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발리 호숫가의 아나누리성채

진발리 호숫가에 세워진 아나누리 성은  트빌리시에서 약 72 km에있는  성체이다

이 성채는1200년에서 1249년 사이에 지어진 <조지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이라고 합니다.

성채는 두 개의 성과 하나의 교회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건물 전체를 성벽이 에워싸고 있는 형태입니다.

바깥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7개망루까지 있는, 방어를 염두에 둔 사실상의 요새입니니다.

 2007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프로그램에 포함되기 위한 잠정 목록에 올랐습니다.

옛날에 성이 적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비밀 터널이 물로 이어져서 성으로 피신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물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어서 적에게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적군들이<누리 Nuri>출신의 <아나 Ana>라는 여자를 붙잡아 고문해 터널의 위치를 ​​알려고 했으나,

그 녀는 끝까지 비밀을 밝히지 않고 희생하여 많은 이들의 생명을 살렸다고 하여 그 후 이성은

그녀를 기리기 위해 '그녀의 이름을 따서 <Ananuri> 라고 불렸고 그녀는 영원한 전설이되었습니다.

 

진발리호수 는 소련 시절에 아그라비강을 막아 수력발전을 위해 건설한 인공 댐입니다.

진발리호수 는 소련 시절에 아그라비강을 막아 수력발전을 위해 건설한 인공 댐입니다.

아나누리성은 입구에서 만나는 교회의 이름은 성모 승천 교회입니다.

17세기 후반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하는 석조 건물의 성당이다.

 

아나누리 성모승교회

성모 승천 교회 앞에 있는 성물파는곳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성당 (성 삼위일체성당)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깃든  조지아의 북쪽, 러시아 국경 인근에 위치한 카즈베기는

조지아인들이 정신적 고향으로, 코카서스 산맥의 미봉 중 하나인 카즈베기 산과 산 중턱 2,178m에 자리한

아름다운 교회인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가 있어  조지아 최고의 여행지로 꼽히는 곳입니다.

그리스 신화 시지프스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웅대한 카즈베기 산을 배경으로

게르게티 마을을  내려다보며 우뚝 서 있는 츠민다 사메바교회! 

 

조지아를 찾는 수많은 여행자들은 대부분 관광책자에 소개된 이 교회의 사진을 보고 조지아 여행을

결심한다고 할만큼  여행자들을 압도하는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지아어로 츠민다 사메바는 성 삼위일체를 의미합니다.

이 교회는 14세기에 건축되었는데요, 옆에 있는 종탑 역시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교회는 해발 2,170미터의 가파른 봉우리에 세워져 있어 스테판츠민다 계곡의 어디서든지

그 장엄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나라에서 크고 작은 전쟁들이 벌어질 때마다 트빌리시나 므츠헤타의 주요 교회 보물들을

산속 깊이 자리한 이곳 교회에 옮겨 보존한 곳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의 천막과 그리스도의 구유를 비롯한 많은 신성한 유물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조지지아인들의 정신적인 고향으로 신성시하는 이곳 츠민다 사메바성당은 

불치병 환자들이 이곳 성당를 찾아와 미사를 드리고 치유의 기적을 얻은 신성한 성당이지만

소비에트 시절에는  전쟁 무기고로 사용된 아픔의 역사도 간직하고 있는 성당이다.

​13세기 타마르 여왕 시절, 해발 2,178m 지점에 건립된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는 교회 건립 후

타마르 여왕이 이곳 교회에 방문해 미사에 참여하고 정책안을 구상, 각료들과 논의했다고 한다.

또한 나라에서 크고 작은 전쟁들이 벌어질 때마다 트빌리시나 므츠헤타의 주요 교회 보물들을

산속 깊이 자리한 이곳 교회에 옮겨 보존하였다.

