국의 부유층이 선호하는 세련된 요양과
사교의 도시로 거듭나게 된다.

18세기는 영국이 크게 번영한 시대로, 새롭게 부를 형성한 중산층도 휴식과 오락, 사교를 원했고, 
그 장소로 바스가 떠오르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며
소설가, 극작가 등 많은 문인들도 바스를 찾게 되면서
바스는 18세기 문학 작품에도 자주 등장하는 명소가 되기도 했다

 
  
도시의 이름인 바스(Bath)는 이름 그대로 목욕을 뜻하는데, 이 곳이 목욕시설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켈트족이 거주하던 영국 브리튼 섬에, 로마 카이사르가 침공하면서 로마의 영토가 된다.

이 로만 브리튼 시기 로마인들이 이 도시의 온천 주변에 목욕시설과 사원을 지으면서

당시 로마인들의 휴양지로 여겨졌었다.

 

이시기의 도시를 현재에는 '로만 바스(The Roman Baths)'라고 부른다.

이후에도 이 도시는 물과 관련되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고, 16세기 지금의 이름인 '바스'로 정해지게 된다
로만 바스(The Roman Bath)는 로마인들이 철수하는 4세기까지 운영되다가,

이후 17세기에 영국 귀족들의 휴양지로 다시 개발되게 된다.

제인 오스틴을 포함한 영국의 유명인들은 이 도시에 거주하면서 요양과 휴양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바스의 대욕장(Great Bath)유적은, 중세시대와 산업시대에 증축되어,

지금 볼 수 있는 모습은 4세기때의 모습과 다른 형태이다.

 

Bath Abbey는 영국 서머셋의 Bath에 있는 전 베네딕토 수도원이며 영국 교회의 교구 교회이다.

7세기에 설립되었고, 10세기에 재건되었으며, 12세기와 16세기에 또다시 재건되었다. 
973년에는 바스수도원에서 Edgar왕이 즉위식을 올리기도 했고 이때부터 앵글로 색슨인들이

Baoum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오늘의 바스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1860년대에 조지 길버트 스콧 경에 의해 주요한 복원 작업이 행해졌으며,  이는 서양에서 수직 고딕 건축의 가장 큰 예들 중 하나로 손꼽힌다.

중세 수도원 교회는 때때로 주교의 성당 역할을 했다.

바스는 상류층들의 유원지였고, 많은 미혼남녀들이  무도회를 즐기면서 결혼상대를 몰색했다고 한다.

18세기초 결혼과 연애에 대해 쓴 제인오스틴 작품의 단골 배경이 바스이다

<레 미제라블> 영화에서 자베르가 자살하는 장면에 나왔다는 풀트니 다리(Pulteney)가 나온다.
마치 작은 폭포처럼 주변에 와류가 생기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이 대욕장은 20세기에도 운영되는 등 비교적 최근까지 사람들이 이용했지만,

수질 문제가 발생한 이후 물에 들어가는 것은 금지되었다고 한다.

대신 인근에 현대적 스파 시설이 몇개 있다.

도시 바스는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어 있다.

 
 

로얄 크레센트( Royal Crescent)

이곳은 <로열 크레센트>다하늘에서 내려다보면초승달'모양과 닮았다고 해서붙여진 이름이다
1767년부터 1774년까지무려 7년에 걸쳐만들어졌다고 한다
길이 180m30채의 집들이
곡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바스(Bath)에서 생산되는 석재를사용하여 만들었으며114개의 이오니아식 둥근 기둥으로이루어진 멋진 대저택이었다
귀족들과 부유층들에게대저택을 대여해 주거나수많은 예술가들이 머물던 장소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박물관과 호텔 용도를 사용되고있다고 한다

바스 수도원(Bath Abbey)은  로만 바스 근처에 있는 고딕양식의 수도원으로 후기 중세시대에 세워졌다.

