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바이트 증기기관 열차와  글렌피넌 협곡

 

말레이그에서 글래스고까지 이어지는 웨스트 하이랜드 레일웨이를 달리는 자코바이트 증기기관 열차는 

아름다운 웨스트 하이랜드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아름다운 마을과 항구도시 자연환경을 한번에 즐길 수 있는 자코바이트 열차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도로도 선정되었습니다.

자코바이트 열차는 영화 해리포터의 촬영지로 유명한데 해리포터의 촬영지였던 글렌피넌 협곡을 지나며

기차 안에서는 해리포터와 관련된 다양한 기념품을 판매합니다.

매년 40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이 고가교를 찾는다고 하니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여행에서 필스코스임.

 

 

관광열차 자코바이트와 글렌피난 고가교(콘크리트 기차교), (광고 사진) :

 

100여년전에 개통한 포트 윌리암과 서쪽해안 말레이그간 철도이다.

아름다운 주변경관으로 유명하다. 왕복 100킬로 증기기관차 관광열차를 하루한번 운행하고 있다.

글렌피난( Glenfinnan) 에 가면 커다란 고가교 위에 여전히 증기기관차가 다니고,

하루에 두번, 2시간30분동안 포트윌리엄과 말레이그 사이를 달리는 이 기차를 타볼수도 있다.

이 기차는 해리포터 영화에도 나와서 더 유명해 졌다.

 

 

퍼온그림

스코틀랜드10파운드지페

캐슬 스토커( Castle Stalker)

 스코틀랜드 북서부의 아가일 포트 아핀 근처에  있는 로크 라이히(Lock Laich)의 갯벌 섬에

있는  4층짜리 타워 하우스 또는 요새입니다.

14세기에 성은  영주였던 MacDougalls를 위한 작은 거주용 요새 부지에 지어졌습니다.

1620년에 이 성은 술에 취한 도박으로 잃어버렸고, Airds의 Campbells의 재산이 되었습니다. 

Airds는 19세기에 본토에 새 집을 지었습니다. 

그로 인해 성은 창고가 되었고, 방치되고 방치되었습니다.

Lock Laich의 갯벌 섬에있어  썰물 때는  해안에서 섬에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Castle Stalker는 개인 소유입니다

 

 

켈빈 그로브 미술관 및 박물관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Glasgow) 켈빈그로브 공원에 있는 박물관 겸 미술관이다.
22개 갤러리에 8,000점 이상의 작품을 보유한 켈빈그로브는 영국 최대의 박물관 중 하나이다. 빅토리아 스타일의 인테리어를 포함하여 광범위한 새단장을 마치고, 재개장하였다.
새로운 전시물과 스코틀랜드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찰스 레니 메킨도시(Charles Rennie Mackintosh)의 쇼케이스 등을 포함하여 약 80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켈빈 그로브 미술 박물관에서는  각종 예술 작품을 비롯하여 자연사, 고고학, 민속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시가 이루어진다.
프랑스 인상주의 작품과 17세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지방의 회화, 스페인 초현실주의 작품 등이 유명하다. 또, 스코틀랜드와 글래스고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물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켈빈 그로브 미술 박물관에서는 무기와 갑옷에서 모든 시기와 사조의 그림, 그리고 자연 역사관까지 풍부한 미술 및 역사 유물을 탐구할 수 있다.

영국 스콧틀랜드 글래스고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

전세계 영어권 대학 중에서는 네 번째로 역사가 오래된 대학교이다.

451년 스콧틀랜드왕 제임스 2세의 권유를 받아들인 로마 교황 니콜라우스 5세가 글래스고의

주교 턴불에게, 대학설립을 허락하는 칙서를 내림으로써 설립된 대학

1) 글래스고는 고대부터 클라이드 강 유역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로마 제국 시대에는 켈트인, 픽트인이 거주했으며 브리타니아와 칼레도니아 사이에 요새가 건립되었다.

 

2) 6세기 경 '세인트 멍고'에 의해 기독교 신앙 공동체가 세워진 이후 사람들이 살았으며, 12세기에는 글래스고 대성당이 건립되었고 1451년에는 글래스고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또한 16세기에는 클라이드 강을 통한 무역이 전개되었는데 아메리카 대륙에서 생산된 담배, 카리브 해에서 생산된 사탕 등 여러 물품이 이곳 글래스고를 통해 영국에 전해졌다.
본격적인 대도시로서 발전은 1707년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와 합방한 이후이다.

