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메니아 민족혼의 상징 - 타테브 수도원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지은 수도원.

멀리서 바라보는 타테브 수도원과 그 일대의 풍경은 신비롭고 아름답기만 합니다.

하지만 타테브 수도원이 유명한 것은 단순히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는 풍경 때문만은 아닙니다.

 타테브는 수천년 이어져온 아르메니아인들의 정신과 민족혼이 살아 숨쉬는 곳입니다. 

 2010년도에 할리브조르에서 타테브까지 이어주는  케이블카가 오전10시부터 운영되기 때문에

일출장면을 촬영하기위해  우리는 세벽에 일어나자마자 간단히 짐과  도시락을챙겨 소형버스로

타테브로 출발 오전06시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케이블카는 중간 기착지가 없이 직선으로 연결되는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타테브 수도원은 슈니크 지역의 주교좌 교회이자, 이 지역의 경제, 정치, 문화, 영적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곳 타테브 고원지역에는 기독교가 전래되기 전에 이교도 사원들이 있었습니다.

이 이교도 사원은 아르메니아가 기독교화되면서 자연스럽게 평범한 교회로 대체되는데요,

 1세기에 이 수도원에는 약 1천명의 수도자들이 생활하였고,

많은 예술가와 장인들이 이곳에 일했을 정도로 번성하였다고 합니다.

 

12세기에 수도원은 셀주크 투르크의 공격과 1231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는데,

특히 셀주크 투르크는 수도원을 약탈하고 약 1만여권의 필사본 성경과 서적들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14세기에는 수도원 안에 대학이 설립되어 아르메니아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타테브 수도원은 18세기 말에 다시 페르시아 군대의 침략을 받아 약탈당했으며, 19세기에 아르메니아가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 동안 예레반 교구의 일부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1920년에는 러시아 붉은 군대가 들어와 아르메니아를 러시아 연방으로 편입하고 이곳 슈니크 지역을

아제르바이잔에 편입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아르메니아인들은 타테브를 민족혼의 상징처럼 여기고 있으며, 실제로 수도원 내부에 보면

전투를 위한 병영같은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잦은 외부의 침략에 방어하기 위해 깎아지른 절벽 위에 높은 성벽을 쌓았던 것이지요.


이에 반발하여 애국지사들이 이곳 타테브 수도원에 모여 "오등은 자에 아 아르메니아가 독립국임을 선포하노라"

하면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는데요, 당시 정치 및 군사지도자였던 가레딘 느즈데는 이 독립선언서 발표를

주도했을 뿐 아니라, 아르메니아 산악공화국을 선포하고 군대를 조직하여 러시아의 붉은 군대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였습니다.

6개월간의 치열한 전투끝에 결국 패퇴한 가레딘 느즈데는 타테브 수도원 맞은 편에 보이는 산을 넘어

이란으로 망명길에 올랐다고 하네요...

 

 

 

타테브 수도원은 유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잠정 등재되어 심사중이라고 하네요.

그 역사성과 아름다움으로 보면 등재되어도 손색이 없을것깉네요....

아르메니아인들은 타테브를 민족혼의 상징처럼 여기고 있으며, 실제로 수도원 내부에 보면

전투를 위한 병영같은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잦은 외부의 침략에 방어하기 위해 깎아지른 절벽 위에 높은 성벽을 쌓았던 것이지요.

일출장면을 촬영하기위해  우리는 세벽에 일어나자마자 간단히 짐과  도시락을챙겨 소형버스로

타테브로 출발 오전06시에 도착하였습니다

타테브 수도원은 세 개의 교회와 행정동, 그 외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교회가 주교좌 교회 건물인 베드로와 바울교회입니다.

이 건물 뒤에는 성 그레고리교회가 있습니다.

 

10세기 경에 세워진 가바잔 시운이라고 불리는 이 돌 기둥은 성 삼위일체께 헌정된 기념물인데요.