<삼위일체 교회>로 가는 길이 험해서 버스에서 내려 4륜구동 차량으로 갈아타고 올라갑니다

 

 

카즈베기 - 게르게티 마을 츠민다 사메바성당

그리스 신화 시지프스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웅대한 카즈베기 산을 배경으로 게르게티 마을을 내려다보며

우뚝 서 있는 츠민다 사메바교회. 조지아를 찾는 수많은 여행자들은 대부분 관광책자에 소개된

이 교회의 사진을 보고 조지아 여행을 결심한다고 할만큼 여행자들을 압도하는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지아어로 '얼음산'인 카즈베기 산 아래에 있는   '게르게티 성 삼위일체성당'

조지지아인들의 정신적인 고향으로 신성시하는 이곳 츠민다 사메바성당은 

불치병 환자들이 이곳 성당를 찾아와 미사를 드리고 치유의 기적을 얻은 신성한 성당이지만

소비에트 시절에는  전쟁 무기고로 사용된 아픔의 역사도 간직하고 있는 성당이다.

 

<조지아는 성당이나 수도원 입구에 관광객을 위한 치마나 스카프가 마련 되어 있는 곳이 많습니다.

또 성당 내부에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 대천사 미카엘과가브리엘이 황금빛 바탕에 그려진

천장의 모자이크가 유명합니다.

이 성당도 입장하려면  ​머리에는 스카프를 쓰고,  허리에는 입구에 준비된 스커트를 둘러 입고 입장해야 합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겔리티수도원

겔라티 수도원은 조지아 서부  쿠타이시 근교에 있는 수도원 단지이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 곳에는 성모 마리아 성당과 성 게오르게와 성 니콜라스의 13세기의 교회들이 모여 있다

겔라티수도원의 교회들은 조지아정교회의 건축양식을 대표하고 있으며 이런 조지아정교회 건축양식은

비잔틴양식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훗날 비잔틴제국과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 돔 형식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쿠다이시가 조지아의 수도였던 시기에 1106년부터 다비트 4세 가 <부속 왕립학교>와 함께

수도원을세웠고, 14세기까지 교육기관으로서 당시 최고의 학자들이 학생들을 지도하였습니다.

수도원에서 중심 건물은 12세기에 세운 <성모마리아성당>, 동쪽으로 13세기에 지은 <성게오르기우스성당>,

서쪽으로 2층 건물인 <성니콜라우스성당>이, 수도원 서쪽 끝에는 <부속왕립학교>가 외벽만 남아 있습니다.


겔라티 수도원은 오랜 시간 조지아의 문화와 지성의 주요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 곳에는 가장 유명한 조지아인 과학자들과 신학자들, 철학자들이 교수로 있는 아카데미가 있으며,

많은 교수들이 이전에 국외 정교회의 여러 수도원들과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민간 아카데미에서

활동해 왔습니다. 

 

겔라티 수도원은 A.D. 1106년, 비잔틴 제국 시대에 조지아의 왕 다비트 4세에 의해 건축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바람에 건물과 유적의 손상이 매우 심각한 상태에 있어

2006년부터 대통령령으로 보호와 복원을 위한 국가기념물로 지정되어 현재도 복원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겔라티 수도원은

수도원에서 중심 건물은12세기에 세운 <성모마리아성당>이고 동쪽으로 13세기에 지은 <성게오르기우스성당>,

서쪽으로 2층 건물인 <성니콜라우스성당>이,수도원 서쪽 끝에는 <부속왕립학교>가 외벽만 남아 있습니다.

겔라티 수도원은 조지아 서부의 이메레티지역 쿠타이시 근교에 있는 수도원 단지를 가리킵니다.

그 곳에는 조지아의 왕 건설자 다비트에 의해 설립된 수녀원의 성모 마리아 성당과 성 게오르게와

성 니콜라스의 13세기의 교회들이 모여 있지요

수도원의 중심 건물인 성모마리아성당은  지금 외벽과 지붕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중입니다.

겔라티수도원의 메인 건물인 성모마리아성당

 

 

<성모마리아 성당  1106>과 <성니콜라우스 성당  13C>

 

겔라티수도원3개성당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성 게오르기우스 성당

성 니콜라스성당 . 매우 작은 규모의 성당이고 내부의 장식이나 시설물들은

대부분 훼손되어 남아 있지 않지만 곳곳에 기도처들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겔라티수도원 부속 아카데미

수도원 서쪽 끝에는 <부속왕립학교>가 외벽만 남아 있습니다.

