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사진촬영대회 이모저모 (개천예술제)

 

 

 

 

 

 

 

 

 

 

 

 

 

 

 

 

 

 

 

 

 

 

 

 

 

 

 

 

 

 

 

 

 

 

 

 

 

 

  

 

  

 

 

 

 

 

 

 

 

 

 

 

 

섬진강 광양 매화축제 이모저모

 

 

 

 

구례방향으로는 차량정체로 진입이불가하여 섬진강 건너 하동쪽에서 부교(浮橋)로 입장

 

구례방향으로는 진입이 불가할정도로 차량정체,주차장도만차.하동쪽에서 부교로 .....

 

 

 

 

홍쌍리 매실가(家)

 

섬진강 매화마을의 대표농원은 "청매실농원"이다

이농원은 농부집 머슴의 손 모양을 한 홍쌍리씨가 매화밭 12만평의

청매실농원을 시아버지(김오천옹)와 함께 이루었다.

 

"꽃이 예뻐서 " 몰래 밤마다 밤나무를 뽑아내고 심었다는 그 매화가

오늘의홍쌍리와 매화마을이 있게했다

 

인간의 승리다 곱디곱은 섬섬옥수를 바쳐 청록색의 청매화와

붉디붉은 홍매화가 장관을 이룬다

 

그녀는 "농부도 예술을 할수있는사람 " "땅속에 진리가 살아

숨쉰다" 는 격언을 현실로 승화시킨 위대한 한국의 여인상이다

 

풀한포기 , 꽃한포기, 나무한그루.돌맹이 하나가 정성을 드리고

혼을 다한 사랑을 베풀면 예술이 되고 돈이되고 문화가되는것을 ....

 

매실은 피를 맑게하고 몸의기운을 정화하는 음식이니 1석 3조가 아닌가.....

 

 

 

축제장은 인산인해 화장실도 줄을서서....

매실농원에서 내려다본 섬진강은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고

에술이 있고 민초들의 사랑과 분노와 울분이있다

 

 

 

 

 

 

촬영대회 연출자들 표정도 정겹고...

 

 

 

 

봄의 전령사 구례군 산동면 산수유꽃

섬진강을 사이에두고 하동과 광양 산아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매화꽃 하얀눈속에서노랗게 피어나는

전남 구례군 산동면 산수유꽃을 비롯한 꽃잔지가 벌어진다

 

 

 

꽃 망울들이 팝콘 처럼 터트려

온 세상을 덮고 있는 산수유 마을...

그속에 있는 내 얼굴도 노랗게 물들어 버릴것 같네요....

 

 

 

간이화장실도 운치있게...

 

 

저도(猪島) 이야기

 

*위 치: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 산 88-1 번지  ( 약 13만 평)

*용도: 대통령 별장 (청해대)

 

*1920 년 일본 통신소 및 탄약고로 사용

*1950 년 주한연합군 탄약고로 사용됨

*1954 년 해군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휴양지로 활용

*1972 년 대통령 별장(청해대)로 공식지정

*1975 년 행정구역이 거제군에서 진해시로 편입됨

*1993  11 .19. 대통령영 제14006호에 의거 진해시에서 거제시로

환원조치하였으나  

 

* 현재까지 국방부소유, 국유지로 해군통제부가 관리하며 주민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아름다운섬  저도 (猪島)

 

(펴옴)

 

저도는

거제도 북단에서 1㎞ 정도 떨어져 있으며,

 섬 전체가 해송·동백나무·팽나무 등 울창한 수림으로 뒤덮여 있다.

해안에는 202m의 인공 백사장이 있고,

1973년 완공되어 박정희 전(前) 대통령 별장으로 사용되던 청해대(靑海臺)

본관이 있다.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전망좋은 콘도

부산광역시와 거제도를 연결하는 총길이 8.2㎞의 거가대교가 2010년에 개통되었다

제1 전망대

 

 

제2 전망대

 

 

      역사속의 저도

   예부터 저도라는 이름을 가진 섬은

함경남도 영흥군, 강원도 통천군, 황해도 은율군, 마산 돝섬, 그리고 거제를

포함해 총 5개 지역에서 같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황해도 은율군의 저도는 목장이었고,

함남 영흥군의 저도는 유명한 굴 생산 어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 거제 장목면 유호리에 속해 있는 저도는 어떤 곳일까.