교회의 남쪽에 위치한 이 기둥은  8m 높이로서 그 꼭대기가 아르메니아 십자가인 카츠카르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 기둥의 주된 목적은 가벼운 지진의 진동을 측정하여 경고함으로써 지진 발생 가능성에 대한

일종의 조기경보체제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네요

2010년도에 할리브조르에서 타테브까지 이어주는  케이블카가 오전10시부터 운영되기 때문에

일출장면을 촬영하기위해  우리는 세벽에 일어나자마자 간단히 짐과  도시락을챙겨 소형버스로

타테브로 출발 오전06시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케이블카는 중간 기착지가 없이 직선으로 연결되는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붉은 사암 의 노라방크수도원

 

13세기에 아마구 강 옆 협곡에 세워진 노라방크 수도원은 붉은 사암으로 된 절벽에 둘러쌓여

흡사 페트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아름다운 수도원입니다.

수도원 주위의 붉은 사암이 석양빛에 물들 때면, 역시 붉은 사암을 주 재료로 지은 노라방크!

환상적인 붉은 색으로 물드는데, 이 장면은 방문하는 모든 이들을 압도하기 충분할 만큼 아름답고 황홀합니다.

수도원의 명칭인 노라방크에서 '노라'는 아르메니아어로 새롭다는 의미이고 방크는 수도원을 가리킵니다.

12세기 이전까지 아르메니아 수도원들은 모두 8각형 내지는 12각형으로 된 지붕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노라방크는 원뿔 형태로 된 지붕을 얹었다고 해서 "새로운 수도원"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죠.

 

 

 작고 아담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이교회는  성모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1339년에 당시 최고의 건축가였던 모미크의 마지막 걸작품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교회

이 교회는 지진으로 인해 몇 차례 지붕이 무너져 보수하고 재건하는 과정을 거쳤는데요,

최근에는 1998년에 한 아르메니아계 캐나다인 가족 후원으로 지붕과 기둥이 재건되었습니다.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로마병사의 창 - 게하르트 수도원

 

 

이 수도원은 A.D. 4세기에 기독교를 아르메니아의 국교로 선포한 성 그레고리가 설립한 수도원으로서

이 때의 이름은 동굴수도원이란 의미의 '아이리방크'(Ayrivank)였다고 합니다.

절벽의 바위를 절단하여 동굴을 만들고 그 속에 수도원을 세웠기 때문에 주어진 이름이지요.

이 때 세워진 아이리방크는 9세기에 아랍인들에 의해 대부분 파괴되고 남아있지 않습니다.


게하르다방크는 '창(Spear)의 수도원'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창'이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로마병사가 예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옆구리를 찔렀던    그 창을 의미합니다.

아르메니아에 최초로 복음을 전했던 예수님의 제자 타대오가 그 창을 가져왔는데,

후에 이 수도원에서 그 창을 약 500여년 동안 보관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현재 그 창은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총대주교가 있는 예치미아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수도원 건물들은 대부분 13세기 초에 건축된 것들입니다.

바위를 잘라 만든 다양한 크기와 모양을 가진 아르메니아 십자가, 즉 카츠카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게하르트 수도원은 중세 아르메니아의 기독교 문화의 중심지로 유명하며, 종교적인 건물 외에도 학교,

필사실, 도서관, 그리고 암석을 자르거나 깍아 만든 성직자들을 위한 많은 수의 주거시설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수도원은 500년간 보관한 타대오가 가져온 창 외에도 12세기에 사도 성 안드레와 성요한의 유물을

기증받아 보관하고있다고합니다

 

 

수도원전경

주교좌교회 동쪽 첨탑이 있는 부분이 성모교회.그 옆으로 동굴교회가 있고

수도원을 둘러싼 건물들은 부속건물들로서 수도사들의 생활공간과 행정동 등 다양한 용도의 건물들입니다

 

 

아르메니아 수도원에 가면 하츠카르를 어디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흔한 것 같지만 같은 카츠카르는 하나도 없고. 모두 개성이 있고, 이걸 만든 장인의 창조성과 기술이 집약되어있네요





동굴교회  입구

 동굴교회 입구 위에도  하츠카르들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대형 하츠카르

사도 유다 타대오가 아르메니아에 가져왔다고 여기는 로마병사의 창을 주교좌 교회 출입문에 새겼네

이 창의 쇠촉부분은 현재 예치미아진의 사도교회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안젤리코가 그린 프레스코화

Fresco by Fra Angelico, Dominican monastery at San Marco,

Florence, showing the lance piercing the side of Jesus on the cross (c. 1440)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롱기누스의 창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창(에치미아진 대성당 박물관에보관중)

(에치미아진 대성당 박물관에보관중)

 

 

 성모교회안   제대

 

 

수도원의 소재지는 기원 전에 신성한 샘물이 솟아나던 곳이며,

설립 당시에는 ‘동굴 사원’을 뜻하는 ‘아이비랑크’였습니다.