 

성당 내부....공사중이라 어수선하네요

성모성탄교회의 제단 

성모마리아성당 안에 있는 차출리의 성모는

12세기에 제작한 최고의 도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작은 칠보와 보석 100여 개를 사용하여 3장으로 이어서 그렸고,

1759년 수도원이 약탈당하는 때 크게 손상됐으나 지금도 복원작업 중이다.

이곳이 유명한 것은 그린 미니아퀴르와 금은세공 기술이고, 이 기술 덕분에 세계적인 명상을 얻었다고 한다.

 

성모마리아성당 지붕 가운데 원뿔 모양의 돔이 있고, 이곳에 있는 3개의 성당 중에서 비잔틴양식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제단 전면부 중앙에 테오토코스를 중심으로 좌우에 대천사 가브리엘과 미카엘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원뿔지붕 아래 돔 중앙의 예수 그리스도와 좌우 날개 부분의 벽화들도 일부 손상이 있기는 하지만 뛰어난 예술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 

대천사 미가엘을 그린 프레스코 벽화

쿠타이시전경(켑처)

수도원 전경(구글켑처)

참 고 :학훌리 수도원 세첩화("세상의 모든 풍경"불로그서 인용자료)

라티 수도원에는 굉장히 많은 수의 12~17세기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벽화와 필사본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특히 학훌리 세첩화는 겔라티 수도원 최고의 보물로 꼽히는데요.

폭 2.02m, 높이 1.47m의 이 세첩화는 중앙의 테오토코스를 중심으로 십자가상의 예수 그리스도를

비롯하여 여러 성자들과 성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본래는 8세기경에 115개의 아름다운 보석장식과 함께 제작되어 학훌리수도원에 소장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중세 조지아 연대기에 따르면 이후 타마르 여왕이 오스만제국과의 전투에서 빼앗은 금으로 화려한 테두리를 장식하였고, 은으로 된 날개를 추가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세첩화는 1859년에 러시아인들에게 도난당하고 맙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세첩화는 1923년에야 금과 보석이 뜯겨져 나가고 심하게 손상된 채 조지아에

반환되어 현재 조지아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하네요. 
이 세첩화는 겔라티 수도원과 더불어 1994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노라투스의 석비림과 카라훈지

카라훈지는 예레반 남쪽으로 슈니크 지방에 있는데, 영국의 스톤헨지와 모양 및 연대를 비교해볼 만하다.

일단 조성 면적이 약 7만 제곱마일이고, 구조는 각급의 무덤들, 중앙의 고리, 거석 열로 돼 있다.

연대는 7000년을 거슬러 올라갈 정도이다.

 

역사가들은 카라훈지가 선사 시대의 매장지였다고 생각한다.

청동기 시대에는 죽은 사람을 석관에 집어넣고, 돌판으로 덮는 일이 보편적이었기 때문이다.

원형의 거석 고리는 직경이 최대 45미터이다. 바윗돌은 높이가 2.8미터에 , 무게가 최대 10톤까지 나간다.

부지의 돌 223개 가운데 약 3분의 1에는 원형의 작은 구멍이 나 있다(파낸 것이다).

그게 천문 관측 용도였다고 생각하는 과학자가 일부 있다.

어쩌면 카라훈지가 세계 최고의 천문대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총 223개의 거석들이 북쪽 과 남쪽을 바라보면 측면으로 세워져있다.

천문관측용 또는 당시 거주지의 흔적 이라는 추측만 있지 구제척인 용도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아르메니아의 스톤헨지 라 불리는 이곳은 선사시대 천문관측용 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르메니아 의 인적이드문 오지 지역에 는 거석들이 서클을 그리고 서있다.그중에 일부는 구멍이 뚫려있다.

 

카라훈지는 시시안 마을 근처에 있는 선사시대의 거석기념물(거대한 돌들이  세워져 있는 유적) 중 하나이다.