한자말 그대로 저도는 돼지()들을 집단으로 방목했던 곳일까.

  하지만 이 섬은 이름과 달리 조선시대부터 염소들을 방목했던 곳은 아닐까...

  『조선왕조실록성종실록을 보면 저도에 염소를 방목한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냄새가 나는 건물.

 

일제는 저도 중앙 지점에 신호소를 설치했다.

1912년에는 전등기관실을 만들어 전등을 설치하였고,

1917년에는 포대관측소 2곳을 설치했고

1920 8월에 포대 2곳을 설치하였다

이 섬에는 제2 감수위사(監守衛舍)와 감시위병소를 각각 설치하였는데,

전체면적 70평에 위에 관사 15평으로 각각 2동을 건축하였으며,

별도의 화약고도 신축하였다.

   두 건물은 목조구조물로 주변에 별도의 정원도 만들었다.

 

 

과거 일제때  사용했던 우물같은데...

 해수욕장

 

 

 

 

     저도의 전설

     저도란 지명이 생긴 전설은 옛날에는 저도를 학섬(鶴島)이라 했는데

 태초에 태평양 바다쪽에서 큰 구렁이가 개구리를 잡아먹기 위해서

 쫒아오고 있었다.

마친 이를 본 학섬이 돼지로 변하여 구렁이를 물어 죽었다.

그 구렁이가 죽어서 사근도(蛇筋島)가되고  개구리도  지쳐서 죽어

망와도(亡蛙島)도가 되었다고 한다.

학섬은 그 후 부터 돝()섬이라 하여 저도(猪島)라  하였다

2전망대앞 해골바위

 

 

 

 

 

대통령 별장으로 그리고 지금은

 

해방 이후 저도는 대통령의 별장으로 변모한다.

저도는 일본군 포대와 막사 등을 개축하여 청해대(靑海臺)를 신축하였다.

이곳은 1954년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휴양지로 활용된 이후

1972년 대통령 별장으로 공식 지정됐으나,

1993년 대통령 별장에서 해제돼 현재는 국방부가 소유, 관리하고 있다.

 

 

이하 (펴옴)

 

이 섬 안에는 2만여 평의 전답이 있고 물이 좋아 50여 가구가 살던 곳이었다

 한일합방 후 일본사람들이 해군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탄약고와 대공포 진지로 사용하였다.

태평양전쟁 때에느 발발하자 군사기지를 가덕도 청송으로 옮겨갔고

    일본군 상사가 지키고 있었으나  해방이 되자

    지역주민  하유 송씨 형제가 관리하다가 1972년 대통령 별장으로 공식지정되었다

 

 

 

특히 박정희대통령은 이곳을 좋아해서

일 년에 3-4번은 찾았으며,큰딸 근혜와 지만군과 장모 등이 와서

보통 10-15일정도 머물다가 가곤했다고 한다

 

 

 

 

 

바닷가의 저도 모습. 산책로를 약간 벗어난 해안 절벽 .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는 산책 길

 

 

 

저도 남쪽 끝단. 거제도로 들어가는 거가대교가 저도 일부를 관통한다

 

철책선. 언젠가 이것이 없어지고 모든 사람들이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을

때가 오려나....

 

저도, 자유롭게 볼 수 없을까

 

예부터 저도 주변의 바다는 매우 깊고 다양한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다.

그래서 저도어장은 조선시대부터 명례궁에서 관리하던 어장 중 하나로 꼽혔다.

 또한 시대에 따라 달라진 섬의 역사적 가치를 볼 때 매우 중요하였다.

현재 국방부 소유로 넘어가 군인들의 휴양지로 활용되고 있다고 하니,

역사적으로 군사지역인가 싶다.

그러나 모든 국민들이 자유롭게 역사 답사지로 개방되고 후손들에게 물려준다면 더 큰 의미를 지니지 않을까.