훗날 이름이 <게하르트>로 바뀌었는데

이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찌른로마 병사의 창’을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사람은 결코  어둠속에 다니지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입니다 "

(요8:12) 복음  말씀을 묵상해봅니다.

 

 

동굴교회 의 기도처

아르메니아를 찾는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수도원은 게하르트 수도원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게하르트 수도원이 지닌 위상과 중요성 때문이기도 하고,

가까운 곳에 이교도 신전 ,그리스의 파르테논과 유사한 가르니신전을 함께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멀지 않은 곳에 세계 최대의 주상절리대가 있어서 한꺼번에 세 곳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세바나방크(수도원)

세반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 중 하나로서 아르메니아 고원의 젖줄 역할을 할 뿐아니라,

그 면적이 서울의 두 배나 되어서  가히 육지 속의 바다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르메니아 교회의 기록에 의하면 세바나방크는 874년에 설립되었는데 당시 수도원은

세반 호수에 있는 작은 섬에 건축되었는데, 예치미아진에서 죄를 지은 사제와 수도자들을 위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곳은 규율이 매우 엄격하기로 소문난 수도원이었지요. . 

과거에는 수도원을 구성하는 다양한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현재는 두 곳의 교회,

즉 거룩한 사도들의 교회와 성 아스트밧사친, 즉 성모교회만 남아 있습니다. 

세바나방크의 두 교회는 모양과 구조가 매우 비슷해서 쌍둥이 같은 느낌이 듭니다. 

소비에트 연방시절 스탈린의 명으로 세반호수의 물을 배수하여, 호수의 수위가 약 20m나 낮아지는 바람에

세바나방크가 있던 섬은 육지와 연결되어 현재와 같은 반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세반호수는 아라랏산과 함께 아르메니아의 상징과도 같은 호수지요.

 

세반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 중 하나로서 아르메니아 고원의 젖줄 역할을 할 뿐아니라,

그 면적이 서울의 두 배나 되어서 호수 주위를 한 바퀴 돌려면 거의 하루 종일 달리다시피 해야 한다고 하니

가히 육지 속의 바다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호수에서 잡히는 세반 송어는 이름은 송어지만 사실은 연어과에 속하며, 생선의 왕자라고 불리울만큼

맛과 풍미가 뛰어나다고 하네요.

세반(Sevan)은 세브 Se (검은색) + 반 Van(즉, 반 호수) 

또는 세브 Se (검은색)과 반크 Vank (수도원)의 조합이라고 합니다.

 

세반호의 일몰

 12사도 교회​ (우측)  성모 마리아 교회​(좌측)​

둘다 십자가형 구조에팔각형의 지붕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수도원을 구성하는 다양한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현재는 두 곳의 교회,

즉 거룩한 사도들의 교회와 성 아스트밧사친, 즉 성모교회만 남아 있습니다. 

세바나방크의 두 교회는 모양과 구조가 매우 비슷해서 쌍둥이 같은 느낌이 듭니다. 

성모교회

하그파트 수도원

아르메니아 북동부 에 위치한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수도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며 

수도원은   여러가지 이유로 여러 차례 훼손되었다가 복원하기를 반복했는데

1300년 어간에 있었던 큰 지진으로 수도원의 상당부분이 파괴되어 50년간이나 복구가 지연되기도 했고,

수 백년 동안 몽골제국의 침공과 셀주크 투르크를 비롯한 여러 이슬람 왕조들의 공격을 받아 큰 수난을 당했으며,

가깝게는 1988년에도 큰 지진이 일어나 여러 곳이 손상을 입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수도원은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수도원으로서의 정상적인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그팟트 수도원은 성 십자가라는 이름을 붙인 주 예배당과 아르메니아의 수호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성 그레고리교회( 1005년 완공),  그리고 3세기 왕족의 이름에서 유래한 하마자습교회( 1257 완공),

그리고 성모교회( 13세기)와 필사실, 종탑 등 다양한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도원은 성 십자가라는 이름을 붙인 주 예배당과 아르메니아의 수호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성 그레고리교회