 

 

 

 

제인 오스틴이 1809년부터 1817년까지, 8년간 머물렀던 생가. 현재는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전 세계의 오스틴 팬들을 맞이하고 있다. 바스의 제인 오스틴 센터가 2차 창작물 위주로 꾸려져 있다면, 여기는 유품 등 좀 더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전시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제인 오스틴 센터 Jane Austen Centre
바스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살았는데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도 그중 한 사람으로
1801년 부터 1804년 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여인의 동상이 서 있는 집은영국을 대표하는 여류 작가로
[오만과 편견]을  쓴<제인 오스틴> 기념관이다

1801년부터 5년 동안바스에 머물렀다고 한다

제인 오스틴은  가난한 중상류층으로 지참금이 없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좋아하는 책을 늘 가까이하며  재능을 발휘하여 글을 쓰고
여행을 즐기는 삶을 살다가 42세에 세상을 떠났다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남녀간의 사랑, 밀당을너무도 잘 표현한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사랑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중에서-

아드리아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는

우리에겐 낯설지만 서양인들에게는 정신적 고향이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보스니아 내전당시 이 도시가 세르비아군에 의해 박격포공격을 당하자

프랑스 학술원회장이 프랑스 지식인들을 이끌고

인간방패가 되어 세르비아 해군으로 부터 지키기도 했다

 

아일랜드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조지 버나드 쇼는    

진정한 낙원을 찾으려거든 두브로브니크로 가라” 했고

 

 시인 바이런은 "아드리아해의 진주 " 찬탄한

드브로브닉성은

현대의 것이라고 하기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고한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구시가지는 고딕양식, 르네상스양식, 바로크시대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건축 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도시다.

 

 붉은지붕, 하얀 벽돌집, 올리브 나무, 이국의 정취를 풍기는 종려나무...

이 모든것과  조화를 이룬 코발트빛의 아름답고 따뜻한 아드리아 해변은

세련된 유럽거리의 축소판을 보는 듯 하고.

부호들의 요트가 가득할 만큼

유럽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그리고 유럽에서 처음으로 노예 매매제를 폐지하는 등 높은 의식을 가진 도시였고

그 당시 유일하게 베니스의 라이벌로서 상업활동이 왕성했던 곳이라 한다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도시는

아드리아 해변 면한 25M높이, 길이 2KM에 달하는 흰 성벽 ,

오랜 역사를 대변하듯 대리석이 깔려있는 플라차 거리.
오노플리안 분수, 프란체스코 수도원,

세르비아 정교회, 스폰자궁과 시계탑, 렉터 궁전(내부), 대사원 등

구시가지을 관광 할수있다

 

 

구시가지  요도

 

 

 

두브로브니크 성벽( City Walls)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견고한 요새로 평가받고있는 드브로브니크성벽...

도시 전체를 원형으로 감싸고 있는  성벽의 총길이는 약 2km이고, 높이는  6m,

제일 높은 곳은 25m에 달하며, 성벽의 두께는 1.5~3m나 된다. 

이 성곽은 10세기에 축성되고 13~14세기에 증축하거나 보완하며 현대에 이른다.

19세기에는 적으로부터 도시를 방어하기위해 더욱 견고하고 두텁게 보완하였다.

 1,000년의 시간을 비웃는듯이 오늘도 여전히 당당하게 서있는  성벽...

이곳 역사와 중세의 성벽을 한눈에 보여주는 최고의 관광지이며 가장 인기있는 산책길이다

 

1991년 신유고전때 프랑스 <장 도르매송>이 보트를 타고 아드리아해에 나가

'지금 유럽문명의 상징이 불타고 있는데 유럽은 팔짱만 끼고 있는가!!"

목숨을 걸고 외쳐 서유럽 지식인들이 힘을 합쳐 지켜냈다는 곳!!

 

맑은 물은 바닷속이 훤히 드려다 보이고, 높이 지어진 성곽은 우람한데…..

 몇군데 보수한 흔적이 역력하다.

1991에 일어난 내전의 상처인 것이다.

 그 때 이 성에 대하여 함포사격 명령을 내린 Pavle Strugar란 제독은

결국 8년동안 감옥신세를 져야만 하게 되었고,

부서진 성은 2005년에야  복구되어  세계 유산으로의 면보를 되 찿은 것이다.

91년 내전시 세르비아이  함포사격으로 피격된 광경

천혜의 요새였던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전경

 

 

 

 코발트 바다색이 이렇게 환상적인가 ...

 

 

  마치 영화 빠삐용의 감옥을 보는 것 같다.