혹여나 자치단체에서 저도를 놓고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면 훼손될 가능성이

높으니,차라리 그대로 두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탁 트인 거가대교. 저 끝에서 해저터널로 진입

 

 

 

  

 

귀가함상에서

 

 

 군함 승무원실 에서

 

 

 

 

 

    

 

 러시아와 일본이 탐낸 저도

근대에 들어와 저도는 군사적 요충지로 급부상하게 된다.

러시아와 일본은 거제도와 마산을 놓고 전쟁을 불사할 정도로 집착하고 있었다.

 1893년 이후 러시아는 거제도를 비롯한 주변 섬들을 정찰하고 군사시설 지역을

선택하고자 율구미(마산의 남쪽지역)를 조차지로 선택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러시아의 율구미 조차을 하지 못하도록 한국정부를 압박하여 성공하였다.

그 이후 1904 9 4일 일제는 저도와 가조도를 군용지로 삼겠다고

한국정부에 요구하기에 이른다.

일제의 기밀자료를 보면, 1905 1 17일 마산소재 일본영사는 육군대신에게

군함선박용 석탄적취장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하였다.

 

 1905 3 30일 일제는 저도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을 강제로 퇴거명령을

내리는 공문을 하달하고 즉시 실행에 옮긴다고 한국정부에 통보하였다.

 

이어서 일제는 저도 중앙 지점에 신호소를 설치했다.

또한 1912년에는 전등기관실을 만들어 전등을 설치하였고,

1917년에는 포대관측소 2곳을 설치했다.

 1920 8월에 포대 2곳을 설치하기에 이른다.

이 섬에는 제2 감수위사(監守衛舍)와 감시위병소를 각각 설치하였는데,

전체면적 70평에 위에 관사 15평으로 각각 2동을 건축하였으며,

별도의 화약고도 신축하였다.

 

두 건물은 목조구조물로 주변에 별도의 정원도 만들었다.

 1923년에는 계선장(부두)을 만들어 지금의 모습으로 갖추었다.

1937년 중일 전쟁 이후 가덕도와 거제도 등지는 최후 방어선을 구축하고자

새롭게 포대와 진지(陣地)를 신축하였다.

이에 저도는 전신망과 전등 시설 등을 교체하였다.

그러다가 해방을 맞았다.

 

골프장에서 이모저모

 

 

일명 '바다의 청와대'로 불리는 청해대는

연면적 170여평인 본관 건물을 중심으로 섬 주변에는 8개 동의 수행원 및 경호원 숙소,

팔각정과 산책로, 전망대, 자가발전소 등이 있고,     

주변에 9홀 규모의 골프장, 전망대, 대한민국 지도와

태극 문양을 본뜬 연못 등이 있다.

 연못은 일제 때 만들었던 것을 개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까이서 본 거가대교

 

 

 

 

 

 

 

 

 

 

 

예부터 저도 주변의 바다는 매우 깊고 다양한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다.

그래서 저도어장은 조선시대부터 명례궁에서 관리하던 어장 중 하나로 꼽혔다.

또한 시대에 따라 달라진 섬의 역사적 가치를 볼 때 매우 중요하였다.

현재 국방부 소유로 넘어가 군인들의 휴양지로 활용되고 있다고 하니,

역사적으로 군사지역인가 싶다.

.

 

 

 

 ..  

17년전하계 휴가를 이곳에서 5일간,,,,

17년전(97.7.31) 그때는  물반 고기반....

 

 

 

사일회 참석자들

 

 

 

 

2013년도 연합회 워크샵 참석(펴옴)

 최호철 전수석부회장의 애교 만점 ..

