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인의 영적인 산 아라랏산

유태인들을 제외하고 세계 역사 속에서 아르메니아인들만큼 고난의 역사를 가진 민족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라랏산은 아르메니아인들의 뿌리일 뿐 아니라

긴 고난의 역사 가운데서 민족을 하나로 묶어준 구심점이기도 했습니다. 

구약 창세기 8:4에 보면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아라랏산은 대홍수 재앙을 피한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을 태운 방주가 홍수가 그치고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기나긴 표류를 끝내고 멈춘 곳이지요.

 

아르메니아 대평원에 우뚝 솟은 아라랏산은 해발 5,137m의 대아라랏과 3,896m의 소아라랏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아라랏은 그 봉우리가 일년내내 만년설로 뒤덮여 있고,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그 주변은 광활한 초원지대가 형성되어 유목민들이 목축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중세시대까지 아르메니아인들의 땅이었던 아라랏산은 오스만투르크에게 정복당한 후 지배권이 터키로 넘어갔고,

19세기말 터키에 의해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인종청소가 시작되면서

아르메니아인들은 더 이상 아라랏산에 오를 수조차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코르비랍 수도원

 코르비랍 수도원은 "깊은 우물"이란 뜻을 가진 아르메니아가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된 사연을

간직한 곳으로서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르메니아에 최초로 기독교가 전파된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 사도 바로톨로메오와 유다(타대오)가

이곳에 와서 복음을 전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볼 때 AD 1세기였을 것입니다. 


아르메니아 왕국의 통치자 트리다테스 3세 시대에 왕의 신하였던 그레고리(A.D. 257-331)가

이곳 코르비랍 지하 감옥에 갇히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레고리의  아버지는 트리다테스 왕의 아버지를 죽인 후 쫓겨다니다가 카파도기아로 피신하게 됩니다.

그레고리는 그곳에서 성장하였고, 사제가 되어 자신의 고향 아르메니아로 돌아왔습니다.

아르메니아에서 기독교를 전파하던 그는 왕에 붙잡히게 되었고, 왕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죄와

이교를 전파한 죄를 묻고 아나히타 신에게 제물을 바치라고 명령합니다.

이 왕의 명령을 거부하자 왕은 그를 깊은 지하감옥인 코르비랍에 가두어 버린 것이지요.

그레고리를 감옥에 가두고, 동로마에서 아르메니아에 기독교를 전하러 온 33명의 수녀들을 가혹한 방법으로

살해하면서 기독교를 박해하던 왕은 어느날부터 심각한 정신적인 질환에 시달리게 됩니다.

날마다 고통스러워하던 왕은 어느날 자신이 십 수년 전에 감옥에 가두었던 그레고리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찾아가게 됩니다.  코르비랍은 한 번 들어가면 죽어서 나올 수밖에 없는 지하 감옥이었죠.

그런데 그곳에서 그레고리는 기적처럼 살아 있었고, 그레고리로부터 복음을 들은 왕은 회개하고

자신의 정신병을 고침받게 됩니다.

기독교인이 된 왕은 그레고리와 함께 기독교를 아르메니아의 국교로 선포하였고,

그레고리는 아르메니아 최초의 주교가 되었습니다. 

그 후 5세기에 그레고리가 14년 동안 갇혀있던 감옥 위에 교회와 수도원을 세웠고,

이 수도원이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완공된 것은 17세기라고 합니다.

코르비랍이 아르메니아인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두 가지겠지요.

첫째는 자신들의 마음의 고향이자 거룩한 산인 아라랏산을 가장 가까이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때문이요,

그리고 둘째는 아르메니아 기독교 신앙의 뿌리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십자가 외의 상징이나 그림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내부에 들어가보아도 성 모자의 그림 하나 외에는 다른 성화나 그림들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은  십자가 문양을 깊은 기도와 온갖 정성을 담아 조각하여 설치합니다.

오랜 전통인 이 십자비는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만의 독특한 유산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라랏산 일출촬영을  위한 새벽출사 .

아르메니아 선교를 위해 예수님의 두제자가 만났다는 장소

* 바돌로매와 타대오가 아르메니아 선교를 위해 만난 그 언덕에 큰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코르 비랍 수도원이 순례지로 주목받는 이유는 성 그레고리가 아르메니아의 왕 티리다테스 3세에

의해 13년 동안 이곳에 투옥되었고, 이후 <성 그레고리>는 왕의 종교적 멘토가 되었고,

그들이 나라에서 기독교 전도 활동을 이끌어 가갔으며,

301년에 아르메니아는  세계 최초로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17세기에 건설된 이 성모교회가 본당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성모교회

수도원의 전면부 . 조지와 수도원과 비슷한듯 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느낌이 나더군요.

조지아의 수도원들은 첨탑이 원형인데 아르메니아 교회는  12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교회 내부,조지아정교회와는 달리 사제단과 회중석 사이의 가림막이 없습니다.

벽에 성화를 그리지 않고 전면부에 성모자와 아르메니아 교회 성인들 사진만 붙어 있습니다.

조지아정교회와 달리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십자가 외의 상징이나 그림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내부에 들어가보아도 성 모자의 그림 하나 외에는 다른 성화나 그림들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성 그레고리>가 던져졌던 코르 비랍(깊은 구덩이) 지하실로 통하는 문

성 그레고리가 갇혀있던 지하감옥으로 내려가는 사다리

지하 감옥에  조그만 기도소가 있습니다

 성 바돌로매와 성 타대오의 두성인 (사도 타대오가 아르메니아에 올 때 가져온  창)

적외선기법의사진 

 

예루살렘 성전이 바라보이는 감람산 아래 온통 무덤들로 가득한 것처럼

아르메니아 인들은 아라랏산이 바라다보이는 이곳에 공동묘지를 조성했습니다

 

노아의 방주에서 떼어온 돌판(나무의 화석) 관련 전설이 있네요.(에치미아진대성당 박물관에보관)

4세기경, 아르메니아의 수도사가 아라랏 산에서 수도생활하다가 잠이 들었다.

천사가 와서 "잠에서 깨어나시오. 당신의 손 위에 나못조각이 있을 것이오 .

이것은 노아의 방주에서 떼어낸 것이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쇠한 수도사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손바닥 위에 나못조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수도사가 가져온 나뭇조각위에 보석으로 장식된 황금 십자가를 붙여놓았다.

 

튀르키예(터키)지역 아라랏산 노아의방주 유적

 

켑쳐온 이미지(C채널 :"성지가좋다 "영상중에서)

 

* 합성이미지 (표지내용을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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