220여개나 되는 커다란 돌들이 벼랑을 낀 드넓은 언덕 위에 남북으로 줄지어 세워져 있었고

중간쯤엔 타원형으로 다시 둘러져 있었다. 80여 개의 돌 위쪽엔 작은 눈구멍이 뚫어져 있다.

 오랜 연구를 통해 카라훈지는 신전이 달린 세계 최초의 천문 관측소라는 결론을 내린다.

중간쯤에 있는 타원형으로 둘러진 곳은 옛날 아르메니아인들의 태양신 `알/아르에 바쳐진 신전이라 한다.

남북으로 줄지은 선돌들은 태양과 달 그리고 별의 움직임에 따라 배열되었고

특히 돌의 눈구멍을 통해 하지의 일출과 일몰이 관측되었다고 한다.

거석물이 만들어진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7,500년 전인 기원전 5,500년경 이고

아르메니아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301년까지 약 5,000년 동안 꾸준히 이곳에서

관측 활동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영국의 스톤헨지보다 3,500여 년이나 앞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소라는 것이다.


카라훈지를 이렇게 배열하기 위해선 지구의 반지름이 6300㎞라는 것, 지구는 자전축을 중심으로 하루를 자전하고 태양을 365.25일 주기로 공전한다는 것, 그리고 지축이 24도 기울어져 있고 아주 조금씩 변동 된다는 것 등 과학적 지식이 풍부해야 가능하며 7500년 전 아르메니아인들은 이미 이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세계 사람들과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 아르메니아 카라훈지를 중심으로 영국의 스톤헨지,

이집트 대 피라미드 등 세계 곳곳에 거석물을 세웠고 그들의 뛰어난 지식을 수메르, 이집트, 바빌로니아,

이란, 인도 등에 다니며 전파하였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태양신 `알/(AR)'에게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기에 그 받은 사랑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란다.

출처 : 복음인(http://www.ingn.net)

영국의 스톤헨지

 

카츠카르

아르메니아 게가르쿠닉 카운티의 노라투시 마을 근처에 위치한

노라투시 묘지는 코카서스 전체에서 가장 유명하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묘지 중 하나입니다

.이곳은 수천 개가 넘는 수많은 카치카르 또는 십자형 돌로 유명하며, 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컬렉션입니다.

카츠카르 는 풍부하게 장식되어 있고 종교적, 문화적 중요성을 지닌 아르메니아십자가 돌의 독특한 형태이다

순교자와 전사부터 평화로운 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행사와 개인을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노라투시 묘지의 역사는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묘지 중 하나입니다.

최초의 카츠카르는 10세기에 이곳에 세워졌지만,

오늘날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카츠카르는 아르메니아 카츠카르 예술의 전성기였던 13~17세기의 것입니다.

 

 

게가르쿠니크 지방의 노라투스 공동묘지에는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은 수의 카츠카르가 모여 있다.

무려 800개 이상인데, 모두가 제각각으로 독특한 디자인을 뽐낸다.

노라투스의 카츠카르는 이 예술 양식의 현전하는 가장 초기 형태이다.

십자가와 꽃 문양이 새겨진 돌인데, 산 자든 죽은 자든, 그들 영혼 구제의 상징으로 많이들 이해했다.

9세기경에 처음 창안된 카츠카르가 전환된 이교도 사원에 빈번하게 세워졌다.

요컨대, 새로운 신앙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던 셈이다.

늘날  이돌들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무형문화 유산의 일부이다

 



 

딜리잔의 하기르친 수도원

 

하기르진 수도원은 10세기에 지어진 역사적인 유적으로서 2010년에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딜리잔 동쪽 12km 숲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4개의 교회 와 2개의 예배당, 대형 만찬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해시계가 이곳에 있으며, 당시 기도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하가르친 수도원은 아르메니아 타부쉬 지방, 딜리잔 근처에 있는 10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세워진 수도원입니다.