 

 

 

 

2013년도 워크샵행사후(펴옴)

워크샵을 마치고 기념촬영

(펴옴)

 


박정희 대통령 사랑의 편지 

 

저도 바닷가에 혼자 앉아서

―1976년 8월 5일-

똑딱배가 팔월의 바다를
미끄러듯 소리내며 지나간다
저멀리 수평선에 휜구름이 뭉개뭉개
불현 듯 미소짓는 그의 얼굴이
저 구름속에서 완연하게 떠오른다

나는 그곳으로 달려간다
그이가 있는 곳에는 미치지 못한다
순간 그의 모습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뛰어가던 걸음을 멈추고
망연이 수평선을 바라본다
수평선 위에는 또다시 일군의
꽃구름이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흰 치마저고리 옷고름 나부끼면서
그의 모습은 저 구름속으로 사라져 간다
느티나무 가지에서 매미소리 요란하다
푸른 바다 위에 갈매기 몇 마리가
훨훨 저건너 섬쪽으로 날아간다

비몽(比夢)? 사몽(似夢)?
수백년 묵은 팽나무 그늘 아래
시원한 바닷바람이 소리없이 스쳐간다
흰 치마저고리 나부끼면서
구름속으로 사라져 간 그대




 

 

 

참고자료:

 거제도 이야기 100 (거제문화원)> , 환상의 섬 거제도(이승철),

 거제지명총람(거제문화원), 환상의 섬 거제(홈피) ,거제시지, 장목면지, 거제군지

 

바위와 돌조각의  사찰  서암정사

 

 

지리산 자락의 칠선계곡을 타고 오르다 보면 천년고찰이 하나 있다.

과거 빨치산의 야전병원이기도 하였든곳  벽송사.

그 벽송사와 같이 주차장을 쓰면서 만나는 서암정사  

 역사는 길지 않으나  그 생김에 불심이 독특하기만 하다.

1960년대 초 원응스님이 벽계사(지금의 벽송사)에서

서암의 주지스님으로 오면서 6.25때 지리산에서 죽어간 무고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남북의 화합과 통일을 기원하기 위해서 원력불사를 일으킨 또하나의 사찰이다.

 

스님이 금빛으로 원을 그리면 그 원에 따라 10여년 동안 돌굴법당안에 부처와 불보살..

 그리고 권속들을 석공이 한뜸함뜸 자수하듯 곱게도 조각하였다.

석공 홍덕희..

33세의 나이로 1991년에 서암에 들어와 10년 이상을 볕한번 제대로 보질 못하고 굴법당 조각에

전념하다가 44세가 된 2002년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빛을 볼 수 있었다 한다.

그 불심과 정성을 그 무엇에 비하겠는가?..

정녕.. 종교의 힘은 어느정도인지..어디까지인지..

아마도 믿음의 힘이라 하겠다.

 

 

 

 

 

 

 

 

 

 

 

 

서암가는길에 제일 먼저 만나는것은 일주문 격인 두 돌기둥..

 

 

시찰의  전체가 바위와 돌로 이루어진 국내에 유일의 석조사찰이다. 

 

 벽면에 조각되어진 사천왕상의 위용있는 모습

 

 

 

 

 부처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대방광문

 

  

극락전..법당안의 출입하는 스님들의  문이다 

서암의 주지인 원응스님이  약11년에 걸쳐 완성한 587.671자의 화엄경 금자사경이 있다.

 

 

 

 

 

 

 

일반 객들이 들고날수 있는 안양문

안양문을 열고 들어가면 제일 먼저 스님상이 합장으로 객을 맞이한다

바닥을제외한 사방에 천장까지 온통 불상과 석불이다.

 

 

 

 

 

 

 

중앙에 미타삼존불, 좌로 관세음보살과 우로 대세지보살이 조각되어 있고,

8대보살과 10대제자.그리고 나한과 사천왕등의 수많은 부처들의 눈길은

이곳에 들어와 있는 이에게 쏟아진다.

 

 

 

 

서암정사의 주불을 모시고 있는 비로전..

 

 

 

 

 

 

 

 

 

 

 

 

 

 

 

 

 

 

 

 

 

 

좌 안동, 우 함양의 개평 한옥마을

 

예로부터 영남의 영남의 양반고을로 좌 안동, 우 함양을 로 좌 안동, 우 함양을 꼽습니다.

이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안동은 곧 하회마을이요,

함양은 바로 이 개평마을을 일컫는 것입니다

고색창연한 한옥 지붕의 물매가 맵시 좋은 사뿐히 들린 파도의 향연을 볼 수 있는 곳도

바로 여기 함양군 지곡면의 개평마을입니다.