리고 3세기 왕족의 이름에서 유래한 하마자습교회(1257 완공), 그리고 성모교회와 필사실, 종탑.등

다양한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도원에서 정말 아름다운 구조물 중 하나인  3층 구조로 된  종탑

수도원은 가까운 곳에 있는 사나힌 수도원과 함께 비잔틴의 건축양식과 코카서스 및아르메니아의  

전통양식이  잘 조화되었다는 이유로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3세기에 추가로  작은 규모로 예쁘게 지어진 성모교회



 

액자에 담겨진 십자가가 바로 이 교회를 존재하게 한 성 십자가입니다. 

이 수도원의 가장 중요한 보물 ! 화려한 장식을 가진 저 십자가의 중앙부에 예수님이 못박혔던 그 십자가에서

떼어난 조각이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아르메니아 제국의 가장 화려했던 시기와 가장 암울했던 시기를 말없이 견뎌온 성 십자가교회

특별한 부조가 성 십자가 교회 지붕 및 외벽에 장식되어 있습니다.

혹여 지진이나 외부 침략으로 교회가 파괴될지라도 다시 지을 수 있도록 두 수도사가 성 십자가 교회의 모형을 들고 서 있는 장면

 

인천- 알마티- 트빌리시국제공항- 아르메니아국경-하그팟트마을

 

아르메니아 국경통과(입국심사)


수도원 아래 데베 협곡의 웅장한 모습

신의 이름으로 지켜온 땅, 아르메니아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와 중동, 유럽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지만

기독교의 종파인 아르메니아 정교를 믿고 있어,동유럽 문화권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수도 예레반만 해도 중동과 동유럽, 구소련 분위기가 묘하게 섞여 있는 독특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아르메니아의 국교는 아르메니아 정교로, 그리스 정교나 러시아 정교와 비슷하지만 역사가 더 깊습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기원후 40년 예수의 제자 바돌로매와 다대오가 당시 유대(현 이스라엘)

지방을 떠나 이곳까지 와서 복음을 전파했다고 믿고 있으며, 301년 기독교를 공인했습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자부심이 큽니다. 

아르메니아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바돌로매와 다대오가

이 지역에 처음 복음을 전하다 순교를 당한 것으로 전해지는 곳이다.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나라이기도 하다.

AD 301년 아사시드 왕조의 트리다테스 3세 때 성 그레고리의 영향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정했다.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해(313년)보다 12년이나 앞선다.

이란과 터키,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등 이슬람 국가에 둘러싸여 있지만

1700년 넘게 기독교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아르메니아인의 조상은 고멜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경 속 야벳의 큰아들이자

노아의 손자인 고멜의 한 지파가 아르메니아 땅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아르메니아인들은 노아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노아의 방주’가 묻혀 있다는 아라랏산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지금은 터키령에 속해 있지만 사진이나 외부에 공개되는 아라랏산 사진들은

아르메니아 쪽에서 바라본 게 대부분이다.

지금도 수도 예레반 곳곳에는 ‘아라랏’과 ‘노아’ 지명을 딴 각종 상호와 제품들이 즐비하다.

공항에서 내리면 ‘노아의 집(NOAH’S HOME),

아르메니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문구와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아르메니아 종교는 아르메니아정교회로 통칭되는 ‘아르메니아 사도교회’가 97% 정도를 차지한다.

아르메니아 정교회는 과거  부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에서

아르메니아정교회 수장인 카레킨 2세 총대주교가 개막 설교를 맡아 주목받았다.

아르메니아정교회는 대통령제인 아르메니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부는 주요 정책을 입안할 때 정교회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다.

개신교를 포함, 다른 종단 및 종파에 대해서는배타적인 색채가 강하다.

아르메니아 정부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출처] - 국민일보에서 인용함

 

아르메니아의 국가 문장 

아르메니아의 국가문장에서 방패 중앙에 위치한 아라라트산은 아르메니아 민족을 상징한다.

아라라트 산 정상에는 노아의 방주가 그려져 있다.

아라라트 산을 둘러싸며 방패 가장자리에 위치한 4개의 문장은 아르메니아의 4대 왕조를 상징한다.