수도원 건물의 대부분이 바그라투니 왕조 시대에 건설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하가르친'(Haghartsin)이란 말은 아르메니아어로 '치솟아 오르는 독수리'를 의미한다고 해서

'독수리 수도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수도원을 헌당할 때 돔쪽에서 독수리 한 마리가 하늘로 치솟아 올랐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네요.

 

 



성모교회 뒤편 벼락으로 인해 고목이 된 이 나무는 벼락을 맞아 부러짐으로써 오히려 더 유명해졌습니다.

이 나무 자체가 하늘을 우러르며 하늘의 뜻을 헤아릴 것을 가르치는 수도사의 모습이기 때문이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수도사들의 전통적인 복식

 

고샤방크의 중세 수도원 Dilijan 리조트 마을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12-13세기에 지어진 이 수도원은 한 때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중요한 정신적, 문화적 중심지였습니다.

 1188년에 수도원을 세운 위대한 아르메니아 과학자, 정치인, 클리리칸의 지원을 기리기 위해 지었습니다.

 

 

 아르메니아인의 영적인 산 아라랏산

유태인들을 제외하고 세계 역사 속에서 아르메니아인들만큼 고난의 역사를 가진 민족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라랏산은 아르메니아인들의 뿌리일 뿐 아니라

긴 고난의 역사 가운데서 민족을 하나로 묶어준 구심점이기도 했습니다. 

구약 창세기 8:4에 보면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아라랏산은 대홍수 재앙을 피한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을 태운 방주가 홍수가 그치고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기나긴 표류를 끝내고 멈춘 곳이지요.

 

아르메니아 대평원에 우뚝 솟은 아라랏산은 해발 5,137m의 대아라랏과 3,896m의 소아라랏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아라랏은 그 봉우리가 일년내내 만년설로 뒤덮여 있고,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그 주변은 광활한 초원지대가 형성되어 유목민들이 목축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중세시대까지 아르메니아인들의 땅이었던 아라랏산은 오스만투르크에게 정복당한 후 지배권이 터키로 넘어갔고,

19세기말 터키에 의해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인종청소가 시작되면서

아르메니아인들은 더 이상 아라랏산에 오를 수조차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코르비랍 수도원

 코르비랍 수도원은 "깊은 우물"이란 뜻을 가진 아르메니아가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된 사연을

간직한 곳으로서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르메니아에 최초로 기독교가 전파된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 사도 바로톨로메오와 유다(타대오)가

이곳에 와서 복음을 전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볼 때 AD 1세기였을 것입니다. 


아르메니아 왕국의 통치자 트리다테스 3세 시대에 왕의 신하였던 그레고리(A.D. 257-331)가

이곳 코르비랍 지하 감옥에 갇히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레고리의  아버지는 트리다테스 왕의 아버지를 죽인 후 쫓겨다니다가 카파도기아로 피신하게 됩니다.

그레고리는 그곳에서 성장하였고, 사제가 되어 자신의 고향 아르메니아로 돌아왔습니다.

아르메니아에서 기독교를 전파하던 그는 왕에 붙잡히게 되었고, 왕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죄와

이교를 전파한 죄를 묻고 아나히타 신에게 제물을 바치라고 명령합니다.

이 왕의 명령을 거부하자 왕은 그를 깊은 지하감옥인 코르비랍에 가두어 버린 것이지요.

그레고리를 감옥에 가두고, 동로마에서 아르메니아에 기독교를 전하러 온 33명의 수녀들을 가혹한 방법으로

살해하면서 기독교를 박해하던 왕은 어느날부터 심각한 정신적인 질환에 시달리게 됩니다.

날마다 고통스러워하던 왕은 어느날 자신이 십 수년 전에 감옥에 가두었던 그레고리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찾아가게 됩니다.  코르비랍은 한 번 들어가면 죽어서 나올 수밖에 없는 지하 감옥이었죠.

그런데 그곳에서 그레고리는 기적처럼 살아 있었고, 그레고리로부터 복음을 들은 왕은 회개하고

자신의 정신병을 고침받게 됩니다.

기독교인이 된 왕은 그레고리와 함께 기독교를 아르메니아의 국교로 선포하였고,

그레고리는 아르메니아 최초의 주교가 되었습니다. 