 

바다위에, 바위위에 우뚝솟은 성벽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올드 항구

수심이 깊어 대형 선박이나 크루즈가 정박하며,

수많은 요트가 떠 있는 이색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드리해의 진주라 불리우는 두브로브니크의 이 곳(화살표)에서

 고현정이 맥심커피 arabica100 광고모델로 ..

 

 

 

 

 

성벽의 길이가 2km나 되는데 한눈에 들어온다.

 

 

 

 

 

 

 

 

 

 

  

 

 

 

 

 

성벽에는 두 개의 타워와 두 개의 요새가 있다.

하나는 민세타(Minceta)타워이고 다른 하나는 보카르(Bokar)타워이다.
성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중세도시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

 

민세타(Minceta)타워

 

 

 

  보카르(Bokar)타워

 

 

 

 

 

 

 

 

 

 

 

 

민세타요새(The Minceta Fortress)

두브로브니크에서 자유의 상징이며 가장 아름다운 요새로 유명하다.
이 요새는 훌륭한 건축가들의 합작품으로.

크로아티아에서 르네상스시대의 걸작품으로 꼽힌다.

요새에 있는 타워는 1464년에야 완공되었는데 이 타워에서 아름다운 도시를 조망할수있다

 

 

 

로부리예나츠(Lovrijenac) 요새

서쪽의 성벽 밖에 있는 이 요새는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하여 36m 높이의 절벽위에 만들어졌다.

14세기에 만든 이 요새는 바다와 육지로 부터의 침입을 모두 감시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고

오늘날에는 두브로브니크의 유명한 여름축제 기간 중에 공연과 콘서트가 열리는데

특히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공연된 것으로 유명합니다.

총 3층 구조이며 1층은 도개교를 통해 곧바로 바다와 연결됩니다.

 

 

 요새 위에는 대포가 도시로 침입하는 적을 향해......

 

내전때에는 요새에 기관총이..

 

성요한 요새(St. John’s Fortress)

 

뮬로탑’이라고도 불리며 구시가지의 남동쪽에 위치합니다.

 도시로 들어오는 입구를 차단하고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요새로 16세기에 완공되었습니다.

탑은 14세기에 건설되었으며, 2세기 동안 좀 더 보강되고 증축되어

지금과 같은 반원형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해양박물관과 수족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곳에는 두브로브니크의 발전된 항해술과 조선기술에 대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성벽을 돌아보고 성안의 구시가지로 이동

 

 

파일 게이트(Pile Gate) 입구 

 

 

 

 

 

 

 

 

 

 

파일 게이트(Pile Gate) 

구시가지 서쪽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

 석조로 된 문은  고딕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아치형으로 된 안쪽문과 바깥쪽문 2개로 구성되어있다.
구시가지를 연결하는 석조로 된 다리도 함께 포함되는데

이 다리는 1471년에 건축 되었다. 

 

 

 

성문 위에는 이 도시에 수호성인인 성 블라이세의 조각상이...한손에 성의 모형을 들고.... 
이 조각상은 1537년에 건설된 나무로 된 도개교(渡開橋)와 마주하고있다.  

  

입구는 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하여 들어 올려지는 '도개교'로 되어 있다.

도개교는 적이 침입해오면 올려져서 진로를 차단한다 (옛 영화 바이킹처럼....)

 

 

꽃보다누나로 유명해진 크로아티아는

 

 

 

발칸반도의 굵은 역사가 관통한 크로아티아

 

숨은 보석, 지상 위의 천국,요정의 호수,라벤더 향기,천년고도...
수많은 수식어가 함께하는 동화 속 그림같은 나라

 

 

 

발칸 반도 서쪽에 자리 잡은 작은 나라 크로아티아

 우리에게 축구를 제외하면 크게 알려지지 않은 국가이다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이 작은 나라가

유럽 사람들 사이에서는 꼭 한 번 방문하고 싶은 휴양지로 꼽힌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이나 달마티아 해변에 자리한 두브로브니크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등 세계의 부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반도국가 이다보니 우리만큼 역사적으로 고난을 많이 겪었다.
초대 왕인 토미 슬라브가  925년에 크로아티아를 건국한 이래

13세기 몽골제국의 침략을 받았다.
그 영향으로 자그레브시는 성벽이 두터워지고 감시탑을 세우는 등 요새화됐다.