방패 양 옆의 독수리와 사자는 각각 지혜·긍지·인내·고결을 상징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르메니아 는 

코카서스 3국 중심에 위치한  육지로 둘러싸인 나라다. 

수도 예레반은 우아함과 문화적 풍요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고대 문화부터 현대 포스트모던 건축 양식까지 다양함이 어우러진 곳이다. 

종합 미술 단지 ‘캐스케이드’는 예레반의 대표 명소다. 

또한 아르메니아는 조지아와 함께 와인의 고장이다.

6000여년 전부터 와인을 제조했고.12세기부터는 와인을 증류했다고 알려져 있다.

수도 예레반에선 현재 코냑 약 2000만 리터를 생산하고, 이 중 90%를 수출한다 

 

*아르메니아 출신들이 만든 발명품

MRI(자기공명영상). 컬러 TV . 레미콘 트럭. 휴대 등유 램프. 커피 자판기 . 휴대용 헤어 드라이어.

 

*언어 : 아르메니아어             * 면적 : 297만 4천 ha 

인구 : 277만 8천 명                *수도 : 예레반        * 종교 : 아르메니아 정교

 

*아르메니아  이고저곳

하그팟수도원- 세바나방크- 게그하드수도원- 가르니협곡 신전 - 노라투스 -타테브수도원  -에레반

- 아라랏산 (코비랍수도원)- 에치미아진- 즈바르노츠고대사원-  딜리잔 (하가르친수도원)

 

수도 에레반

하그팟수도원

세바나방크(수도원)

타테브수도원

에치미이진성당

즈바르노츠고대사원

노라투스(고대비석림)

가르니협곡 주상절리

가르니신전

노라방크수도원

딜리잔 하가르친수도원

게그하드수도원

 

아르메니아인의 조상은 고멜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경 속 야벳의 큰아들이자

노아의 손자인 고멜의 한 지파가 아르메니아 땅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아르메니아인들은 노아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노아의 방주’가 묻혀 있다는 아라랏산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지금은 터키령에 속해 있지만 사진이나 외부에 공개되는 아라랏산 사진들은

아르메니아 쪽에서 바라본 게 대부분이다.

아라라트산은 5,137m로 노아의 방주가 도착한 성경 속의 산이며 아르메니아의 성산이다.

산세가 높고 험준하며 정상의 30%가 만년설로 덮여 있다.

그러나 아라라트산은 아르메니아의 성산이지만 구소련 시절 레닌이 터키(튀르키예)에게 줘서

지금은 튀르키예에 속해 있는 산이다.

 

코르비람수도원

 

조지아  역사

유럽과 중앙아시아의 경계인 코카사스 산악지대에 위치해 교통ㆍ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국가다.

이 같은 지리적 특성상 주변국들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을 받았고,

이에 따라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민족 구성을 가진 국가 중에 하나가 되었다.

 

과거 로마제국, 페르시아제국, 오스만 제국(터키) 등 여러 국가의 지배를 받았으며

페르시아와 터키 왕국의 분쟁으로 조지아는 반으로 분단됐다.

분열된 국토 중 일부는 페르시아 제국이 점령했고 러시아와 터키 제국이 각각 점령하였다.

그러나 1870년 러시아가 터키로부터 조지아의 통치권을 완전히 빼앗아 온 후,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는 독립하기 전까지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1918년 5월 26일 독립을 선언했지만 1920년 5월 볼셰비키 붉은 군대에 의해 점령,

1922년 12월 22일 정식으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에 편입되었다.

 

조지아는 독립을 위해 1989년 자치공화국 수립을 주장하며

본래 영토 수복을 요구하는 시위를 일으켜 소련연방에 대항하였고,

수많은 사상자가 나와 소련연방 안에 반대 세력이 증가하였다.

 

그 결과 1989년 11월에는 조지아 최고 법원은 조지아의 법이 소련연방법보다 우선한다고 선언하였고,

1990년 2월에는 ‘조지아는 소비에트 연방에 의해 강제 합병으로 점령당했던 나라였다.

1990년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신생국가 중 하나로,

유럽 대륙과 아시아 경계에 위치해 있다. .

 

 

 

조지아(Georgia)는 북쪽으로 러시아,남쪽으로 터키와 아르메니아.