그 후 5세기에 그레고리가 14년 동안 갇혀있던 감옥 위에 교회와 수도원을 세웠고,

이 수도원이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완공된 것은 17세기라고 합니다.

코르비랍이 아르메니아인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두 가지겠지요.

첫째는 자신들의 마음의 고향이자 거룩한 산인 아라랏산을 가장 가까이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때문이요,

그리고 둘째는 아르메니아 기독교 신앙의 뿌리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십자가 외의 상징이나 그림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내부에 들어가보아도 성 모자의 그림 하나 외에는 다른 성화나 그림들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은  십자가 문양을 깊은 기도와 온갖 정성을 담아 조각하여 설치합니다.

오랜 전통인 이 십자비는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만의 독특한 유산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라랏산 일출촬영을  위한 새벽출사 .

아르메니아 선교를 위해 예수님의 두제자가 만났다는 장소

* 바돌로매와 타대오가 아르메니아 선교를 위해 만난 그 언덕에 큰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코르 비랍 수도원이 순례지로 주목받는 이유는 성 그레고리가 아르메니아의 왕 티리다테스 3세에

의해 13년 동안 이곳에 투옥되었고, 이후 <성 그레고리>는 왕의 종교적 멘토가 되었고,

그들이 나라에서 기독교 전도 활동을 이끌어 가갔으며,

301년에 아르메니아는  세계 최초로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17세기에 건설된 이 성모교회가 본당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성모교회

수도원의 전면부 . 조지와 수도원과 비슷한듯 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느낌이 나더군요.

조지아의 수도원들은 첨탑이 원형인데 아르메니아 교회는  12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교회 내부,조지아정교회와는 달리 사제단과 회중석 사이의 가림막이 없습니다.

벽에 성화를 그리지 않고 전면부에 성모자와 아르메니아 교회 성인들 사진만 붙어 있습니다.

조지아정교회와 달리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십자가 외의 상징이나 그림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내부에 들어가보아도 성 모자의 그림 하나 외에는 다른 성화나 그림들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성 그레고리>가 던져졌던 코르 비랍(깊은 구덩이) 지하실로 통하는 문

성 그레고리가 갇혀있던 지하감옥으로 내려가는 사다리

지하 감옥에  조그만 기도소가 있습니다

 성 바돌로매와 성 타대오의 두성인 (사도 타대오가 아르메니아에 올 때 가져온  창)

적외선기법의사진 

 

예루살렘 성전이 바라보이는 감람산 아래 온통 무덤들로 가득한 것처럼

아르메니아 인들은 아라랏산이 바라다보이는 이곳에 공동묘지를 조성했습니다

 

노아의 방주에서 떼어온 돌판(나무의 화석) 관련 전설이 있네요.(에치미아진대성당 박물관에보관)

4세기경, 아르메니아의 수도사가 아라랏 산에서 수도생활하다가 잠이 들었다.

천사가 와서 "잠에서 깨어나시오. 당신의 손 위에 나못조각이 있을 것이오 .

이것은 노아의 방주에서 떼어낸 것이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쇠한 수도사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손바닥 위에 나못조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수도사가 가져온 나뭇조각위에 보석으로 장식된 황금 십자가를 붙여놓았다.

 

튀르키예(터키)지역 아라랏산 노아의방주 유적

 

켑쳐온 이미지(C채널 :"성지가좋다 "영상중에서)

 

* 합성이미지 (표지내용을 반영)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에치미아진 대성당

에치미아진은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서 서쪽으로 약 20km 거리에 있는 인구 5만명의 작은 도시로서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뿌리이자 중심으로서 수많은 유적과 유물들을 간직하고 있는 보물과 같은 도시입니다

 

아르메니아가 기독교를 국교로 제정한301-303년에  성 그레고리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아르메니아 최초로 합법적 공인을 받은 성당입니다

 

 

에치미아진 대성당은 AD 301년에 성 그레고리와 트리다테스 3세에 의해 아르메니아가 기독교 국가가 된 후,

건축을 시작하여 그레고리가 세상을 떠난지 5년 후인 331년에 완공된 세계최초의 공식적인 교회건물입니다.