이후 1500년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는다.
지금도 자그레브시 곳곳에 남아있는 유럽풍 우아한 건물들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산이다.

1918년에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서 독립해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가 됐고,

제 2차 세계대전당시 나치 독일 정권이 통치하기도 했으나, 전후 유고연방에 편입됐다.
 1991년 6월25일에 크로아티아는 독립을 선언했고,

유고연방이 이를 막고 나서면서 1995년까지 긴 내전을 겪었다.

유고연방이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반대한 이유는 소수 민족인 세르비아인들을

크로아티아인들이 학대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실제 크로아티아의 극우단체 우스타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세르비아인 50만명을 학살한 전력이 있다.
크로아티아에 살던 세르비아인들은 크라이너라는 내부 국가를 만들어

유고연방군과 함께 크로아티아에 맞서 전쟁을 벌이다가

1995년 12월 파리에서 세르비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 3국이 평화협정을 맺으며 전쟁을 끝냈다.
 종교는 90% 가 카톨릭이며 남한과 북한 모두 수교국이다.

그리고
 1. 넥타이와 만년필을 맨 먼저 사용한 나라

         2 축구 강국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3 
           
3. 동방견문록’의  마르코 폴로의 생가가  있다 . 

 

   

가장 인기있는 여행지로 부상하고 있는 크로아티아 도시들

 

 

꽃보다 누나 여행지  두브로브니크

 

  두브로브니크

 

우리에겐 낯설지만 서양인들에게는 정신적 고향이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보스니아 내전당시 이 도시가 세르비아군에 의해 박격포공격을 당하자

프랑스 학술원회장이 프랑스 지식인들을 이끌고

인간방패가 되어 세르비아 해군으로 부터 지키기도 했다

 

아일랜드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조지 버나드 쇼는    

 진정한 낙원을 찾으려거든 두브로브니크로 가라” 했고

 

 시인 바이런은 "아드리아해의 진주 " 찬탄한

드브로브닉성은

현대의 것이라고 하기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고한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구시가지는 고딕양식, 르네상스양식, 바로크시대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건축 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도시다.

 

 붉은지붕, 하얀 벽돌집, 올리브 나무, 이국의 정취를 풍기는 종려나무...

이 모든것과  조화를 이룬 코발트빛의 아름답고 따뜻한 아드리아 해변은

세련된 유럽거리의 축소판을 보는 듯 하고.

부호들의 요트가 가득할 만큼

유럽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그리고 유럽에서 처음으로 노예 매매제를 폐지하는 등 높은 의식을 가진 도시였고

그 당시 유일하게 베니스의 라이벌로서 상업활동이 왕성했던 곳이라 한다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도시는

아드리아 해변 면한 25M높이, 길이 2KM에 달하는 흰 성벽 ,

오랜 역사를 대변하듯 대리석이 깔려있는 플라차 거리.
오노플리안 분수, 프란체스코 수도원,

세르비아 정교회, 스폰자궁과 시계탑, 렉터 궁전(내부), 대사원 등

구시가지을 관광 할수있다

 

구시가지  요도

두브로브니크 성벽( City Walls)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견고한 요새로 평가받고있는 드브로브니크성벽...

도시 전체를 원형으로 감싸고 있는  성벽의 총길이는 약 2km이고, 높이는  6m,

제일 높은 곳은 25m에 달하며, 성벽의 두께는 1.5~3m나 된다. 

이 성곽은 10세기에 축성되고 13~14세기에 증축하거나 보완하며 현대에 이른다.

19세기에는 적으로부터 도시를 방어하기위해 더욱 견고하고 두텁게 보완하였다.

 1,000년의 시간을 비웃는듯이 오늘도 여전히 당당하게 서있는  성벽...

이곳 역사와 중세의 성벽을 한눈에 보여주는 최고의 관광지이며 가장 인기있는 산책길이다

 

1991년 신유고전때 프랑스 <장 도르매송>이 보트를 타고 아드리아해에 나가

'지금 유럽문명의 상징이 불타고 있는데 유럽은 팔짱만 끼고 있는가!!"

목숨을 걸고 외쳐 서유럽 지식인들이 힘을 합쳐 지켜냈다는 곳!!

