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딘버러의 랜드마크이자 심장, 에딘버러 성
11세기에 건설된 도시로 15세기부터는 스코틀랜드 왕국의 수도로 행정·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고풍스런 중세 분위기의 구시가지와 18세기 이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조성된 신시가지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조화롭게 펼쳐져 있고, 이러한 조화가 에든버러의 가장 큰 특징이다.
1985년 유네스코 는 이 신·구시가를 묶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신·구시가는 시 중앙부에 동서로 뻗어 있는 프린스 거리(Prince’ Street)를 경계로 나뉘는데
남쪽에는 구시가지가, 북쪽에서 해안까지는 신시가지가 자리잡고 있다.
신시가지는 18세기 도시계획 하에 만들어진 신고전 양식의 건물들로 둘러싸인 주택 및 상업지구이다.
11세기 성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구 시가지에는 에든버러성 을 비롯하여 많은 관광 명소가 있다.
구시가의 서쪽 화산암 위에 자리잡은 에든버러성은 이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성은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으며,
17세기 초까지 스코틀랜드의 왕이 살았던 곳이다.
성 안에는 당시의 유물들이 남아 있으며, 왕의 대관식 때 사용되던 ‘운명의 돌’도 볼 수 있다.
그외 17세기까지 스코틀랜드 의회가 열리던 대연회장,
가장 오래된 건물인 세인트 마거릿 예배당(St. Markgaret’s Chapel)도 있다.
구시가동쪽에는 15세기 제임스4세 때부터 사용되기시작한 홀리루드하우스궁전 이 있다.
지금도 영국 여왕이 스코틀랜드를 방문할 때마다 머무는 곳이며,
종교분쟁 속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의 거처이기도 하다.
성내에는 비운의 여왕 메리와 관련된 유물들이 많아 남아 있다.
에든버러성과 홀리루드하우스궁전은 과거 왕의 전용도로였던
로열마일 (Royal Mile, 길이는 약 1.6km)로 연결되어 있다.
구시가의 중심도로라 할 수 있는 로열마일 주위에는 왕가의 거처 이외에도 많은 옛 건축물들이 있다.
에든버러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가진 톨부스 교회, 14~15세기 완성된 세인트 자일스 성당,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로 유명한 과거 스코틀랜드 국회의사당,
감옥으로 사용되다 사회사박물관으로 탈바꿈한 캐넌게이트 톨부스,
17세기 세워진 서민들의 공동주택 글래드스톤스 랜드 등이 모두 로열마일 주위에 포진하고 있다.
톨부스 교회 옆에는 스코틀랜드에서 특히 유명한 스카치위스키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7세기에 브리튼인(人)을 격파한 노섬브리아 왕국의 에드윈 왕(王)이 바위 위에 요새를 만들었는데,
이 '에드윈의 성'이 에딘버러라는 명칭의 어원이 되었다. 바위산 위에 세워진 에든버러 성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중세 도시의 분위기로 가득하다.
군사적 요새였기 때문에 궁전의 화려함보다 요새와 성이 갖는 견고하고 투박한 느낌이 강하다. 스코틀랜드 역사의 비극은 에딘버러 성으로 상징되고 있다.
성 안 대연회장에는 과거 스코틀랜드 왕의 대관식 때 사용되었던
‘운명의 돌(The Stone of Destiny)’이 전시돼 있다. 스코틀랜드 왕가의 상징인 ‘운명의 돌’은 700년 전 이웃나라 잉글랜드의 왕인 ‘에드워드 1세’에게 빼앗겨,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서 분리된 이후인 지난 1996년에야 돌려받았다.
에딘버러 캐슬(Edinburgh Castle)
시내 한 가운데, 큰 바위산 위에 우뚝솟아 위용을 자랑하며 에딘버러의 스카이 라인을 지배하고 있다.
요새(Fort)이고 성(Castle)이며 궁(Palace)이다.
브리튼족 왕 고드딘(Gododin)이 1,500년전에 석축 요새를 짓고 딘 에딘이라 불렀다.
에딘버러의 시작이다. 성은 스코틀랜드 왕국의 왕궁이었다.
지금은 박물관, 전시관으로 운영한다. 일부는 여전히 군대에서 사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잠시 살았던 왕은 비운의 메리여왕(잉글랜드의 헨리8세 큰딸 메리여왕이 아님)으로
아들 제임스 6세 (통합 영국 제임스1세)를 여기서 낳았
에든버러 성 아치문 양쪽으로 동상이 있는데, 왼쪽은 월리암 월리스 오른쪽은 황제동상
위대한 영웅 월레스는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외치며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다
월리스는 죽은뒤 갈기갈기 찢겨서 머리는 런던 다리에 걸렸고,
팔과 다리는 영국의 네군데 변방에 경고용으로 보내지기도,악질나라였던 영국 선조들
정문위에 있는 문양은 스튜어트 왕가가 통치할 당시의 문양이 있다.