전해오는 이야기 5세기경 기록된 아르메니아 문서에 의하면,

에치미아진이라는 이름은 아르메니아어로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곳'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당시에 성 그레고리가 하늘에서 내려온 예수님이 황금망치로 땅을 내려치는 환상을 본 후에

그 자리에 교회를 세웠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명칭이지요. 


특히 기독교가 아르메니아의 국교가 된 4세기 초에 이곳에 아르메니아교회의 주교좌가 설치되었는데요,

이후 수도가 예레반으로 옮겨간 후 사산 왕조 시대인 5세기 중엽에 주교좌 역시 예레반으로 이전했지만,

1441년에 다시 총대주교 카라코스에 의해 총대주교 관구가 에치미아진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박물관 안에는 아르메니아 교회가 간직하고 있는 최고의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이것은 4복음서 필사본의 양장표지와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로마 병사의 사모창과

노아의 방주에서 떼어 왔다는 돌판 위의 십자가가 소장되어 있습니다

 

2001년에 아르메니아 건국 700주년을 기념하여 건립한 대성당 입구의 대형 조형물

십자가를 기준으로 좌측에 트리다테스 3세, 우측이 성 그레고리의 모습이 조각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총대주교 서품식행사가 있는 날입니다

 

대성당 출입문 좌우측에는 예수님의 생애를 담은 성화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의 한 손에는 망치, 한 손에는 십자가가 들려 있습니다.

오른쪽 아래에는 이를 지켜보는 성 그레고리가 있네요.

아래로 아라랏산이 있고, 최초로 건축된 성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당뒤 박물관 안에는 아르메니아 교회가 간직하고 있는 최고의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이것은 4복음서 필사본의 양장표지와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로마 병사의 사모창과

노아의 방주에서 떼어 왔다는 돌판 위의 십자가가 소장되어 있습니다

 

롱기누스의 창

 이 박물관의 최고의 성물이자 보물인 게하르트, 즉 "롱기누스의 창"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로마병사 롱기누스는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이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는데,

찌르는 순간 그는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흘린 피로 자신의 눈을 씻자 곧 다시 보게 되었고, 그 후로 롱기누스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열렬한 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도 타대오가 아르메니아에 올 때 가져온 이 창을 약 5백년 동안 게하르트 수도원에 보관했다가

이 에치미아진으로 옮겨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십자가는 아라랏산 노아의 방주에서 떼어낸 돌판(나무의 화석) 위에 붙인 것이라는데요,

4세기 경에 아르메니아의 수도사 한 사람이 아라랏산에서 수도생활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때 한 천사가 나타나 말하기를 "잠에서 깨어나시오. 당신의 손 위에 나무 조각이 있을 것이요.

이것은 노아의 방주에서 떼어낸 것이오"라고 했습니다.

그 늙은 수도사가 잠에서 깨어나보니 정말로 자신의 손 바닥 위에 돌로 된 나무조각 화석이 놓여 있었다고 하네요.

수도사가 가져온 나무화석 위에 보석으로 장식된 황금 십자가를 붙여 놓은 것이 지금까지 전해져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성 흐립시메 교회

 

 36명의 수녀가 순교당한 성 가야네 성당

 

이 성당은 7세기 교회로 흐립시메와 함께 로마황제의 박해를 피해 피신 온 수녀 가야네는 630년 처형당했는데

처형된 이곳에 교회가 세워졌고 지하에 그녀의 무덤이 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르메니아 민족혼의 상징 - 타테브 수도원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지은 수도원.

멀리서 바라보는 타테브 수도원과 그 일대의 풍경은 신비롭고 아름답기만 합니다.

하지만 타테브 수도원이 유명한 것은 단순히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는 풍경 때문만은 아닙니다.

 타테브는 수천년 이어져온 아르메니아인들의 정신과 민족혼이 살아 숨쉬는 곳입니다. 