 

맑은 물은 바닷속이 훤히 드려다 보이고, 높이 지어진 성곽은 우람한데…..

 몇군데 보수한 흔적이 역력하다.

1991에 일어난 내전의 상처인 것이다.

 그 때 이 성에 대하여 함포사격 명령을 내린 Pavle Strugar란 제독은

결국 8년동안 감옥신세를 져야만 하게 되었고,

부서진 성은 2005년에야  복구되어  세계 유산으로의 면보를 되 찿은 것이다.

91년 내전시 세르비아이  함포사격으로 피격된 광경

천혜의 요새였던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전경

 

 코발트 바다색이 이렇게 환상적인가 ...

  마치 영화 빠삐용의 감옥을 보는 것 같다.

 

바다위에, 바위위에 우뚝솟은 성벽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올드 항구

수심이 깊어 대형 선박이나 크루즈가 정박하며,

수많은 요트가 떠 있는 이색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드리해의 진주라 불리우는 두브로브니크의 이 곳(화살표)에서

 고현정이 맥심커피 arabica100 광고모델로 ..

 

 

 

성벽의 길이가 2km나 되는데 한눈에 들어온다.

 

 

 

 

 

성벽에는 두 개의 타워와 두 개의 요새가 있다.

하나는 민세타(Minceta)타워이고 다른 하나는 보카르(Bokar)타워이다.
성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중세도시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

 

민세타(Minceta)타워

 

  보카르(Bokar)타워

 

 

 

 

 

 

 

 

민세타요새(The Minceta Fortress)

두브로브니크에서 자유의 상징이며 가장 아름다운 요새로 유명하다.
이 요새는 훌륭한 건축가들의 합작품으로.

크로아티아에서 르네상스시대의 걸작품으로 꼽힌다.

요새에 있는 타워는 1464년에야 완공되었는데 이 타워에서 아름다운 도시를 조망할수있다

로부리예나츠(Lovrijenac) 요새

서쪽의 성벽 밖에 있는 이 요새는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하여 36m 높이의 절벽위에 만들어졌다.

14세기에 만든 이 요새는 바다와 육지로 부터의 침입을 모두 감시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고

오늘날에는 두브로브니크의 유명한 여름축제 기간 중에 공연과 콘서트가 열리는데

특히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공연된 것으로 유명합니다.

총 3층 구조이며 1층은 도개교를 통해 곧바로 바다와 연결됩니다.

 

 

 요새 위에는 대포가 도시로 침입하는 적을 향해......

 

내전때에는 요새에 기관총이..

 

성요한 요새(St. John’s Fortress)

 

뮬로탑’이라고도 불리며 구시가지의 남동쪽에 위치합니다.

 도시로 들어오는 입구를 차단하고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요새로 16세기에 완공되었습니다.

탑은 14세기에 건설되었으며, 2세기 동안 좀 더 보강되고 증축되어

지금과 같은 반원형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해양박물관과 수족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곳에는 두브로브니크의 발전된 항해술과 조선기술에 대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성벽을 돌아보고 성안의 구시가지로 이동

 

 

파일 게이트(Pile Gate) 입구 

 

 

 

 

파일 게이트(Pile Gate) 

구시가지 서쪽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

 석조로 된 문은  고딕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아치형으로 된 안쪽문과 바깥쪽문 2개로 구성되어있다.
구시가지를 연결하는 석조로 된 다리도 함께 포함되는데

이 다리는 1471년에 건축 되었다. 

 

 

성문 위에는 이 도시에 수호성인인 성 블라이세의 조각상이...한손에 성의 모형을 들고.... 
이 조각상은 1537년에 건설된 나무로 된 도개교(渡開橋)와 마주하고있다.  

  

입구는 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하여 들어 올려지는 '도개교'로 되어 있다.

도개교는 적이 침입해오면 올려져서 진로를 차단한다 (옛 영화 바이킹처럼....)

세계문화. 자연유산의 보고 발칸여행 17일(개요)

 

 

1.유럽의 숨은보석 발칸반도

 

같은 동구권(동유럽)국가이면서 체코.형가리 등과는 달리 여행자에게는

아직은  낮설고 내전의 상처가 곳곳에 남아있고

여행을 위한 인프라가 충분히 갖추어 지지않아 관광객의 발길이 적어

비교적 여유있게 중세유럽의 또다른 모습을 볼수있는 곳이다.