 에딘버러의 랜드마크이자 심장, 에딘버러 성

11세기에 건설된 도시로 15세기부터는 스코틀랜드 왕국의 수도로 행정·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고풍스런 중세 분위기의 구시가지와 18세기 이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조성된 신시가지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조화롭게 펼쳐져 있고, 이러한 조화가 에든버러의 가장 큰 특징이다.

1985년 유네스코는 이 신·구시가를 묶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신·구시가는 시 중앙부에 동서로 뻗어 있는 프린스 거리(Prince’ Street)를 경계로 나뉘는데

남쪽에는 구시가지가, 북쪽에서 해안까지는 신시가지가 자리잡고 있다.

신시가지는 18세기 도시계획 하에 만들어진 신고전 양식의 건물들로 둘러싸인 주택 및 상업지구이다. 

11세기 성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구 시가지에는 에든버러성을 비롯하여 많은 관광 명소가 있다.

구시가의 서쪽 화산암 위에 자리잡은 에든버러성은 이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성은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으며,

17세기 초까지 스코틀랜드의 왕이 살았던 곳이다.

 

성 안에는 당시의 유물들이 남아 있으며, 왕의 대관식 때 사용되던 ‘운명의 돌’도 볼 수 있다.

그외 17세기까지 스코틀랜드 의회가 열리던 대연회장,

가장 오래된 건물인 세인트 마거릿 예배당(St. Markgaret’s Chapel)도 있다.

구시가동쪽에는 15세기 제임스4세 때부터 사용되기시작한 홀리루드하우스궁전이 있다.

지금도 영국 여왕이 스코틀랜드를 방문할 때마다 머무는 곳이며,

종교분쟁 속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의 거처이기도 하다.

성내에는 비운의 여왕 메리와 관련된 유물들이 많아 남아 있다.

에든버러성과 홀리루드하우스궁전은 과거 왕의 전용도로였던 

로열마일(Royal Mile, 길이는 약 1.6km)로 연결되어 있다.

구시가의 중심도로라 할 수 있는 로열마일 주위에는 왕가의 거처 이외에도 많은 옛 건축물들이 있다.

에든버러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가진 톨부스 교회, 14~15세기 완성된 세인트 자일스 성당,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한 과거 스코틀랜드 국회의사당,

감옥으로 사용되다 사회사박물관으로 탈바꿈한 캐넌게이트 톨부스,

17세기 세워진 서민들의 공동주택 글래드스톤스 랜드 등이 모두 로열마일 주위에 포진하고 있다.

톨부스 교회 옆에는 스코틀랜드에서 특히 유명한 스카치위스키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7세기에 브리튼인(人)을 격파한 노섬브리아 왕국의 에드윈 왕(王)이 바위 위에 요새를 만들었는데,

이 '에드윈의 성'이 에딘버러라는 명칭의 어원이 되었다.
바위산 위에 세워진 에든버러 성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중세 도시의 분위기로 가득하다.

 군사적 요새였기 때문에 궁전의 화려함보다 요새와 성이 갖는 견고하고 투박한 느낌이 강하다.
스코틀랜드 역사의 비극은 에딘버러 성으로 상징되고 있다.

성 안 대연회장에는 과거 스코틀랜드 왕의 대관식 때 사용되었던

‘운명의 돌(The Stone of Destiny)’이 전시돼 있다.
스코틀랜드 왕가의 상징인 ‘운명의 돌’은 700년 전 이웃나라 잉글랜드의 왕인 ‘에드워드 1세’에게 빼앗겨,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서 분리된 이후인 지난 1996년에야 돌려받았다.


에딘버러 캐슬(Edinburgh Castle)

시내 한 가운데, 큰 바위산 위에 우뚝솟아 위용을 자랑하며 에딘버러의 스카이 라인을 지배하고 있다.

요새(Fort)이고 성(Castle)이며 궁(Palace)이다.

브리튼족 왕 고드딘(Gododin)이 1,500년전에 석축 요새를 짓고 딘 에딘이라 불렀다.