성안의 대포 : 신시가지, 항구쪽을 향해있다.
20인치 세계적인 대구경 대포 Mons Meg(오른쪽)
:500년전 벨기에 Mons에서 만들어져 잉글랜드에 적대적인 부르고뉴 공작이 스코틀랜드 제임스 2세에게 기증한것이다.
1680년 행사발사중 포신이 깨지며 퇴역하였다.
옛날대포와 별도로 현재의 대포 한문이 별도로 떨어져 있다. 1시대포(One O's Clock Gun)이다.
Stone of Scon : 이름도 여러개이고 사용된 유래도 서너가지 설이 있는
대대로 스코틀랜드 왕국의 왕의 대관식을 거행하던 신성한 돌이다.
1296년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를 점령하고 퍼스근처의 스콘 팰리스에 있던 스콘돌을 잉글랜드로 빼앗아 갔다.
런던 웨스터민스터 사원안에다 그 돌을 의자밑에 끼워넣은 나무 왕좌를 만들어 700년동안이나
잉글랜드 왕의 대관식때 대대로 사용하였다.
마지막으로 사용한 대관식은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다.
1950년 크리스마스 날 스코틀랜드 대학생 4명이 돌을 훔쳐 스코트랜드로 가져갔다.
웨스터 민스터에서 빼내는 도중 돌은 둘로 깨지기도 했다고 한다.
1951년 8월 영국경찰은 스코틀랜드에서 다시 찾아 런던에 원위치 시켰다.
몇년전인 최근1996년 토니 블레어 총리의 영국 정부는 11월30일 700년만 스코틀랜드에 반환 하였다
(스콧의 독립분위기를 달래기위해...) . (단 영국왕 대관식에는 사용 하기로 했다)
현재 여기 에딘버러 크라운 룸에 보관되어 있다.
스코틀랜드는 역사적으로 로마와의 전쟁, 부족간의 투쟁을 거쳐 왕국이 건설 되었다.
그후 잉글랜드 왕국의 침공으로 독립을 위해 잉글랜드와 끊임없이 싸워왔다.
수십번의 치열한 전쟁의 한복판에 여기 에딘버러성이 있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멜깁슨이 떠올랐다.
The Hub (허브)
스코틀랜드 교회 (The Church of Scotland) 의 교구와 총회를 위해
1842 년에서 1845 년 사이에 세워진 건물이며 , 첨탑은 시에서 가장 높다
1845년 건축 당시에는 Victoria Hall. 1910 년 세계 최초의 세계선교사 대회가 열렸던 교회.
1956 년에는 Highland Tolbooth St John's Church.
교회는 지금은 더 이상 예배를 드리지 않고 에딘버러 관광청에서 information centre 와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
로얄 마일이란
에든버러 성 이 위치한 캐슬 락 (Castle Rock) 에서 부터 홀리루드 수도원 까지 동서로 길게 연결되는
1.6km 돌길로 예전에 귀족들만 다녔다.
캐슬힐 언덕에서 홀리후드 수도원으로 이어지는 로얄마일은 내리막길로,. 여러 거리들이 이어져 있다
이 곳은 주말이 되면 특히 스코틀랜드의 길거리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주말 마켓이 열린다
거리 자체가 알록달록한 상점들과 레스토랑 거리 빅토리아 스트릿 & 그라스 마켓
그리고 17세기에는 사형장소로 사용됬던 당시 잔인한 장소였던 그라스 마켓
1911년 폐쇄되어 현재는 펍, 카페 등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들이 있는 곳이다
에딘버러 성까지 이어지는 구시가지 "로얄마일" The royal mile
그레이라는 사람이 키운개인데, 그가 죽자 14년동안을 주인의 무덤을 지킨 충견
바비는 시민권을 부여받고 주인옆에 묻혀있다. 에든버러 거리에 있다
세인트 자일스(St.Giles. 에딘버러 수호성인) 대성당.
1124년 카톨릭교회로 시작,
약 900 년간 에든버러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으며 , 오늘날에는 ' 장로교의 모교회 ' 로 간주되고 있다.
1559년-1572년 종교개혁의 선구자 존 녹스가 이 교회의 사제가 되어 프로테스탄트 보급에 노력했다.
교회 첨탑은 왕관모양이며 교회 내부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름답다고 한다.
윗쪽으로 공작의 동상이 보인다. 아래쪽에 국부론의 아담스미스 동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