 

 

 

             

  때묻지 않은 순박함, 아름다운 자연풍광, 서유럽에 못지않은 문화유적,

적당한 긴장감, 그리고 얽히고설 킨 종교, 문화, 인종의 다양성,

  이러한 것들이 발칸여행이 주는 매력입니다

 

2.종교. 문화가 모자이크처럼  복잡하게 혼재된  발칸반도

 

유럽과 아시아의 길목에 위치하여 외세침입과 전쟁의 역사를 지니고있는

 이들 국가는 고대그리스(마케도니아 알렉산더대왕)와 페르시아(이란).

로마제국. 비잔틴제국(동로마)을거쳐, 오랜세월 오스만 투르크(터어키)의 지배를 받았고

제2차 대전후에는 구소련의 영향권의  사회주의 국가 체제로 바뀌었다

따라서 이곳은 고대 로마시대유적과 중세시대 유물들이 잘 보존되어있

옛도시 곳곳에는 다양한 종교적.민족적문화을 간직하고 있다

   

3. 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  ,민주화 운동. 보스니아 내전, 코소보 사태 와

 민족, 종교적인 갈등으로  아직도 많은 상흔을 안고 있는 곳이기도합니다

(사망자 27만. 난민 230만. 경제적 피해액 550억불)

 

그러나 1995년 데이턴  협정 으로  평화와 민주화가 정착되면서

이제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조금씩 잦아지고 있습니다

여행 중에 마주치는 사람마다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고,

다정다감하고 ,정말 순박한 사람들인데,

복잡한 그네들의 사정을 알고 나면 ,저들의 밝게 웃는 표정 한구석엔

항상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행지 : 9개국  25도시(청색:수도)

1.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 모스타르. 메쥬고리예)

2.크로아티아(자그레브. 트로기르 스프릿트.드브로브릭. 플리트비체.자다르)

3.스로베니아(류브리나. 블레드. 포스토니아.)

4.세르비아 (베오그라드)

5.알바니아 (티라니)

6.몬테네그로 (부도바.코토르 )

7.마케도니아 (스코피예. 오흐리드)

8.불가리아(소피아.벨리쿠투르노보.가브르보. 바르나)

9.루마니아.(부가레스트. 코스탄자.브라쇼프. 브란)

*독 일 (뮌핸.프랑크프르트)- 경유지

 

 

루프트한자 독일항공 : 편도13시간비행 (인천-뮌핸-사라예보)

 

  

반도내륙 종단 15일간 사용 버스 (5.200km):1일400km(6시간)

 

차창 밖으로 본 풍경

 

차창밖으로는  유채꽃이 온들판을 ..

 

온들판이 민들레꽃이..

해바라기꽃이 지평선을 이루고

 

곳곳 초지에는  양과 소떼가  한가로이...

옥수수가 온들판에.. 사료와 대체연료(휘발유와혼합)로  사용한답니다

 

 무궁화가 우리나라에만 있는줄 ... 이곳에는  가로수로 신기하네요..

 

 

 

 험준한 발칸산맥을 넘어서 ..

 

 아직도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있고

 

 

국경통과시 마다 여권검사 (9개국 입출국 총18회검사)

 

 철저한 입국검색을 받고있는 (승용차)

 

몬테네그로 국경을 통과하면서.

알바니아 국경 입국하면서

 

착륙전 사라예보 상공

 

 

 

 유네스코 지정 문화.자연유산 국가별소개

 

크로아티아

 

아드리아해의 드브로브닉(구시가)

 

국립공원 플리트비체호수 

 보스니아-헤르초코비아

  

 

화해의상징 모스타르의 다리

슬로베니아

 

 브레드 호수 

 

  

 루마니아 

루마니아 국보1호 펠레쉬성

 

 불가리아

  벨리쿠르노보의 차라베츠요새(세계장수마을)

 

 마케도니아 

 

오흐리드호수와  성 소피아대성당(정교회)

 

몬테네그로 

 

코토르  옛성벽

 

 

 

  알바니아

 

중세의 유적지 부트린트

 

세르비아 

 

 

다뉴브강과 사바강합류점의 베오그라드(하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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