 

국가지정 문화재로 등록된 일두고택은 고건축에 관심있는 분들의 필수 코스이고

조선 오현의 한분이자 성리학의 대가인 일두 정여창 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한데요.

한때 우나라 바둑계의 전설이었던 노근영 선생의 생가도 이곳에 있지요.

하동 정씨와 풍천 노씨의 대종가가 있는 집성촌인 곳도 이곳인데,

근세에도 이 작은 마을에서 100명이 넘는 대학교수가 배출되었다니

그 자부심이 여간하지 않을 듯 싶습니다.

 

'좌안동 우함양' 이라 불릴정도로 많은 유학자를 배출한 영남지역의 대표적인 선비마을입니다

 

산높고 물 맑은 선비의 고장 함양 지곡면 개평마을은

     2007년 2월 안전행정부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시범마을로 선정되었으며            

  중요민속자료 제186호인일두 정여창 고택을 비롯한 100여채의 한옥이 잘 보존되어 있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정여창고택을 비롯 100년이 넘는 크고 작은 고택 60여채가 모여있다 합니다

 

 개평한옥마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일두고택 가는 길

  고택 골목길

일두고택의 대문

솟을대문 위에 걸린 다섯개의 붉은 정려패가 가문의 내력을 격조 있게 드러냅니다

 

 대표적인 고택으로 많은 드라마 촬영지이기도...

 

 

 

 

   

 

  

 

 

    

 

안쪽에는 등나무가 휘감아 올라간 굴뚝이 눈길을 끕니다.

이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동거인이 된 굴뚝과 등나무의 백년해로를...

 

 

옆의 한옥 체험시설과 문을 터 놓았네요.

언제 보아도 오래 보아도 우리네 돌담은 정감이 넘칩니다.

우리의 오래된 전통과 문화이기 때문이겠지요

 

     

 

 

 

 

 

 

 

 

 

  

 

 

 

 

 

 하동 정씨, 풍천 노씨 집성촌으로 양반의 가풍을 이어온 마을입니다.

          수백년된 전통한옥이 잘보전 되어있어 한옥박물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남계서원과 청계서원

 

개평마을에서 불과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일두 정여창 선생을 모신 남계서원과

탁영 김일손 선생 위패를 모신 청계서원이 100m 사이를 두고 자리합니다.

서원이란 선현을 모시는 제향의 기능과 지역민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사설교육기관입니다.

향교가 국립학교라면 서원은 사립이지요

 

 

 

남계서원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년)에 창건되었으며

1566년(명종 21년)에 '남계(灆溪)'라는 이름으로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남계'는 서원 곁에 흐르는 시내 이름이며,

정여창을 모신 서원은 전국적으로 9곳에 이르며,

그중 주된 곳이 남계서원입니다. 

남계서원은 풍기 소수서원, 해주 문헌서원에 이어 창건된 아주 오래된 서원으로,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서원으로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도

전국 대부분의 서원이 훼철된 상태에서도 살아남은 49개의 서원 중 하나입니다

 

 

 

 

 

 

 

남계서원의 정문인 풍영루 의 위엄이 남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서원으로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도

전국 대부분의 서원이 훼철된 상태에서도 살아남은 49개의 서원 중 하나입니다

 

 

 

이 곳에서 수많은 학자와 인사들이 배출되었겠지요.

바로 좌 안동, 우 함양의 산실입니다

 

 

 

 

 

 

 

 

 

 

 

제향 구역으로 올라가는 길

선비나무로 일컬어지는 배롱나무가 기품있게 자라나 문을 호위합니다

 

 

 

 

일두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

 

 

 

 

 

청계서원

 

 

성종 때 사림파를 대표하는 학자로 연산군 시절 무오사화에 희생된 탁영 김일손 선생의

위패를 모신 청계서원입니다

 

 

 

 

 

 

 

 

 

 

 

 

강원도 삼척 .대금굴(大金窟)의 신비

 

 

 

 

대금굴 모노레일 선로가 덕항산 중턱까지 연결되어 있다.