에딘버러의 시작이다. 성은 스코틀랜드 왕국의 왕궁이었다.

지금은 박물관, 전시관으로 운영한다. 일부는 여전히 군대에서 사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잠시 살았던 왕은 비운의 메리여왕(잉글랜드의 헨리8세 큰딸 메리여왕이 아님)으로

아들 제임스 6세 (통합 영국 제임스1세)를 여기서 낳았

에든버러 성  아치문 양쪽으로 동상이 있는데, 왼쪽은 월리암 월리스 오른쪽은 황제동상

위대한 영웅 월레스는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외치며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다

월리스는 죽은뒤 갈기갈기 찢겨서 머리는 런던 다리에 걸렸고,

 팔과 다리는 영국의 네군데 변방에 경고용으로 보내지기도​,악질나라였던 영국 선조들 

정문위에 있는 문양은 스튜어트 왕가가 통치할 당시의 문양이 있다. 

 

성안의 대포 : 신시가지, 항구쪽을 향해있다.

20인치 세계적인 대구경 대포 Mons Meg(오른쪽)

:500년전 벨기에 Mons에서 만들어져 잉글랜드에 적대적인 부르고뉴 공작이 스코틀랜드 제임스 2세에게 기증한것이다.

 1680년 행사발사중 포신이 깨지며 퇴역하였다. 

옛날대포와 별도로 현재의 대포 한문이 별도로 떨어져 있다. 1시대포(One O's Clock Gun)이다.

 

 

 

Stone of Scon : 이름도 여러개이고 사용된 유래도 서너가지 설이 있는

대대로 스코틀랜드 왕국의 왕의 대관식을 거행하던 신성한 돌이다.

1296년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를  점령하고 퍼스근처의 스콘 팰리스에 있던 스콘돌을 잉글랜드로 빼앗아 갔다.

런던 웨스터민스터 사원안에다 그 돌을 의자밑에 끼워넣은 나무 왕좌를 만들어 700년동안이나

잉글랜드 왕의 대관식때 대대로 사용하였다.

마지막으로 사용한 대관식은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다.

 

1950년 크리스마스 날 스코틀랜드 대학생 4명이 돌을 훔쳐 스코트랜드로 가져갔다.

웨스터 민스터에서 빼내는 도중 돌은 둘로 깨지기도 했다고 한다.

1951년 8월 영국경찰은 스코틀랜드에서 다시 찾아 런던에 원위치 시켰다.

몇년전인 최근1996년 토니 블레어 총리의 영국 정부는 11월30일 700년만 스코틀랜드에 반환 하였다

(스콧의 독립분위기를 달래기위해...) . (단 영국왕 대관식에는 사용 하기로 했다) 

현재 여기 에딘버러 크라운 룸에 보관되어 있다. 

스코틀랜드는 역사적으로 로마와의 전쟁, 부족간의 투쟁을 거쳐 왕국이 건설 되었다. 

그후 잉글랜드 왕국의 침공으로 독립을 위해 잉글랜드와 끊임없이 싸워왔다.

수십번의 치열한 전쟁의 한복판에 여기 에딘버러성이 있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멜깁슨이 떠올랐다.

 The Hub(허브)

  스코틀랜드 교회(The Church of Scotland)의 교구와 총회를 위해

1842년에서 1845년 사이에 세워진 건물이며, 첨탑은 시에서 가장 높다

1845년 건축 당시에는 Victoria Hall. 1910년 세계 최초의 세계선교사 대회가 열렸던 교회.

1956년에는  Highland Tolbooth St John's Church.

교회는 지금은 더 이상 예배를 드리지 않고 에딘버러 관광청에서 information centre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로얄 마일이란

에든버러 성이 위치한 캐슬 락(Castle Rock)에서 부터 홀리루드 수도원까지 동서로 길게 연결되는

1.6km 돌길로 예전에 귀족들만 다녔다.