 2010년도에 할리브조르에서 타테브까지 이어주는  케이블카가 오전10시부터 운영되기 때문에

일출장면을 촬영하기위해  우리는 세벽에 일어나자마자 간단히 짐과  도시락을챙겨 소형버스로

타테브로 출발 오전06시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케이블카는 중간 기착지가 없이 직선으로 연결되는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타테브 수도원은 슈니크 지역의 주교좌 교회이자, 이 지역의 경제, 정치, 문화, 영적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곳 타테브 고원지역에는 기독교가 전래되기 전에 이교도 사원들이 있었습니다.

이 이교도 사원은 아르메니아가 기독교화되면서 자연스럽게 평범한 교회로 대체되는데요,

 1세기에 이 수도원에는 약 1천명의 수도자들이 생활하였고,

많은 예술가와 장인들이 이곳에 일했을 정도로 번성하였다고 합니다.

 

12세기에 수도원은 셀주크 투르크의 공격과 1231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는데,

특히 셀주크 투르크는 수도원을 약탈하고 약 1만여권의 필사본 성경과 서적들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14세기에는 수도원 안에 대학이 설립되어 아르메니아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타테브 수도원은 18세기 말에 다시 페르시아 군대의 침략을 받아 약탈당했으며, 19세기에 아르메니아가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 동안 예레반 교구의 일부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1920년에는 러시아 붉은 군대가 들어와 아르메니아를 러시아 연방으로 편입하고 이곳 슈니크 지역을

아제르바이잔에 편입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아르메니아인들은 타테브를 민족혼의 상징처럼 여기고 있으며, 실제로 수도원 내부에 보면

전투를 위한 병영같은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잦은 외부의 침략에 방어하기 위해 깎아지른 절벽 위에 높은 성벽을 쌓았던 것이지요.


이에 반발하여 애국지사들이 이곳 타테브 수도원에 모여 "오등은 자에 아 아르메니아가 독립국임을 선포하노라"

하면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는데요, 당시 정치 및 군사지도자였던 가레딘 느즈데는 이 독립선언서 발표를

주도했을 뿐 아니라, 아르메니아 산악공화국을 선포하고 군대를 조직하여 러시아의 붉은 군대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였습니다.

6개월간의 치열한 전투끝에 결국 패퇴한 가레딘 느즈데는 타테브 수도원 맞은 편에 보이는 산을 넘어

이란으로 망명길에 올랐다고 하네요...

 

 

 

타테브 수도원은 유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잠정 등재되어 심사중이라고 하네요.

그 역사성과 아름다움으로 보면 등재되어도 손색이 없을것깉네요....

아르메니아인들은 타테브를 민족혼의 상징처럼 여기고 있으며, 실제로 수도원 내부에 보면

전투를 위한 병영같은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잦은 외부의 침략에 방어하기 위해 깎아지른 절벽 위에 높은 성벽을 쌓았던 것이지요.

일출장면을 촬영하기위해  우리는 세벽에 일어나자마자 간단히 짐과  도시락을챙겨 소형버스로

타테브로 출발 오전06시에 도착하였습니다

타테브 수도원은 세 개의 교회와 행정동, 그 외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교회가 주교좌 교회 건물인 베드로와 바울교회입니다.

이 건물 뒤에는 성 그레고리교회가 있습니다.

 

10세기 경에 세워진 가바잔 시운이라고 불리는 이 돌 기둥은 성 삼위일체께 헌정된 기념물인데요.

교회의 남쪽에 위치한 이 기둥은  8m 높이로서 그 꼭대기가 아르메니아 십자가인 카츠카르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 기둥의 주된 목적은 가벼운 지진의 진동을 측정하여 경고함으로써 지진 발생 가능성에 대한

일종의 조기경보체제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네요

2010년도에 할리브조르에서 타테브까지 이어주는  케이블카가 오전10시부터 운영되기 때문에

일출장면을 촬영하기위해  우리는 세벽에 일어나자마자 간단히 짐과  도시락을챙겨 소형버스로

타테브로 출발 오전06시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케이블카는 중간 기착지가 없이 직선으로 연결되는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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