남동쪽으로 아제르바이잔 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국토의 2/3가 산악지대이며, 면적은 6만 9700㎢ 로 한반도의 1/3에 이른다.

조지아는 ‘고단한 외세의 침입 속에서도 고유의 언어와 문자를 지키고 있는 나라,

세계 최초의 와인 원산지로 꼽히는 나라, 푸쉬킨이 사랑했던 나라,

아름다운 흑해와 코카서스 산맥을 지붕 삼아 건강과 자연을 지키고 사는 나라다.

 

조지아 북쪽은 러시아, 남쪽은 튀르키예 아르메니아, 남동쪽은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1936년 소비에트 연방을 구성하던 공화국의 하나인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이루다가

 1991년 4월 9일 독립하였다.

또한 현재 조지아 영역 안에는 친러 성향으로 조지아에서 독립하려고 하는 

압하스 남오세티야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 지역들은 러시아에서 독립을 승인받았을 뿐

대다수 국가로부터 독립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 서기장으로 약 30년간 국가 원수였던 스탈린이 조지아 출신이다.

 

인구 : 373만 명                                                    면적: 69,700km2 (한반도의 30%)

종교: 조지아 정교:                                               수도: 트빌리시 (Tbilisi) (인구 116만 명)

조지아의 이곳저곳

트리비시. 무츠헤타. 구다우리 .카즈베기 .우플리치케 .구타이시. 메스티아.코롤디호수 .시그나기

카헤티. 아나누리. 바르지아동굴.게르게티수도원 .우쉬구리. 보르조미. 아할치에 (라바티성채) 

 

수도트빌리시

사메바성당

트빌리시야경



 

쿠타이시 게라티수도원

무츠헤타 즈바리수도원

구다우리전망대

우플스치케고대동굴마을

 

우쉬구리(슈카라라산)

스반족의 상징 스바네티(코시키)

메스티아

바르지아고대동굴수도원

마르티빌협곡

 

​아나누리성채

 

​북코카사스산맥

카즈베기  게르게티 삼위일체성당

인간에 불을전한 프로메티우스상(보르조미)

다비드 가레자 동굴수도원

아할치에(라베티성채)

 

 

 

 

 

 



카사스3국사진여행

신화의 나라,신의 나라라 불리는조지아와 아르메니아는 고대로부터 신비한 신화와 성스러운 지역으로 널리 알려진 지역으로 수려한 자연과 역사적인 유적들이 가득한아름다운 코카서스의 나라들입니다.

노아의 방주로 알려진 아라랫산을배경으로,또는 단풍과 어우러진 설산과 호숫가

그림처럼 위치한 수도원이나 마을,그리고 그속에서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코카사스 사진촬영여행을 아름다운 가을철에 

14일간 (10.4- 10.17) 다녀왔습니다

 

유럽인듯 아닌듯 조금 특별한 코카서스 3국 



 

여행 코스

*조지아

트리비시- 무츠헤타- 구다우리 -카즈베기 - 우플리치케 -구타이시-  메스티아 -코롤디호수 -시그나기

-카헤티- 아나누리- 바르지아동굴- 게르게티수도원 -우쉬구리- 보르조미- 아할치에 (라바티성채) 

 

 

 

 

*아르메니아

하그팟수도원- 세바나방크- 게그하드수도원- 가르니협곡 신전 - 노라투스 -타테브수도원  -에레반

- 아라랏산 (코비랍수도원)- 에치미아진- 즈바르노츠고대사원-  딜리잔 (하가르친수도원)

아제르바잔:

바쿠 -.쉬르반사 궁전-. 올드시티(아췌리쉐나르).- 볼바르공원-

고부스탄암각화박물관.- 쉐기의칸궁전. 

 

*카자흐스탄(알마티)      -천산산맥 . 침불락 .재래시장.

성지순례 여행 

아르메니아 (301) 조지아(334) 세계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받아들인

나라로 로마(380)보다 앞선 나라로  뜻깊은 성순례였습니다

예수님의 성의(聖衣)와 십자가가 보관된 조지아의 성당

예수님의옆구리를 찌른창(롱기누스의창) 보관된 아르메니아 성당과

노아의방주가 대홍수이후 멈춤곳인 아라랏산(5137m) 등 성당과 수도원을 방문으로

성지순례같은 사진여행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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