캐슬힐 언덕에서 홀리후드 수도원으로 이어지는 로얄마일은 내리막길로,.  여러 거리들이 이어져 있다

 

이 곳은 주말이 되면 특히 스코틀랜드의 길거리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주말 마켓이 열린다

 

 

거리 자체가  알록달록한 상점들과 레스토랑 거리 빅토리아 스트릿 & 그라스 마켓

그리고 17세기에는 사형장소로 사용됬던 당시 잔인한 장소였던 그라스 마켓

1911년 폐쇄되어 현재는 펍, 카페 등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들이 있는 곳이다

에딘버러 성까지 이어지는 구시가지 "로얄마일" The royal mile

 

 

그레이라는 사람이 키운개인데, 그가 죽자 14년동안을 주인의 무덤을 지킨 충견

바비는 시민권을 부여받고 주인옆에 묻혀있다. 에든버러 거리에 있다​ 

 

세인트 자일스(St.Giles. 에딘버러 수호성인) 대성당.

1124년 카톨릭교회로 시작, 

 900년간 에든버러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으며, 오늘날에는 '장로교의 모교회'로 간주되고 있다.

1559년-1572년  종교개혁의 선구자 존 녹스가 이 교회의 사제가 되어 프로테스탄트 보급에 노력했다.

교회 첨탑은 왕관모양이며 교회 내부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름답다고 한다.

윗쪽으로 공작의 동상이 보인다. 아래쪽에 국부론의 아담스미스 동상이 있다.

 

 

                                

월리암 워드워즈생가

그래스미어 마을에 있는 도브 코티지(Dove Cottage)는 1799년부터 1808년까지

유명한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살았던 곳으로 '수선화', '서곡' 등 그 작품 중 가장 훌륭한 시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영감을 받아 시를 완성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시의 선율을 빚어낸 워즈워스는 영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잘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인생의 황금기를 이곳에서 보냈고 그에 대한 여러 유물이 남아있는 집입니다.

 

'수선화(Daffodils)'라는 시는

워즈워스가 자신의 여동생 도로시(Dorothy)와 레이크 디스트릭트 호수 주변을 산책하다가

호숫가에 만개한 수선화를 본 경험을 회상하며 쓴 작품

 

나는 구름처럼 외로이 헤맸네 (I Wandered Lonely As a Cloud)

 나는 골짜기와 산 위를 높이 떠도는  구름처럼 외로이 헤맸네
그러다 문득 한 무리 꽃을 보았네


무수한 황금빛 수선화   호숫가 나무 밑에서
미풍에 흔들리며 춤추는 것을

그들은 은하수에서 반짝이는  별들처럼

 

이어져  호숫가를 따라 돌며 끝없이 끝없이 피어 있었네
수만 꽃송이가 한눈에 들어왔고  머리 까딱대며 흥겹게 춤추는 모습이

반짝이는 물결 그 곁에서 춤췄으나

 

꽃들의 흥겨움 한결 더했네
그처럼 유쾌한 무리와 어울리니   시인인들 즐겁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는 보고 또 보았지만 그땐 미쳐 몰랐네
그 광경이 내게 얼마나 값진 걸 주었는지

 

지금도 가끔 긴 의자에 누워   마음을 비우거나 생각에 잠길 때면
고독의 축복이랄 수 있는 마음의 눈에  그 수선화들 문득 스쳐가곤 하네   

그러면 내 가슴 기쁨으로 가득 차
수선화들과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춘다네

 

 

이 오두막집의 역사는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한때는 선술집이기도 했지만

이 집이 유명한 것은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와 평생 동안 그의 동반자였던 누이 도로시가

1779~1808년까지 이곳에 살았기 때문이다.

 1802년 워즈워스는 메리 허친슨과 결혼했고, 메리와 그 자매인 사라가 도브 코티지에서 함께 살며

집안 살림을 맡아보게 되었다.

워즈워스와 메리는 이 오두막집에서 세 자녀를 낳았다. 워즈워스는 1850년에 사망했으며,

그와 도로시와 메리는 모두 결국은 그래스미어로 돌아오게 되었고

그들은 그래스미어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가장 훌륭한 작품 중「수선화」와「서곡」은 대부분 도브코티지에서 썼다

 

수선화는 ‘Narcissus’라고도 부르는데 초봄인 2-3월에 꽃이 피어요.

봄이 되면 레이크 디스트릭트뿐만 아니라, 영국 전역에서 볼 수 있는 흔하고 평범한 꽃이지요.