 

 

모노레일을 타고 470m 를 올라가고 동굴 속으로 140m 를 더 들어간다.

  

 

 

 

 

 

 

대금굴은 환선굴과 비슷한 시기에 형성된 석회동굴로 동굴내부에 흐르는

수량이 풍부함에 따라 대규모 폭포와 기이한 석순이 현재도 자라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모노레일을 이용하여 동굴내무 140m 지점 까지 들어가 관람할수있는 동굴이다.

 

대금굴 안에서는 플래쉬가 동굴에 안좋은 영향을 주기때문에 사진촬영이 금지라고 한다

 

대금굴은 흐르는 물을 기준으로 이동하게 되어 있었서 끝임없이 물소리와 폭포를 만납니다

 

 

대금굴 관람 중 물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로 우기시 높이 2m 까지 뜰수 있도록 용소부잔교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용소지역

대금굴속에는 큰 호수가 있습니다.

물 깊이는 최고 9m이고 평균 깊이가 7m라고 해요.상당히 깊습니다.

물고기 같은 생명체는 살지 않고요.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생명이 살 수 없다고 합니다.

 

마시지 못하고 물고기도 살지 못하는 동굴수 이지만 너무나 맑고 깨끗하다.

천지연의 아래로 밧줄이 연결되어 탐사때 쓰인다고.

 비룡폭포

대금굴의 내에 형성된 폭포로 8m 높이를 자랑하고 있으며 동굴내에 형성되어 있어

겨울철에도 얼지 않는 폭포이다.

 

천지연

대금굴을 관람하면서 종점 부분에 이르면 천지연이 있습니다.

백두산 천지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천지연에서 돌어서서 위쪽을 보면 부처님 한분이 불공을 드리는 모습의 석순이 있습니다.

 

왜 대금굴 ( 大金窟 ) 이라고 이름붙였을까?

동굴속으로 들어가면 그 이유를 알듯 하다. 동굴 바위와 생성물은 흡사 금빛 바위를 닮았기 때문.

 

 

 

대금굴에서 쏟아지는 물의 양이 많습니다.

비 많이 올 때는 동굴 안에 물이 꽉 찬다고 합니다.

동굴을 지나다보면 호수위에 물에 둥둥 뜨게 만든 다리가 있습니다.

용소부잔교고 하는데 물의 양에 따라 2m까지 뜨도록 설계 됐다고 해요.

 

 

 

휴석소

대금굴 내 물이 흐르는 바닥위에 작은 호수를 형성하게 되고 방해석의 침전으로 만들어짐

이곳은 대금굴의 다랭이 논이라고도 불러보련다

환선굴에 만마지기 논두렁이 계단식 논을 연상케 한다면

이곳 대금굴의 휴석소도 다랭이 논을 연상케 한다.

 

 

 

 

 

  

 

 

 

막대형 석순

만물상 광장에 위치해 있으며 지름이 5cm이고 높이가 3.5cm로 국내 최대의 크기를 자랑한다

 

 

 

 

 

 

종유석 /석순.

천정으로 부터 흘러내리는 종유석과 천정으로 부터 떨어지는 물에 의해

성장하는 석순을 말한다.

 

 

 

모래시계광장

위에서 내려오며 자라는 종유석과 아래에서 올라가며 자라는 석순이 마주고보 있어

모래시계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대금굴은 아기자기하고 여성스러워서 여자굴이라 하구요.

환선굴은 선이 굵고 남성럽다하여 남자굴이라 합니다.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자란 곡석

석순이란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속에 있던 석회질 물질이 동굴바닥에

 쌓이면서 위로 자란 것을 말한다.

 

 

 

 

 

 

 

 

 

생명의 문

여성의 외음부를 똑 닮은 석순입니다.

이 문을 통해 새 생명이 태어나기 때문에 생명의 문이라는 이름을 붙였구요.

그 바로 아래쪽을 보면

 

 

남성의 성기와 같은 모양의 남성심벌형석순이 있습니다. 이건 잘 봐야 보입니다.

생명의 문운 입체적이고 커서 쉽게 찾아지는데

남성심벌형은 그림처럼 무늬만 보이고 크기도 작기때문입니다.