워즈워스는 이 수선화를 통해 자연이 주는 기쁨과 위안을 넘치게 표현했어요.

워즈워스의 무덤 (The Wordsworth Graves,) 

윌리엄 워즈워스의 가족들의 묘

교회 뒤뜰에 윌리엄 워즈워스 시인의 가족들의 묘지가 있습니다. 

초원의 빛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 William Wordsworth는 영국의 컴브리아의 그래스미어 Cumbria Grasmere에 있는 세인트 오스왈드 교회 마당 에 묻혀있습니다.

1813년부터 사망하던 1850년까지 무려 51년 동안 이곳에 머물렀던 '그래스미어의 영혼'임이 틀림없습니다. 

 

가슴 벅찬 무언가를 발견하고 싶을 때는 윌리엄 워즈워스의 '(내 가슴은 설레고)'를 읽어보세요.

가장 유명한 시구절 중 하나인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멋진 시구도 바로 이 여기에서 만나 볼 수 있지요.

하늘의 무지개를 발견하고 가슴 벅찼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려보세요.

어린아이의 눈과 가슴으로 보고 느껴야 비온 뒤의 무지개를 그토록 즐거워할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요.

무 지 개

하늘의 무지개 바라볼 때면
내 가슴은 뛰누나.

내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나 어른이 된 지금도 이러하거니
나 늙어진 뒤에도 그러하길
아니면 나는 죽어도 좋으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여라.
내 삶이 자연을 경애하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 이어지기를 바라노라.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호수지방(Lake District)윈더미어

영국 북서부에 있는 호수지방은 영국최대의 국립공원으로호수지방( Lake District)로,

동서 50km 남북 40여km크기에 16개의 크고 작은 호수와 높은산, 아기자기한 작은 마을을 가지고 있다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와 피터래빗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영국 윈더미어 호수는 레이크 디스트릭트 국립공원에서 가장 큰 호수다.

이 호수에는 18개의 섬들도 있어, 자연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호수지역이다.

특히 이 호수지역에서는 빙하기 때에 형성된 16개의 호수들과 늪지대,

산과 협곡 등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수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50곳'에 선정되기도 했다.

호수는 남북으로 가늘고 기다랗게 생겼는데 그 가운데 부두가 보네스(Bowness) Pier다. 

면적 15㎢. 길이 17km. 너비 1.6km. 반경 45㎞. 최대수심 70m 윈더미어호의 북쪽마을은 

앰블사이드,  남쪽마을은  레이크 사이드이다.

호수 북쪽 앰블사이드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그래스미어( Grasmere)가 나오는데...

윌리암 워드워즈가 생활한 마을이다.

 

 

‘보네스 - 앰블사이드 구간 “윈더미어 호수 유람선 ”

윈더미어 - 보네스 선착장에서는

윈더미어 호수 주위 여러곳으로 향하는 배들이 출발하고 있다. 

브릿지 하우스(Bridge House)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불리는 이름 그대로 ‘다리 집’인데 정말로 다리 위에 집이 있다. 하천이 좁아 큰 집은 아니고 작은 집이다.

땅 위에 집을 지어 소유하고 있으면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그런데 어느 지독한 구두쇠가 세금을 내기 싫어 작은 다리 위에 집을 지었다.

다리는 원래 사람들의 통행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주변에 새로운 다리가 만들어져 사람들이 그 다리를 이용하자

구두쇠는 지금의 이 작은 다리에 집을 지었다. 정말 대단하다.

17세기에 지어진 이 집은 한때 사과 창고, 사과 판매 상점으로 이용되었다.

1926년 앰블사이드 주민들이 이 집을 구입하여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부하여 지금까지 관리되고 있다.

앰블사이드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거의 이곳을 방문한다. 

윌리엄 워즈워스는 이 작은 도시 앰블사이드에도 살았다.

1812년 우편 관련 업무를 하면서 앰블사이드 우체국에서 일했다.

워즈워스는 훗날 이 도시에 머물렀던 기억을 하면서 앰블사이드를 문학과 예술의 소재가 많은 곳이라고 했다.

앰블사이드 또한 워즈워스의 문학적 영감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산에는 고사리가 지천이다. 훌륭한 사슴 먹이가 될것이다

500년된식당 (1639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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