 

 

 

 

 

 

 

 

한방울 한방울 한방울...이 수억년 세월동안 

 

  커 튼

 암석의 갈라진 틈새를 따라 흘러내리면서 띠 모양으로 넓게 형성하는 종유석이다 

 

 한방울의 물이 떨어지면서 만들어낸 석순

  

 

동굴내 신비한 형상들

 

 

 

 

 

 남자의 심볼인데...

 

 

 

 

 

 

에그프라이형 석순

 

 

동굴내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홍보용 동영상화면을 켑쳐한것과

과거 금지하기전 촬영된 사진을 스크렙한 사진입니다

(유럽,중국등,타지역동굴은 촬영이 허가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하루 720명의 탐방객들에게만 공개된다고 합니다

 탐방을 제한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동굴의 생성을 방해 한다고 합니다.

동굴을 탐방해 보신분들이라면 둥굴벽이나 종유석들이 새카맣게 변한것을 보신적인 있을겁니다.

바로 이것이 이산화탄소로 인하여 검게 변한것이라고 합니다.

대금굴을 하루 720명만 제한적으로 수용하는 이유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라고 합니다.

 

 

 

 

외국을 포함 여러곳의  동굴을 봤었는데

대금굴은 정말 신비감이 가득하고

관람 내내 들리는 폭포수 소리가 정말 좋았던 곳입니다

강원도 삼척 .대금동굴 탐방

 

위  치 : 강원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189
예  약 :  033-541-7600
   (samcheok.mainticket.co.kr)

 

 
 대금굴은

 길이가 1610m(주굴 730m, 지굴 880m)로 큰 규모는 아니다. 하지만 순도 높은 석회동굴로 지하공간이 넓고 다양한 동굴생성물을 보유하고 있어 가치가 높다. 특히 여느 동굴처럼 구경하는 동안 고개를 숙일 필요도 없어 관람이 한결 수월하다.

게다가 수로의 폭도 좁아 동굴 벽면의 종유석을 지척에서 볼 수 있어 감동도 생생하다. 동굴에 들어서면 우선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다 무서울정도로 대금굴은 수량도 풍부하다. 지난 장마땐 불어난 물 때문에 며칠간 동굴 관람이 중단 되었다는 안내의 말이다. 흘러나온 동굴수는 크고 작은 폭포를 이루며 청정 물골계곡을 이룬다.

 

이곳에서는 개인행동을 할 수 없고, 전문해설사의 안내와 함께 단체로 이동한다.

 

대금굴의 압권은 '만물상 광장'으로 이름 지어진 종유석 지역.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자란 곡석,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만든 동굴진주, 뚱딴지형으로 자란 기형 석순, 계란 프라이를 올려놓은 모양의 에그프라이형 석순 등 기이한 형태의 동굴생성물이 시선을 압도한다.

 

 

 
 석순이란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속에 있던 석회질 물질이 동굴바닥에

 쌓이면서 위로 자란 것을 말한다.

 

종유석과 마찬가지로 1cm가 자라는데 100년이 걸리기 때문에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석회암과 물이 만나 억겁의 세월동안 빚어낸 신비의 지하세계는 가히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느림의 미학이 담겨 있는 동굴로의 여행은 수억년의

신비를 가슴 깊이 느낄수 있고 황금빛 동굴이 그저 놀라웠다

 

 

 

 

 

 

 

 

5억 3천만 년의 신비를 간직한 대금굴에서는

백두산 천지를 닮은 천지연, 비가오면 높이 2m까지 뜰수 있도록 설치된 용소부잔교 ,

높이 8m의 비룡폭포등을 감상할수있다.

 

 

 

 

 

 

 

 

 

에그후라이 석순, 곡석, 종유석, 동굴진주, 호수, 동굴생성물 등이

 감탄을 자아내고 , 덕향산 절경과 주변의 생태공원,

전나무숲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전나무 숲길

 

 

 

 

 

 

 

대금굴은 모노레일 승차장에서 동굴 입구까지(610m) 모노레일을 타고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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